2024 OC

나쁜 나무꾼, 심장이 뛰는 - 도휘

토끼전

𐂂

悲かなしい記憶ひびが化か石せきに変かわるよ もうすぐ

あなたのその痛いたみを眠ねむりの森もりへと

ひそやかにみちびいてあげる

슬픈 기억이 화석으로 변할 거야 이제 곧

당신의 그 아픔을 잠자는 숲 속으로

몰래 이끌어 주리다

𐂂

- 배우 전소니

나무꾼이 어찌 대단한 일을 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도휘

都輝

1993.01.06. 32세 여성

목수

(목재 가구 디자인/제작, 조각공예 등의 작업을 하는데, 모두 통틀어 목수 혹은 나무꾼이라고만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용전 거주 5년차

미대 조소과(목조 전공) 졸업 이후 개인 목공 아틀리에를 운영하다가, 작품활동 등을 위해 더 많은 나무를 직접 공수하려 고향인 송안면에 돌아왔다.

용전 시설 내 목재 구조/가구 등의 보수를 맡고 있다. 더불어 용왕 말씀을 담은 이야기를 테마로 한 목조각 작품을 꾸준히 만드는 중.



Time Line

~13세 - 갑진에서 초등학교까지 졸업했다

14세~ - 부모님의 직장 때문에 서울로 이사, (부모는 서울로 이사오기 전에도, 맞벌이가 바쁘다는 이유로 도휘를 방임에 가까운 방치. 때문에 보다못한 친할머니가 거의 양육.)

20세 - H대학교 조소과 입학

21세 - 1년 휴학

25세 - 졸업 후 소규모 개인 목공 아틀리에 창업

26세 -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장례를 치르러 갑진으로 내려갔다가 서울에 다시 올라가지 않음

27세~ - ‘모종의 사건’으로 큰 곤혹을 겪은 뒤, 무영에게 거두어져 용전에서 거주하며 용전 전용 목수로 일하기 시작


저는 나무꾼...(그래, 나는 예술을 못 하니까. 목공예를 한다 소개할 수 없었고. 디자이너? 가당키나 한가?) 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 그것도. 5년이나 된 일인데... (…) 그럼 그 때로 돌아가서, (왜 좋은 나무꾼도 되지 못 하였는지.) 할머니, 돌아가신 건 그거보다 1년인가? 전이었어요. 장례 갑진에서 치르고. 부모님은 살던 서울 집으로 올라가신다기에, 아 나는 안 가겠다 했죠. 마침, 마지막까지 할머니 곁을 지키던 큰아빠도 갑진을 뜨겠다는 거예요. 너무 후련하다는 듯이... 그래서, 그럼 그 집 얼마간만이라도 제가 묵겠다 했죠. 그리고 여기도 저기도 나무인 곳에 있으면. 어떤 나무를 보고 뭘 하고 싶을지 어떻게 알아? 하면서 그 참에 서울 것들 모두 정리하고 눌러 앉았어요. (그럼에도 나무가 많다 뿐이지. 갑진에서도 쓸 것 구하기엔 제약 꽤 있었다 덧붙임.) 근데, 어느 날에 여기저기 돌아 다니다가... 정말. 운명처럼. 꿈에 본 것처럼. 완벽한 나무가... 보인 거예요. 얼른 장비를 가져왔죠. 큰 차, 아름드리도 거뜬히 벨 전기톱... 밤 중이었는데. 그런 거? 아무래도 상관 없고. 지금 갖지 않으면, 날이 밝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은 나무라서. 시동을 걸어둔 톱을... 꽂았어요. 힘겹게 취해왔고. 그게... 문제였어요. 용전에 되게. 크고 좋고 귀하고 영험한 나무. 언젠가부터 밑동만 남지 않았어요? 그거 제가 벤 거예요. 그 뒤부터 이상하게... 점점 아프기 시작했어요. 몸살처럼 시작해서. 얼마 안 가 거의 뵈는 게 없을 정도로 앓았죠. 열이 펄펄 끓고. 시야가 오락가락하고. 다리에 힘도 안 들어가고. 왜지. 뭐가 문제지. 며칠간 죽네 사네 하면서 계속 생각하다가... 와, 진짜 넘어가겠다. 싶었던 순간에. 할머니 목소리 들렸어요. 너 죄 지은 것 같을 때. 무영 님께 가서 사해라. 하고. 용전에 가라 일러 주신 거죠. 돌아가셨지만. 제가 불쌍해 보여서. 나무였구나. 그 나무구나. 다시 봤더니... 정말. 신성한 나무... 같은 표식이 있더라고요. 밤이라 못 본 거죠. 그건 핑계긴 한데. 당장 일어나서... 거의 기어가듯 용전을 찾았어요. 무영, 무영 님... 직감적으로 저 분이겠구나. 하고 보자마자 무릎부터 꿇고 살려만 달라고 싹싹 빌었어요. 살려만 주시면 시키는 거 다 하겠다고. 무영 님은, 제게 벌을 주는 대신... 저를 거둬 주신 거예요. 그 죄는 여기 일원이 되어, 천천히 갚으면서 살라고. 그렇게 벤 그 나무요. 용왕신 말씀으로 형상화 한 조각들, 제가 연작으로 만들고 있잖아요? 그게 그 처음 것의 재료가 됐어요. 이게... 나쁜 나무꾼 이야기. 죗값 갚고 있는.

