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서명호

첫 눈과 함께 내려온 현무

현재 by 반야

2년 전, 춘분

음양이 반씩 나누어지는 날, 서당에는 1년 생원들이 새로 들어온다. 시끌벅적한 서당의 한가운데에서 원우와 지훈은 겨우 눈을 붙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 위로 따스한 손길이 닿았다. 겨우 굳어가는 몸을 일으켰다.

“황룡이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리 퍼져.”

승철과 정한이었다.

“안 내려갈 거야?”

“가야죠…….”

원우가 주섬주섬 일어나며 세조대를 정리했다. 저승사자가 데려가겠다. 정한이 장난스레 말하자 원우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그분은 저 안 건드려요…. 라고 답하며 문을 열었다.

막상 내려오니 일 년 전 본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귀여웠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생원이 많은 것 같다 싶었으나, 굳이 황룡 사형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각 사방신 진솔들이 1년 생원들을 데리고 침소로 돌아가고 난 후, 남은 황룡들이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2년 황룡들에게 굳이 손을 내밀기는 껄끄러웠기에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렸으나 원우와 지훈은 대강 흘려듣고 그들을 도왔다.

“호시는?”

“...아직 힘들대. 그냥 쉬라고 했어.”

원우와 지훈은 지수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정한이 흘긋 그들을 보고는 슬쩍 다가갔다.

“청에서 수련생이 왔대.”

“...그렇습니까.”

“보통 주작으로 가잖아.”

“그쵸. ...승철 사형네로 갔습니까?”

“응? 아니. 이번에는 현무로 갔어.”

최초였다. 여태 수련생들은 청이 아닌 어느 나라에서 와도 주작으로 배정되었다. 자유롭고 가장 활기찬 곳이라서 외부인을 맞이하기 딱 좋은 침소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온통 마반인들로 가득한 현무로 온 수련생이 벌써 불쌍해졌다. 이리저리 치일 텐데, 하면서. 승철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서명호. 그 애 이름이야.”

“...? 그렇군요.”

“응. 너희 침소에 들어갔거든.”

툭. 지훈의 손에 들린 막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른 가봐. 명호 혼자 있겠다. 정한의 말에 둘은 재빠르게 정리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소로 뛰어갔다.

둘이 문을 벌컥 열자마자 몸이 굳었다. 명호라는 아이는 무명과 이연을 합친 것처럼 생겼다. 얌전히 방을 정리하던 명호가 슬그머니 일어나 인사했다.

“1년 생원 서명호 입니다.”

“...어, 어. 안녕.”

“사형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홀린 듯이 인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얼 하고 있었어?”

“제 물건들을 정리했습니다. 헌데 무엇이 어디에 쓰이는지 잘 알 수 없어서….”

지훈에게는 생애 처음 생긴 사제였다. 마구는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으며, 어떻게 들고 다니는지부터 시작해서 교구들을 죄다 정리해주었다. 원우도 뒤에서 천천히 짚어주었다. 꽃무릇과 능소화는, 이 지독하고 갑갑한 현무의 틈을 비집고 사제로 들어온 명호가 유독 소중했다.


곡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탓에, 홀로 침소에 있기 적적하여 책방으로 나온 참이었다. 내리는 비 때문인지, 책방에는 온통 검은 생원들로 가득했다. 다른 생원들은 상대적으로 멀리 있어 굳이 오지 않는 듯했다. 적당히 구석으로 가 보니, 원우가 앉아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한 생원이 곁에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앉자, 더 편히 앉으라며 옆으로 비켜주었다. 얌전히 그의 말을 듣고 나서 잠시 고개를 들어보니 온통 신경이 둘에게로 쏠려 있었다. 원우와 명호는 저 시선들이 각자 본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히 수군대는 말속에 둘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명호 넌 서당에서 누구랑 친해?”

소음 사이로 불쑥 들어온 원우의 질문에, 명호가 말없이 서책의 가장자리만 만지다 입을 열었다.

“사형들이요.”

“...말고. 친우 말이야.”

“딱히 없습니다.”

아직 들어온 지 겨우 한 달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생원들은 친우들끼리 온 것 같아서 물어보았는데, 꽤 단호하게 돌아온 답변이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다. 애써 제게 향하는 시선을 무시한 채로 명호를 슬쩍 보다, 다시 서책으로 옮겼다. 더 말을 이으려고 했는데,

“워누혀어어엉…….”

웬만치 않은 녀석이 들어왔다. 커다란 몸을 구겨 넣으면서 원우에게로 안겨 왔다.

“왜.”

“나가지 말아."

“아. ...같이 갈래? 다날 일찍이 돌아오면 되는데.”

