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P

pina peonia colada

죄를 씻자(씻을 수 있을 리 없잖아, 무리무리!(*함께하니 무리가 아니었다?!)

BGM / 자상무색(自傷無色) - cover by 25時、ナイトコードで。 × 初音ミク(원곡: 네코볼로)

(본래 게시할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각해놓은 BGM이 없던 관계로, 작업하면서 들었던 노래를 대신 BGM으로 첨부합니다. 가사가 우울하기에, 노래 가사 그 자체보다는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들어주세요.)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환하던 시야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위를 올려다보면 무난하게 익숙한 표정이다. 한때는 보고 싶어도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낯을 마주하지 않는 날이면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기분까지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든 얼굴을 가진 사람.

모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피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추, 추측이긴 하지만, 이 시간에 운동장 구석에 혼자 앉아있고…. 뭣보다 웃고 있질 않아서.”

“그렇게 티가 났다니.”

“괜찮으면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어?”

모란은 자연스레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옷이 더러워지는 건 상관없지만 이브이 가방만큼은 아니었는지 그는 가방을 품에 안고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피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몰라 미리 머리를 굴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별일 아니야. 아까 밥 먹으러 가는데 어디서 너 머리가 너무 긴 게 아니냐는 말을 들어버려서……. 그래서 잠시 옛날 생각이 났을 뿐이니까.”

“별일이 아닌 게 아니네.”

“그런가. 아무튼,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보지도 않았어. 정신 차려 보니 그냥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있더라고.”

“아아, 그거라면 나도 그런 적 있어. 한창 심할 때는 지나가다 가라르지방이란 말만 들어도 심장이 철렁했거든. 으음, 말하고 보니 같다고 할 순 없으려나.”

아직 후회하고 있는 거지? 그때 그 일. 피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모란의 시선은 그를 피해 저 하늘 높은 곳에 있었다. 차마 마주 보고 담담하게 말을 꺼내긴 힘든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그의 모습에 피나는 멍하니 옆을 바라보았다.

후회해서 좋을 건 없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임과 동시에 알고 있으면서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다.

사람들은 때로 그저 실천하기 힘들 뿐인 당연한 명제를 깨달아야 아는 인생의 진리인 것처럼 말한다. 그 말들은 때론 예쁘게 가공되고 포장되어 ‘명언’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다. 물론 그럴 뿐이라 해도 분명 멋지지 않은 말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문장에 감명받고, 쉽사리 자신의 이상으로 삼으며 공감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하지 못하기에.

“후회한대도 잘못을 씻을 순 없어.”

모란이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그런 거라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고.”

그는 고개를 돌려 모란 대신 앞을 바라보았다. 익숙하고 당연한 대답이네. 마치 언젠가부터 자연스러워진 네 모습처럼. 피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식적인 대답이기에 그 어떤 대답보다도 쓰라리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상식이라는 단어와 멀어졌더라…….

“근데 그냥 싹 씻어버리고 싶지 않아?”

한순간 운동장이 반 바퀴 돌았다. 갑자기 모든 게 아까랑은 완전히 거꾸로다.

“뭐, 뭐라고?”

“아니, 씻어내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빨아버리고 싶어. 박박 빨아서 새것처럼, 원래부터 그런 건 없었다는 것처럼 굴고 싶어.”

근데 후회는 먼지가 아니고 찢어진 자국이잖아. 그렇게 말하는 모란의 얼굴이 조금 전의 자신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어 피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은 살면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뭐가 묻지 않게 조심해도 어떻게든 옷이 더러워지게 되는 것처럼 노력해도 어떤 식으로든 후회할 일은 저지르게 되어 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잘못을 저지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다음에 있다.

모란을 포함한 스타단의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그에게는 ‘잘못’이 있었다. 그게 부당한 일을 당할 이유는 될 수 없었으나 ‘잘못을 저질렀으니 미움받는 건 당연하다’라는 문장 아래 모든 게 정당한 일처럼 포장되었다.

많은 사람은 잘못을 씻어낼 수 없음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세탁기에 넣는다. 벌이라는 세제로 싹 빨아내면 새사람이 되겠지. 세탁기 속에서 때론 피나는 죄인이기도 하고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사람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입안에서 두 팔과 두 다리가 묶여 매달아지기도 한다. 그렇게 모두는 자연스럽게 세제로는 죄도, 상처도 씻을 수 없다는 걸 잊는다.