Q. 왜 5년간 묵언수행을 하듯 입을 닫고 있었나?

A. 하고 싶은 것을 다 잃었다. 근데,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기분도 안 들고. 내가 내뱉는 말 전부가 인간의 말 아니고, 짖는 것 같아서...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는,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한유주의 소설/에세이 제목.)


내 가장 큰 고통의 실체?

......실재. (내 실재하는 고통. 한 명만을 붙잡고 줄줄 고해하듯 성토한 이야기. 좋은 예술가. 나는 예술을 하기엔 너무 민짜무늬인 주제에, 눈만 높았고. 그러느라 우를 범하는 나무꾼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좋은 손자 또한 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체란...) (굳은 표정을 하고 작업실로 향한다. 그리고 아주 처음으로 이 작업실을 갖게 된 이후엔, 꺼내보지도 못했던. 용왕님 말씀 받아적는 조각들 연작의 시초가 된 조각...을 만들고 남은, 5년 묵은 나무 토막 하나 꺼낸다. 이것, 이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더 극단으로 뻗어가야 한다.) 생각한 사람을 스케치로 구현해낸다. 꼭 어딘가에 갇힌 모양새 되어, 나도 모르게 할머니. 한 번 불러보고 내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란다. 정신을, 차려야 해. 너무 익숙하다 못해 내 몸 같은 톱들을 단계에 맞춰가며 바꿔들어 나무를 켜고 깎는다. 두루뭉술한 네모가 두루뭉술한 곡선 되고, 점점 더 윤곽을 찾고, 조금씩 자세해지고, 더 커다란 여백 없을 때 톱들을 정리해두며 조각도들 늘어놓는다. 내가 이렇게 새로 빚으면... 내 앞에 다시 태어나 주실 거야, 할머니? 생각하며 일평생 해본 적 없는... 깊은 몰두를 한다. 그러느라 가끔 숨 쉬는 것도 잊어서, 밭은 숨 크게 터뜨린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가장 마지막에 시작한다. 너무 목놓아 부르고 싶을까 봐 그랬다. 나... 아주 개차반은 아니었나 봐. 내 손으로 만든, 깎은, 빚은. 우리 할머니. 내가 사랑한 모습과 꼭 닮은. 마감처리도 잊지 않아야 한다. 내 가진 중 제일 고운 사포를 쥐고, 살살 씻겨드리듯 손길 조심스럽다.) …더 가야 해. (하지만 이것으론 차마 고통의 현신이라 부를 수 없다. 차라리 사랑에 가깝지. 그때 이레에게 들었던 말 떠오른다. 조각품에 내 피라도 물들여 바치게 될 수도 있겠다는. 그래. 지금이 때라는 생각 들어서, 눈 질끈 감고 결단한다. 서랍 뒤진다.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 커다란... 제도용 커터칼. 칼날 빼는 소리에 소름 돋지만, 아. 우선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휴대폰 꺼내 무언가 검색하고 창을 켜둔 채 다시 엎어둔다. 나는 겁쟁이인데. 겁이 너무... 많은데. 그럼에도, 오른손을 거드는 충직한 왼손 들어본다. 손목 짚어 보면, 나는 너무나도 살아 있어서 생경할 따름. 이를 악물고 꺼내둔 칼날로 손목 그어본다. 실패, 실패, 실패... 자꾸 겁이 나 주저하게 되는가? 화와 설움과 온갖 것 섞여 벌게진 얼굴로.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더 깊이 가로질러 긋는다. 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줄줄 흐르는 선혈. 얼른 받쳐 들고 우묵한 그릇에 받는다. 