명호는 둘의 대화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민규. 아는 얼굴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모든 생원이 달라붙어 친구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고, 바다의 도깨비가 수호하는 집안에서 온 생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른 사형들도 그를 찾아왔다. 꽃무릇과 친해? 주변에 있던 생원들이 흘긋흘긋 민규를 보았으나 민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독각이 나오지 말래….”

“그럼 뭐.. 있어야지. 어른 말 들어.”

“응……. 그건 뭐야?”

민규가 대뜸 원우의 곁에 있던 붓 묶음을 보며 물었다. 아 맞다. 원우가 제 손으로 옮겨 들었다.

“우리 침소 사제한테 줄 선물.”

“아. ...청에서 왔다던?”

“응. 그림을 즐겨 그렸다길래.”

“...대화, 자주 해?”

“하려고 노력하지. 사제니까.”

그리 말하며, 곁에 가만히 앉아 있던 명호에게 건네주었다. 민규가 당황스런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이 생원이었으면 말을 했어야지..! 억울한 표정으로 토로하는 민규를 깔끔하게 외면한 원우가 묶여있던 끈을 펼쳐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어릴 적부터 드나들었던 서재에서 구해온 것이야. 화지畵紙도 침소에 두었으니 마음껏 쓰고 ...또 필요하면 얘기해.”

“...네. 감사합니다.”

“그림을 좋아한다고?”

민규의 물음에 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회화 같이하자.”

“...나한테 왜…….”

“응?”

청에서 온 수련생인 저에게 왜 같이하자고 묻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원래 모두에게 친절한가? 민규는 다른 친우도 많으면서.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원우 사형이랑 친한 사이면, 괜찮은 생원 아닐까 하는 마음에, 제게로 내미는 두터운 손을 잡았다.

“지금 내게 친우라고는 주작에 한 명뿐이라서 말이야. 네가 오면 음양의 조화가 잘 맞고 좋겠다.”

“...그래.”

친우가 하나뿐이라는 말이 꽤 의문스러웠으나 명호는 그마저도 없었기에 되묻지 않았다. 민규 친구 생겼넹. 원우의 말에 민규가 조용히 하라는 듯 툭, 허벅지를 치고는 일어났다.

“얼른 가보자. 회화는 무예랑 정악에 비해 힘들지가 않아서 인기가 많아.”

민규가 명호를 훅 당겼다. 잔잔한 제 침소의 사형들과 달리, 생생한 모란 냄새가 제게로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이러니 모두가 벌 떼처럼 모란에게 몰려들었구나. 순순히 따라가며 한 생각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란 자네는 우리와 함께하면 나쁠 것이 없으나, 청의 수련생을 들이기에는 어려울 것 같구나.”

“그리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타국에서 넘어온 자가 조선의 생원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마법을 연구하는 것뿐이다.”

“누가 정했습니까?”

“오래전부터 정해져 내려온 법도이다.”

생각했던 대로 박하군. 나무 뒤에 숨어 그 소리를 듣던 명호가 생각했다. 일부러 민규 혼자 보내본 것이었는데, 예상했던 대로 답이 나오니 살짝 김이 새기도 했다. 만약, 민규가 홀로 회화를 하는 모임에 들어간다고 해도 미워할 생각은 없었다. 민규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이들이 명호를 생원이 아닌 수련생이라 부르는 이 상황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명호의 예상과는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그럼 저도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후회하지 않는가? 그림에 꽤 소질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 그래! 사실, 우린 자네를 기다렸어.”

당연히 들어오리라 생각했던 민규가 주춤하니, 온갖 감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서당에서 회화 모임을 함께 하면 그 그림의 가치가 더 높아질걸세.”

“...아뇨. 그래도 들지 않겠습니다. 수련생도 엄연히 선택받은 생원입니다. 그에게 박하게 구는 곳에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단호하게 인사하고 돌아서려던 민규를 붙잡았다.

“그럼...! 활동은 하지 않아도 되니, 이름만 올려두는 것은 안 되겠나.”

“서명호 생원의 것도요. 그것이 아니면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리하겠네.”

확답을 듣고 저와 명호의 이름을 써서 낸 후에야 명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모든 내용을 다 들었는데도 민규는 다시 짚어주었다. ...고마워.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전하는 인사에, 민규가 밝게 웃어 보였다.

민규는 명호와 그림을 그려 밖에 전시할 때, 항상 제 가문의 마법으로 그 그림에 보호막을 쳐두었다. 명호는 이 사실을 졸업할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소만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전날 밤, 지훈이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빙수를 먹으러 나가자고 제안한 덕에 명호는 일찍이 수업을 마치고 침소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시가 될 때쯤에 명륜당 쪽으로 나오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모시 도포를 꺼내입었다.

“......명호!”

낯선 목소리였다. 저 멀리서 주작이 펄럭펄럭 도포를 휘날리며 달려왔다.

