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파르페를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새플리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되새겨보았다. 어려운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 초월적 존재들의 이야기도 아니니 그의 말 자체는 이해했다. 이해하고 말고. 다만 듣는 순간 받아들이지 못 하고 반사적으로 되묻고 말았다. 머릿속에서 독립의 사전적 정의가 떠오르고 이어지는 말에 멍청한 소리로 다시 네? 하고 되묻는 자신이 있었다. 함장에게 독립을 막을 권한이 없다는 것도 안다. 알고 말고 잘 알지. 새플리는 파르페를 먹던 숟가락으로 그릇을 툭툭치며 렘브리안트를 바라보았다.
"전 지금 하나의 인간으로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걱정마세요."
솔직히 말해서 한 번 속아서 그런지 "저 걱정마세요." 라는 말도, 또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말도 믿음이 안 간다.
"언제 가실건데요?"
지금이라고 말할 거 같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갈 거 같다.
"준비를 해야하니 아마 며칠 걸릴 겁니다."
말이 며칠이지 그라면 금방 준비를 끝낼 것이다. 자신의 손을 잡는 그 온기가 따스해서 새플리는 계속 붙잡는 대신 그 손을 빼고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달고 단 맛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필요하신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물론, 혼자서 다 하실 거 같지만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저번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미래를 말해줬잖아. 혼자서도 잘하시겠지. 파르페를 다 비우기도 전에 패드가 알람을 전달한다. 아, 오늘 란타나랑 예산 이야기 하기로 했지. 벌써 시간이 되었나. 알람의 정체를 아는지 렘브리안트는 웃으며 다녀오세요,라고 말했기에 새플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면 연락을 주기적으로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미개척 우주라서 힘들거나 안되지 않을까. 고민이 이어져간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새플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의 끝자락이나 다름 없는 순간에 자신을 건져 올려준 건 이 함선과 그였으니까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닌가. 집착인가? 그와 함선을 위해서라면 부함장이라는 직책이 부담스러워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가 없어져도, 여기가 관처럼 느껴져도 버틸 수 있었다. 뭐, 멋대로 없어져서 화가 났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풀렸으니 넘어가고-.
'그러보니 나는 그와 함선을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독립이구나. 그도 이 함선에서 독립하는거고, 나도 독립해야겠지. 책상에 다시 머리를 박는다.
"예산안 회의 안 해?"
"란타나, 1분만 휴식해요."
"왜 또 멍청하게 징징거려? 거주구역 갔다가 또 소매치기 당했어?"
"소매치기 놓칠만큼 제 다리가 느리지는 않아요."
"그러면 왜 죽상이야?"
"독립이라는 건 좋은걸까요."
"함선 떠날거면 정리 잘하고 가."
"누가 떠나요?"
"너 함장직 그만 두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냐? 1분 지났어. 일 합시다, 새플리 함장."
함장직을 그만 둔다는 선택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새플리는 란타나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업무를 시작했지만 떠오른 생각-자신이 그만 둔다는 가정이 떠오른다. 그만 둔다고 하면 실망은 하지 않겠지. 자신이 아는 렘브리안트는 그랬으니까. 오히려 새로운 일 잘 하라고 하겠지. 생각은 이어져간다.
아, 진짜 함장직 내려놓을까.
물론 그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만큼의 기간이었지만 말이다. 내려놓는다고 욕을 할 분들은 아니니까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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