충분해야 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많이. 실시간으로 나에게서 탈출하는 내 피. 기분 탓일진 몰라도 아찔하니 어지럽다. 의식을 잃으면 안 된다. 정신, 정신을 붙잡아. 반 뼘 조금 넘는 높이의 용기에서도 반 정도가 차니, 다시 휴대폰 집어들어 찾아둔 것 본다. 깊은 자상 지혈법. 이미 내게는... 아주 큰 부상들에 대한 전제와 대비가 되어있었으므로. 충분히 나를 죽이지 않을 수 있다. 멎게 할 수 있다. 깨끗한 천과 강한 압박. 힘을 빼지 않은 채로 멎을 때까지 오래 기다림. 조각한 시간보다도 더 오래도록 나를 죽이지 않기 위할 조치 취해야 했다. 그만 울어. 달래듯 꽁꽁 묶어 두면, 정말로 마감의 마감만이 남아 있다. 서랍 뒤진다. 고민을 하다 수성 바니쉬와 여러 크기의 붓들 꺼낸다. 방금 흘려둔 내 피와 바니쉬를 섞는다. 내 손으로 할머니 얼굴에 피칠갑을 한다니... 패륜도 이런 패륜이... 미안해, 이게 진짜 마지막이야 할머니. 얼른 마르는 바니쉬를 잽싸게, 동시에 세밀하게 붓의 종류를 얼른 바꿔가며 칠한다. 한차례 다 칠하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포질. 그리고 덧칠. 그러기를 세 번쯤 반복하면... 피 흘리는, 피눈물 흘리는. 나의 혈족, 나의 사랑, 나의 꿈. 이것이... 내 고통의 실체.)

도휘의 고통은 예술에도 현실에도 닿지 못함에 있었다. 맹신으로 둘 중 어느 쪽에든 닿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자신의 우매함을 고통으로서 마주한다. 조상을 빚은 그릇에 피를 담으며 고통을 실체화한다. 누군가의 수많은 예술들은, 용전의 창고 안에 고통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영 님의 영생을 원하는가?

커다란 우를 범한 뒤, 그 잘못 용서 받기 위해 입을 닫고 깊이 들어가 필경하듯 말씀을 받아 조각한 지 5년. 그리고 지금. 나 누군가에게 말했듯, 그 5년간을 통틀어 배운 것보다... 이 짧은 며칠 간 모두와 부대끼며 얘기하며 듣고 배운 것 더 많다. 그러나, 그 지난 5년을 모두 헛짓거리 취급을 하진 않을 것이다. 그 시간들이 나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니까. 나 이제는 안다. 나는 너무 살아있고, 사람이고, 그간 그렇게 입만 다물고 있어야 했던 이유... 사실 딱히 없었다는 걸. 처음의 손길이 사해줌의 손길과 구원일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그 이후는 역시나 ‘셀프’ 였다. 너무 늦게 알아챈 사실이다. 내게 지지대와 축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이 맹목이 되어선 안 된다. 그리고 감히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무영 님, 저 이제... 치를 만큼 다 치르지 않았을까요. 그 죗값. 당산나무 이제 없다. 허나 달라진 것도 없다. 그리고 나 드디어... 부채감도 없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용전에 머무를 수는 없게 될까? 많이 정들었지. 그리고 생각과 처지 달라 갈라지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생기겠지. 그럼 슬프겠지? 많이 많이. 그럼에도... 감히 혀끝에 올려보는 단어 하나. ‘청산’. 이후의 거취는 조금 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일단 나, 나로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제일 선행되어야지. 내가 내가 되기 위하여 …… [아니오.]