“지훈이랑 원우 사제. 맞지? 좀 늦을 것 같다고 전해달래서.”

“어... 많이 늦는다고 하셨습니까?”

“한 시진 정도? 나도 같이 나가기로 했거든.”

근데 나도 일단 무예터에 가서 환복을 해야 해서. 아! 난 문준휘라고 해. 말이 귀에 재빠르게 박혔다. 따로 할 일이 없다면, 같이 가볼 테냐는 물음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권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물 흐르듯 힘을 모아 사용하는 것을 배우던 명호의 눈에는 신세계였다. 홀린 듯 그들을 보고 있으니, 재빨리 철릭을 갈아입고 온 준휘가 붉은 도포를 걸친 채로 명호의 볼을 콕 찔렀다.

“재밌어 보여?”

“네.”

“...같이 할래?”

“네?”

명호가 망설였다.

“몸을 써본 적 있나?”

“어……. 무술을 조금 할 줄 알아요. 한데, 저는 수련생입니다. 그리고... 회화를 하는데…,”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지.”

“...?”

준휘가 명호의 가슴께를 툭툭 두드렸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

“…….”

“제일 중요하지. 안 그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 손을 덥석 잡았다. 할래요, 무예. 준휘가 방방 뛰었다. 수장을 데리고 오겠다며 다른 생원에게 명호를 넘기고 무예 터를 벗어났다.

명호를 넘겨받은 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명호가 어떤 생원인지 아는 눈치였다.

“청에서 온 수련생에게 어찌 조선의 무예를 가르친다고….”

혼잣말이 컸다. 그럼 마법은 왜 되는가. 명호가 반문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실이 될 것을 알았기에 가만히 있었다. 이곳에도 내 자리는 없겠구나. 민규랑 그림이나 그려야겠구나. 다시 돌아서 나가려던 찰나, 누군가가 팔목을 붙잡았다.

“...수장님.”

무예학도가 쩔쩔맸다. 수장? 저보다 키는 반 뼘 정도 작았다. 다들 목검을 들고 있던데, 유일하게 날이 곱게 갈린 월도를 들고 있는 수장이 명호의 팔뚝부터 어깨까지 만져보더니 씩 웃었다. 일부러 애써 웃는 것이 티가 났다.

“서로 배우고 좋지. 무술을 했다고?”

“...네.”

“몸 잘 쓰겠네. 들어와. 같이 하자.”

곧바로 영입되었다. 이리 순탄하게(...) 흘러도 되나? 명호가 제 이름이 적힌 호패를 벽에 걸었다. 보통 무예단에 처음 들어갈 때, 직속 사형의 아래에 이름을 건다고 했다. 권순영, 문준휘. 금색과 홍색의 호패 아래 흑색의 호패가 걸렸다. 저 수장이 권순영이구나. 월도에 묶인 끈의 매듭을 단단히 묶는 모습을 빤히 보았다. 그 시선을 의식한 순영이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었다.

한 무리를 이끄는 백호. 순영을 보고,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꼈다. 정확히 두 달 만이었다. 이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끝까지 버틸 수 있겠다. 평생을 바쳐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나빌레라

徐明浩, 첫 눈과 함께 내려온 현무

마름달 이레, 동지

사신은 오늘이 올해 중 가장 행복한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동안 역병이 돌아 한양을 방문하지 못했다. 그런 곳에 자식을 공부시키러 보낸 것이 큰 걱정 중 하나였는데, 다행히 잘 지내다 못해 대성하여 두 언어를 능통하게 사용하고 가장 최고 학년 생원들이 연구하는 학문에 대해서도 줄줄 꿰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들의 성장을 보고 있자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간단한 의례만 치르는 것이라 해도 곳곳에 정성이 묻어있으니 어찌 미워할 수가 있겠는가.

“지금 내 곁에 명호가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겠군.”

늦은 밤, 불을 땐 따듯한 온돌바닥에 앉아 의복을 정리하던 그가 중얼거렸다. 귓가에 그런가요. 아버지.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당을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그리워 환청이 들리는가 싶어 픽 웃었다. 작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명호가 눈앞에 서 있었다. 명호가 너울을 완전히 벗었다.

“...환청이 아니었구나.”

“서당의 허가를 받고 잠시 나왔는데, 어찌 인사를 할까 고민하다 결례를 무릅쓰고 이리 오게 되었습니다.”

“새롭고 좋구나.”

사신은 명호에게 다가가 꼭 껴안았다. 명호도 어리광을 부리며 괜히 더 매달렸다.

“2년만이구나. 생일을 함께 보낸 것이.”

“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진심이 가득 담겼다. 청에서 보낼 때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보였던 아들이 꽤 많이 성숙해졌다. 사신은 명호의 양 팔을 잡고 토닥여주었다.

“생일 축하한다. 아들아.”

