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
아쿠아리움의 직원인 그는 행사 일정에 따라서 펭귄탈을 뒤집어 쓰고 어슬렁어슬렁 아쿠아리움을 돌아다니고 있다. 아무리 냉방을 빵빵하게 해도 인형탈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하나도 안 느껴진다. 대체 왜 아쿠아리움은 이런 행사를 개최한단 말인가. 특정 펭귄을 찾아서 도장 찍기를 시키다니 이게 뭐람.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바닥에서 구르고 싶다고 그리 생각하던 것을 멈추게 한 것은 인파 사이에서 들린 누군가의 말이었다.
“비소, 저 펭귄 당신 닮았네요.”
슬쩍 벽에 기대서 뒤뚱거리는 자세를 취하면서 들리는 소리가 살짝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보니 두명의 청년이 보였다. 큰 키를 가진 사내와 그보다 조금 작은 백발 청년. 큰 키의 청년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고 있지만 백발쪽은 질색이라는 표정으로 펭귄탈을 보더니 손에 들린 캔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네가 귀엽다는 의미로 말했을리는 없고 너덜한 모습이 닮았다는 거냐?”
“왜 그렇게 비꼬아서 듣는겁니까?”
“졸업이나 시켜주던가.”
“논문이나 제대로 쓰세요.”
“다시 써오라고 돌려보낸 건 너잖아.”
캔이 완전히 찌그러진다. 다 먹은 캔이었는지 음료수가 튀지는 않았지만 손에는 묻었는지 한숨을 내쉬는 백발 청년에게 사내는 어디선가 물티슈를 꺼내 내밀었다.
“깔끔쟁이.”
“친절하다고 말해주면 어디가 덧납니까?”
“내 논문의 원수.”
“솔직히 그 논문 오류가 있었잖아요.”
“인정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억울하다고.”
“잘 할겁니다. 잘해왔잖아요.”
쓰레기통에 캔을 집어 던진 백발의 사내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한다. 얼굴이 붉어지는 거 같더니 이윽고 입을 벙긋거리다가 다시 걷기 시작하고 사내도 그 뒤를 쫓는다.
“그래, 그래, 내가 택한 지도 교수 내가 감당해야지.”
“힘내세요.”
“그으래도 데리고 나와줘서 고맙다~.”
멀어지는 두 사람은 곧 해파리 코너로 사라졌다. A만이 둘의 관계는 대체 뭘까 하고 고민하다가 일을 하기 위해서 다시 움직였다.
“이거 너 닮았다.”
“뭔데요, 그게.”
“해파리. 무희나선해파리래.”
“어디가 닮은건데요?”
“머리카락이 흐느적거리는게 닮았네.”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은 흐느적거립니다, 비소.”
논문을 통째로 다시 써야하는 것이 그렇게 충격이었나. 자신은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공감은 안 가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겠지. 유리에 얼굴을 붙이고 논문~ 하고 다시 우울해지는 비소의 목덜미를 잡고 앞으로 다시 걷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꼴보기 싫다고 손을 써겠지만 어쩌겠나 좋으나 싫으나 비소에게는 그럴 순 없지.
“비소, 다시 묻는데 왜 굳이 제가 있는 곳으로 전과해온 겁니까?”
“뭐?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건데?”
“궁금해서요. 당신이라면 원래 무용과에서도 제법 성적이 좋았잖아요?”
“내가 학교 축제 때 무대 위에 올라간다니까 엄청 쳐다봤잖아?”
“제가요? 언제요?”
“그랬거든~. 평생 관객이 한명 뿐인 것도 재미있잖아.”
“바보 같은 인생을 살고 있네요.”
“싫어?”
“누가 싫다고 했나요? 지레짐작해서 멋대로 말하지마세요.”
낼룸 혀를 내밀어서 가볍게 메롱하더니 다른 해파리 수조 앞으로 가버린다. 나중에 기프트샵에 가서 해파리 키링이라도 사줘야하나, 같은 시덥지 않는 생각을 하며 민화인은 그 뒤를 쫓았다. 이걸로 기분이 풀어진 거 같으니 다시 논문에 집중할 수 있으면 된거겠지.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랩실 사람들 말로는 제법 잘 하고 있는 거 같으니 더 이상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비소, 애처럼 뛰지마세요.”
“네가 느린거겠지.”
“아니요, 보통 걸음입니다. 제 옆에 좀 있으세요.”
저만치에서 이쪽을 돌아보더니 인심 썼다는 듯이 꽤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와 옆에 섰다. 자기가 해파리면 자긴 뭐 나비인가? 나비랑 해파리라니 어울리는 조합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떤가.
“기념품 가게에서 해파리 사야지.”
“정말 저랑 해파리가 닮았습니까?”
“닮았지.”
“허.”
그의 기분이 풀렸다면 이정도는 봐줄까. 내일부터 또 비명을 지를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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