𐂂

유미주의, 그 허깨비.

예술. 이론 강의 들을 땐 맨날 정신 출타해 있다가, 잘 들은 몇 안 되는 중 하나가. 유미주의. 거든요? '미를 위한 미,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입장.' ...아름다움만 있으면 다 상관 없다는 사조. 사회고 모럴이고 뭐고 전부. 이런 예술사조가 있다. 근데 너무 문제가 많았다. 이제는 그 풍조가 주가 되진 않는다. 정도로만 배웠지...만. 왜인지 거기 확 꽂혀버린 거야, 멋있을 거 같아서요. (뭔 개같은 실수를 하는 건, 당연히 어릴 때겠죠? 저학년 때라 덧붙이며) 야, 있지. 나도 예술. 어? 례술 할 거다... 진짜 봐봐라. 전부 갈아 넣고 사르고... 그렇게 야작실에만 처박혀 살고... 막 그러다가 이게, (머리께 톡톡 두들기며) 정말로 뭐가 되기라도 하는 것 마냥. 근데 아니니까. 그... 차이를 머리가. 이해하질 못 하는 거예요. 이게... 해리가 된다고 해야 하나. 유체이탈처럼... 저는 모럴까지 무시해가며 예술 하겠다 그럴 깡도 없었지만. 아직 세부 전공은 없던 때라서. 다른 거 듣고 있었거든요. 도예였을 건데. 겨우 기초 도예 하는 주제에... 이것저것 보고 눈은 높아져 있고, 근데 내 건 너무 애매하고. 그거 기말 과제전 준비하다가... 너무 좆같은. (실로 오랜만에 말한) 거예요.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그러다가 정신이 탁. 끊어지면서? (다시 생각해도 등신 같았던 일) 과제전 마감 직전에... 야작실에서 그거 다 박살냈어요. 당연히... 왜 안 내냐 하셨죠? (교수님께 개같이 깨지고 휴학 권유 받아 그렇게 했다. 정도로 갈음.) 돌아와선 정신 차리고 재수강도 하고 했죠. 근데요, 어쩜 그렇게 중간이 없나. 이젠 매너리즘이 오는 거야. 뭘 가져가도 재미가 없어 보인대요. 너무 타오르다가 너무 사그라드니까. 의욕이 뚝. 수업 많이 째고. 과제 대충 하다가 과제전 있어? 반짝 끌어쳐 집중하고. 그렇게 졸업만 겨우 했어요. 내가 뭐, 어떤 예술 하고 싶었는지를... 찾지도. 기억하지도 못한 채로요...”

나는… 나무구나.

처음으로 모든 분야의 공예품을 선보인 큰 과제전이었다. 나는 당연히… 초대할 사람이 우리 할머니 뿐이었지. 금속, 목조, 석조, 도예 등등 많은 걸 한 번에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기억 뿐이지만. 할머니는 이게 네 거냐며 하나하나 오래 앞에 머물며 눈에 마음에 담으셨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 목조각에 거의 눌러 앉듯 아주 오래도록 멈춰서 계시기에, 나 거기서 목소리 하나 들은 듯했다. “나는… 나무구나.” 그래서 세부 전공은 목조가 되었다. 할머니가 목조 말고 석조에 오래 머무셨다면… 나는 아마도 석공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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