“아. ...이거,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무엇이지?”

명호는 사신에게 두루마리 세 개를 주었다.

“서당에서 틈틈이 그린 그림입니다. 낳아서 길러주신 것에 대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하나를 열어보니, 두루마리 눈이 소복이 쌓인 길 위에 꽃이 아홉 송이 피어 있었고, 나비가 열세 마리 날아다녔다.

“...제 수호신은 현무입니다. 현무는 겨울을 관장하는 신이기에 겨울을 넣었습니다.”

“과연. 그림에서 한겨울의 바람이 느껴지는구나.”

“저와 함께 노니는 친우들이 열두 명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나비라 부릅니다. 나비儺飛요.”

“그럼 이건, 나비들 중 조선의 꽃을 품고 난 자들의 것이겠군. ...여덟 명인가?”

사신이 하나하나 꽃을 세어 보더니 물었다. 명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형 한 분께서 두 꽃을 품고 나셨습니다. 아까 활을 잡고 비무를 하셨던 사형이요.”

“확실히, 백호보다 강해 보이긴 했다. 본연의 그릇도 큰 것 같더구나.”

...이건 무엇이야? 다른 두루마리들을 열려고 하자 명호가 이를 말렸다. 흑색 두루마리가 하나는 홍색, 다른 하나는 청색 주단으로 묶여 있었다.

“낳아서 길러주신 것에 대한 제 마음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각각 그린 것이니 돌아가서 함께 보셨으면 합니다.”

“하하, 그래. 네 마음이 그렇다면 그리하겠다.”

사신은 두 두루마리를 제 짐 옆에 두었다. 잠시 미련이 남은 듯 열어본 두루마리를 다시 보더니 다시 웃으며 말했다.

“첫눈이 내렸다.”

“네?”

“네가 태어나던 그날 말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유독 날이 차서, 어머니와 함께 꽤 걱정했다고 했다. 명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리 잘 자란 것을 보니 뿌듯하구나.”

“…….”

“서당에서도 잘 지내는 것 같고, 말이지.”

명호의 허리춤에 매달린 마구를 만지며 말했다. 분명 청에서 조선으로 갈 적에 맞추어 준 마구는 청의 대나무를 사용한 죽관이었는데, 지금은 매끄러운 전나무 마구가 걸려있었다. 명호는 바로 그 의미를 눈치채고 대답했다.

“저와 침소를 함께 쓰는 현무 사형들께서 사제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준 것입니다.”

“그렇군.”

“그리고 이것은, 나비들과 맞춘, 그들의 힘이 담긴 노리개입니다.”

사신이 애정이 어린 눈으로 보았다. 일단, 가운데에 앉아서 이야기하자며 그를 이끌었다. 명호는 통금도 없으니 그의 뜻을 따라볼까 싶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야기할 것들은 뻔했다. 좀 전에 하던 서당 이야기를 하고, 청에 있을 가족들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물어 몇 년 후의 미래까지 갔다. 명호가 차를 우려낸 덕에 손이 어색하게 꼼지락거릴 필요도 없었다.

“졸업이 4년이나 남긴 했으나 물어보마. 네가 조선의 관직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은 없을 것이고….”

“...네.”

내심 바라는 것인가 싶었으나, 사신은 인자하게 웃을 뿐이었다.

“무엇을 할 생각이지? 고려해둔 것이 있나?”

“음…….”

“나비 아이들과 함께 조선에 있고 싶은가.”

“무예와 마법을 더 공부하고, 산의 신선으로 살아볼까 합니다.”

“...조선에서?”

“네. 조선에서.”

나비들이랑요. 명호가 웃으며 말했다. 약관이 겨우 지날 나이에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될 준비를 한다고 하는데도, 사신은 말을 얹지 않았다.

“......나비들이 그리 좋은가.”

“네.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수련을 꾸준히 하면, 산맥을 따라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 나도 그리 알고 있다.”

“입동이 될 때마다 찾아가겠습니다.”

“네 생에 가장 중요한 날을 할애해주니 고맙군.”

“그날을 만들어주셨으니까요.”

찻잔을 내려놓았다. 고운 다기가 상에 부딪혀 청아한 소리가 났고, 동시에 강한 바람이 불어 창이 흔들렸다. 바싹 마른 낙엽들이 문에 부딪히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서당이 네게 오라고 보채는구나.”

“…….”

사신이 반듯하게 접혀있던 것을 들고 명호의 앞에 웅크려 앉았다. 이렇게 보는 것은, 오랜만이지? 어릴 적 모습과 겹쳐 보였다. 사신은 돌아가는 제 아들이 추울까 싶어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명호는 그 찰나에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의 팔을 꽉 잡고 얼굴을 파묻었다. 우니? 다정한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따스하게 찾아온 겨울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머물다 서당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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