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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하, 커뮤 로그
삶은 고통이다.
과거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삼천 년 전 유물에 불과한 기계에서 눈을 떴을 때, 뇌리를 찌르는 고통에 비명 질렀다. 언제나 현실을 지각 시켜주었던 통증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온몸을 짓눌렀다. 모든 것이 의미를 잃은 현재를 두렵도록 감각으로 쑤셔넣어 도피할 곳을 지워냈다. 고통이 뇌 속에서 비명 지른다. 외친다. 성윤하! 넌 이곳에 있어. 지금, 여기. 이 순간! 네 모든 영광과 고통과 노력이 기록조차 되지 않아 삼천 년의 세월 앞에 전부 무용해진 현재에!
그 끔찍함을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자연히 돌아간 맑은 공기와 푸른 바다 앞에서 성윤하는 감히 비할 바 없는 절망감을 뒤집어 썼다. 이 깨끗한 자연에 필요한 것은 저의 고통도 노력도 천재성도 아니었다. 그저 시간, 시간뿐이라. 성윤하는 사지를 물고 늘어지는 무력감을 느꼈다. 무슨 의미가 있지? 내 고통은, 가쁨은, 삶은, ……생은.
진정 사람으로 의미 있었던 성윤하는 삼천 년 전에 죽었다. 지금 남은 것은 뿌리 내리지 못해 부평초처럼 떠다닐 성윤하의 어느 찌꺼기다. 내밀어진 손을 붙잡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다. 위로하려 애쓰는 서툰 문장들을… 모르는 척 움켜쥐어 날카롭게 되돌려보낸 것 또한 그래서였다. 당신의 호의를 부정하고 무시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남들과 거리를 두는 당신이 그 말을 하기까지 어떤 의지를 품어야 했을지 알면서도, 저 하나 숨 트이기에 급급하여.
그리하여 이제서야 자문한다. 날카롭게 대꾸하는 제게 존중을 보이다 끝내 감정을 터뜨리고 마는 당신을 보고서야 성윤하는 겨우 스스로를 보았다. 제가 이런 말을 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었다. 내게 이런 말을 들을 사람은 당신이 아니야. 거울이라도 보며 스스로 터뜨려야 하는 말을 애꿎은 당신에게 쏘아냈다. 그저 당신이 선의를 보였다는 이유로, 당신의 다정함에 기생하여.
아, 끔찍하다.
나도, 이 상황도.
현재조차.
천지만물이 지겹도록 끔찍한데 두 눈에서 피를 흘려보내는 당신은 깨끗했다. 로비 바닥을 더럽히는 붉은 액체로 시선을 내린 성윤하가 손을 뻗어 그것을 문질렀다.
전에는 두 눈에서 피를 흘리던 당신을 걱정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됐지? 주저앉은 채 당신을 올려다보며 겨우 말을 토해냈다.
"…내가,"
나는 당신의 앞에서 죽었다. 우리의 지부로 돌아가면 시가를 빌려달라며 미래를 약속한 주제에 울컥 들이닥친 현재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숨을 끊었다. 스스로, 자유에 기뻐하며. 그때 느꼈던 공포와 환희가 죄악으로 되돌아온다. 당신에게 나의 죽음을 상기시켰으면서 당신 앞에서 내 죽음을 운운했다.
성윤하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힘겹게 열었다.
"내가, 너에게 끔찍한 사람이 되었어?"
담배를 건네고 불을 붙여주었던 일이 아주 먼 것처럼 느껴졌다. 술을 권하고 웃고 걱정하고 옆을 지키고…. 아이샤, 방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불렀던 당신의 이름이 무거웠다. 성윤하는 여전히 주저앉아 멍청하게 무너진 채……,
이 모든 끔찍함 속 네가 지각시키는 현실을 느리게 삼켰다.
삼천 년 전에 버려진 제 영광과 고통과 노력을, 눈 앞의 당신이 알고 있음을 뇌리에 새겼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간 앞에 기록조차 되지 않아 스러졌다고 여겼던 '성윤하'를 당신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당신은 저와 함께 연구했고, 동면했고, 깨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제 곁에 있었다. 모든 것이 삼천 년 전의 현재와 달라진 지금에도 여전히.
시간의 칼날 앞에 잘려나간 줄 알았던 뿌리가 살고자 퍼드덕거렸다. 성윤하가 간절히 손을 뻗었다. 뿌리를 뻗듯, 당신의 옷자락을 당겨 쥐었다.
"동면 속에서 너를 저버리고, 현실에서는 너를 상처 입히는 내가… 끔찍해?"
미안해, 잘못했어, 따위의 사과는 상대가 받아줄 수 있을 때나 해야 하는 것임을 안다. 따라서 성윤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담배와 술 따위로 숨기려 했던 것들을 변명으로 내보이며 부디 당신이 받아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라.
"변명하게 해줘, 네 미련을 붙잡을 기회를 줘……."
제발, 나로 하여금 현재를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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