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대한민국에서 호텔 투숙객이 납치 되는 경우는 있을까? 그것도 큰맘 먹고 잡은 5성급 호텔에서. 하지만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은 납치 말고는 전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진짜 어이없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걱정? 아니 이건 무섭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평소에도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하는
인생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재수가 없으면 이렇게까지 없을 수가 있을 정도로 없는 게 바로 나. 서씨가문 4대 독자 서사주. 제대 후 빠르게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던 나는 운이 좋게 면접까지 패스하고 오늘 드디어 첫 출근 날이었다. 물론 중소기업이긴 했지만. 시간 맞춰서 나온 정거장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나를 두고 떠나버렸다. 첫날부터 지각할 수 없어 결
맑은 하늘. 그렇지만 예보에 의하면 오후부터 폭우가 쏟아질 예정이란다. “조로, 우산 가져가.” 선심 써서 챙겨줬다. 안 그래도 바보같이 생긴 놈인데 비에 젖은 생쥐 꼴까지 하면 볼썽사나울 테니까. “오늘 비 많이 온대.” 녀석의 옷 색깔에 맞춰 고른 우산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자식이 쳐다보는 시늉도 않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 현대물 상디는 이제 자신의 집인 것처럼 익숙한 그녀의 집에서, 그녀의 침대 옆 부분에 기대어 앉아 그녀를 끌어안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접이식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은 그녀가 상디의 품에서 손만 뻗어서 이리저리 마우스를 움직였다. 여기저기 사이트를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인터넷 창에 탭만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거 어때요?”
상디는 처음으로 그녀를 봤던 날을 떠올렸다. 그 날엔 이렇게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터였다. 단순히 그녀는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 소녀였고, 자신은 그런 소녀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요리사일 뿐이었다. “상디, 우리 마을 구경 가요!” “원하신다면 어디든지!” 분명 그런 관계였을 터였다. 그의 가슴에 뿌리를 내린 감정이라
※ 현대물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지만 역시 실전만큼 떨리는 것도 없었다. 상디는 오늘 그녀에게 프러포즈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말로 마음을 전하면 좋을까. 어떤 말을 꺼내야 그녀에게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보일 수 있을까. 쉼 없이 생각했지만 딱 이것이라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 현대물 그녀는 간만에 데이트에 기분이 들떴다. 서로 바빠서 잠깐 얼굴만 보고 헤어지는 나날들 끝에 겨우 찾아온 휴일에 그녀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지난밤에 뭘 입을지 한 참을 고민한 끝에 새로 산 원피스를 꺼내들었다. “오늘 좀 화장 잘 된 것 같아.” 괜히 거울 앞에 서서 몇 번이고 더 옷을 정돈하자 꽤나 흡족했다. 오늘은 화장도 잘 된 것 같고
※ 현대물 “빨리 와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요!” 상디는 신이 나서 먼저 동물원 입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무더운 8월, 일이 많아서 휴가도 못 갈 것 같다고 울상이었던 그녀가 놀랍게도 일이 빨리 끝났다면서 못 쓸 것 같다던 여름휴가를 받아온 것이었다. 회사에 다니는 그녀와 다르게 자신만의 가게를 가지고 있는 상디였기 때
“상디!” “네, 레이디.” “지금 바빠요?” “아뇨, 괜찮아요.” 한가로운 오후에 딱히 할 일도 없었던 터라 상디는 그녀의 방문이 반가웠다. 대부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음에도 이렇게 찾아와주면 가슴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것이 넘쳐서 심장을 감싸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여기 가만히 서 있어요.” “서 있기만 하면 될까요?” “네.”
상디는 똑똑, 조심스럽게 그녀의 방에 노크했다. 새로 만든 자신 작을 빨리 맛보게 해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그녀의 기분이 처져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들어오라는 그녀의 목소리에 상디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디?” “에그 타르트를 좀 만들어봤어요.” 냉큼 테이블 앞으로 와서 앉는 그
그녀는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 타이밍에 이렇게 말하면 되겠지, 머릿속에선 벌써 말을 하고도 남았는데 막상 그를 보기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음? 왜 그러세요?” “으응, 아니에요.” 결국, 또 입술만 달싹이다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선 발걸음을 돌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쉽게 나오던 말이
“이건 어때요?” “잘 어울려요.” 상디의 대답에 그녀는 한 번 더 거울을 보고선 다른 옷을 들고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갈아입는 것이 번거롭기는 해도 보여줄 사람이 있으니 그 번거로움도 참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건요?” “예쁘네요.” “…음, 이것도 저것도 다 잘 어울리고 예쁘다고 하면 고를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사실
“상디.” “네, 뭔가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아뇨, 그냥 한 번 불러봤어요.” 한가로운 오후, 둘이서 함께 있는 것이 이젠 낯설지 않아서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상디가 일을 하는 동안 그녀는 옆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상디를 구경하기도 하고 대부분 시간을 상디의 곁에서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디
※ 현대물 지난번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그녀는 술을 마시기 전에 상디에게 술을 마시게 되었다며 연락을 했다. 술에 많이 취해서 또 이상한 짓을 하진 않을까 싶어서 조절해가면서 마시긴 했지만, 분위기에 타고나니 금세 주량을 넘겼다. “상디, 왔어요?” “네, 저 왔어요. 이제 갈까요?” “더 놀다 가요!” 더 놀다 가자고 하는 그녀를 어르고
오늘은 다들 기분 좋게 한 잔씩 하다 보니 그녀 또한 술을 마시게 되었다. 평소엔 논 알코올을 마시거나 약한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던 그녀가 제법 도수가 있는 술을 아무런 변화 없이 마시니 다들 그녀가 술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워요.” “취했어?” 창백한 얼굴로 덥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다들 그제야 그녀가 취했나 싶어서 그
※ 현대물 상디는 울리는 그녀에게만 따로 지정해둔 벨 소리에 냉큼 핸드폰을 들었다. 곧 들려올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가 눈앞에 없더라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네, 여보세요?” - “아,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누구시죠?” 그녀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이의 목소리에 상디는 다른 직원에게 뒷정리와 문단속을 부탁하고 냉큼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