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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에서 시작되지 않음에도

재담민하

주민하가 서재담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 사람이 자신과 동류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감정의 온도가 낮다는 점이 아니다. 서재담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맞으며 앞으로 내연녀니 섹스파트너니 하는 문제로 귀찮은 사정이 생기지 않을 사람이다. 이건 중요했다.

주민하의 목표는 세계적인 천문학자이다. 그렇다면 평생을 함께 한다는 가정하에서 남편은 사랑이나 연애보다 신중하고 단순한 기준으로 선택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서재담이 주민하를 선택한 이유 또한 단순했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대다수와 속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대다수에 속하는 데 있어서 어떤 종류의 귀찮음을 덜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민하는 감정의 미비한 오차 정도를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었다.

서재담의 목표는 평범한 일상의 진행이다. 평범한 일상의 반복은 단순히 제 일상의 연속이 아니다. 그의 기준은 타인이다. 대다수의 인류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이번 여름은 비가 끝도 없이 내리는가 하면 갑자기 날씨가 쨍하고 맑아지는 등 각종 이상기후 현상이 목격되었다. 주민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지구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 생각에 잠겼다. 세상은 각종 변수로 가득 차 있으니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다.

드넓은 천체는 아주 미세하게 변화한다. 명운을 다한 푸른 항성처럼 훅훅 뒤바뀌지 않는다. 세상은 아주 짧은 찰나라는 것은 우주를 공부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계속 상기하게 되곤 했다. 갈릴레오가 지구는 공전한다는 걸 밝혀낸 것 처럼 역사적인 사건은 몇천 년에 한번 꼴로 일어나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살아가는 것 뿐이다.

거대한 우주를 전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과 연구와 명제와 미지의 공식이 너무도 많다. 주민하는 그런 것을 느낄 때 마다 숨이 턱 막히는 걸 느끼곤 했다. 제아무리 최연소 박사학위의 천재라 해도 결국 역사에 남을 천재는 아니란 것을 자꾸 실감하게 되었다.

주민하는 최근 홈베이킹을 시작했다. 어쨌든 만들면 제깍제깍 결과물이 나오는 게 좋았다. 제대로 계량하고 시간과 온도를 맞추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약간의 오차가 있더라도 그 정도는 괜찮은 아량이 좋았다.

아침 식사를 끝낸 주민하는 어제 요리해서 냉장고에 넣어둔 사과타르트를 내왔다. 분주하게 사과 타르트를 내오며 어제 사온 시나몬 가루의 향에 대해 떠드는 주민하를 보며 서재담은 타르트를 한 입 먹었다. 파는 것처럼 달지 않고 맛있었다.

“최근에 학계에 리만의 가설을 증명하는 논문을 낸 사람이 있거든요? 지금 연구실의 전부가 달려들어서 그 논문의 오차가 오류를 찾아내려고 혈안이에요. 이런 이벤트는 흔치 않으니까요.”

“너는 안 달려들어?”

“저야 뭐, 슬럼프죠.”

주민하는 사과 타르트를 한 입 와구, 베어 물고 턱을 괴었다. 알룰로스 설탕에 잘 졸인 사과와 시나몬 향의 풍미가 잘 맞아 떨어져서 좋았다. 비싼 걸 살수록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나. 주민하는 겉은 단단하면서 입에서 잘 녹아 사라지는 타르트지를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세상엔 정말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죠. 전부 아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갑자기 그건 왜?”

“그냥, 30년 뒤엔 이상기후로 지구도 없을지 모르는데…. 같은 생각을 계속 해요.”

서재담은 타르트를 한 입 더 베어먹더니 생각에 잠겼다.

“한국은 휴전국이라 전쟁도 언제 날지 모르잖아. 나도 예비군으로 잡혀갈걸.”

“전쟁은 안 일어날지도 모르지만요, 이상기후는 진행중이잖아요. 하아. 기후불안증이라도 생긴 것 같아요.”

사과 타르트 한 조각이 입 안에서 사라지자 서재담은 손을 뻗어 한 조각을 더 집었다.

“넌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을 때도 이런 걱정을 했어?”

주민하는 포크로 사과 타르트를 쿡 찌르더니 고개를 도리질쳤다.

“사람은 당장을 사는 게 최선이야. 텀블러 챙겨다니고 환경관련 공약 내건 정치인한테 투표하고, 뭐. 그런 방법들 있잖아.”

노릇하게 잘 익은 격자무늬 타르트를 멍하니 바라보던 주민하는 가볍게 웃었다.

“잘도 나랑 결혼했네요.”

이유를 덧붙이지 않은 짧은 말이었으나 서재담은 캐묻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하는 걱정은 이해가 되니까.”

결여된 사람과 결여된 사람, 평범하고 싶은 사람이 둘. 그렇다면 지정성별 남녀가 사회적으로 평범해보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지 않던가. 물론 결혼을 했다기보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른 계약을 한 것에 가까웠다. 흔히들 쇼윈도 부부라 부르지만 주민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 결혼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정말 ‘사랑해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사랑이 지속될 수 있는 까닭은 결혼에 만족할만한 타인의 평가와 물질적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주민하는 생각했다. 과연, 자신과 동류인 인간과 결혼을 하는 문화를 인류가 이륙한데엔 어느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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