찢어진 옷을 세탁기에 돌린다고 해서 찢어진 걸 꿰맬 수는 없다. 얼룩과 스크래치는 다르다. 그걸 알면서도 모란은 가끔 모든 게 깨끗해지길 바랐다. 될 수 있으면 전부를 씻어내어 편안해지고 싶었다. 후회가 찢어진 부분이 아닌 더러워진 자국이기를 바랐다.

어떤 일은 잘못 빨려 물이 빠지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다른 기억이랑 섞여 원래 색을 잃겠지만 그래도 깨끗해지니까. 그거면 괜찮을 거 같네. 안 그래? 모란은 그렇게 말하며 실없이 웃었다. 왜 그런 말을 하며 웃는 거야? 싹 씻어내 버리면 아무런 표정도 남지 않을 것처럼…….

“너도 후회하는 게 있어?”

모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후회할 정도의 잘못이라면 확실히 있는데 정작 그걸로 후회하지는 않아.”

“어째서?”

“난 알면서도 한 거니까.”

“제대로 잘못을 물은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고?”

“그럴지도 모르겠네…….”

모란은 부정하지 않았다. 위조화폐 발행과 친구들을 두고 떠난 것 둘 중에 무엇이 더 무거운 죄냐고 묻는다면 열에 열이 전자라고 말하겠지만 모란만큼은 당연하게 후자였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었다. 잘못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란은 엄연한 잘못보다도 단순히 잘못된 선택이었을 뿐인 일을 더 후회했다.

마음의 무게는 남들이 따지는 상식적인 잘잘못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기에.
그래서 모란은 잘못을 묻지 않고 넘어간 데에 가지는 부채감이 덜했다. 벌이 주어진다면 달게 받겠지만 잘못했다는 데에서 느끼는 상식적인 죄책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데에 아주 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어쩌면 마땅히 가져야만 할 잘못에 대한 후회의 공간에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객관적인 사실 대신 감정이 가득 담긴 친구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렇기에 그의 후회와 피나의 후회는 평행선을 달렸다. 잘못 그 자체에서 나온 후회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단 것에서 나온 후회는 결코 같아질 수가 없었다.

“미안, 따지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니, 나라도 그렇게 얘기했을 거야.”

사과와 인정으로 대화는 다시 원위치, 운동장도 반 바퀴 돌아 제자리다. 다시, 상식선이다.

지금 우리를 세탁할 수 있다면 너도, 나도 그게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도 분명 그렇게 하겠지. 그래도 넌 분명 이브이 가방은 놔두고 세탁기에 들어갈 것이다. 나도 노트북만큼은 두고 들어가고 싶다. 아무리 얼룩진 자신을 싹 빨아낸대도 그것만큼은 있는 그대로 두고 싶으니까.

자신도 모란도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 때문에 어쩌면 평생을 후회에 사로잡혀 지낼 수도 있다. 이 상태와 이 감정에 당장 낼 수 있는 답은 없다. 후회해서 좋을 건 없다. 그 말을 이상으로 삼으며 살아가려 노력할 뿐이다.

“뭔가 힘들어 보여서 할 수 있다면 해결해주고 싶었는데, 전혀 그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네. 미안, 도움이 되지 못해서.”

“이렇게 같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것 때문에 괴로워할 거잖아.”

“그래서 충분하다는 건데? 괴로울 때 괜찮냐고 말해줄 사람이 있으니까.”

후회할 때 후회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후회할 일 같은 거 싹 씻어버리고 없던 것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한 치의 후회도 없는 얼굴로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지금의 피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한 건지도 몰랐다.

“있지, 아까 잘못을 씻어서 없던 것처럼 하고 싶다고 말한 거, 사실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야.”

“알아.”

“헉, 지, 진짜로?”

“당연하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바라는 거잖아? 지금 내 생각대로 말하자면, 그거라고. 전혀 다른 후회를 하니까 같을 수 있는 거? 그렇게 말하며 피나는 웃었다. 엄지손가락은 들지 않았다. 모란은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마 오늘의 일은 기억에 묻어두고 가끔 꺼내 보겠지. 그리고 그걸 꺼낼 때는 분명 좋을 때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회는 때로 찾아오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같이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는 완전한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게 다른 결의 후회에 빠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다른 결의 후회라도 견딜 수 없을 때 서로를 세탁하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영 세탁기에 들어가려 하지 않겠지. 찢어진 자국이 깨끗하게 아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니까 진짜로 세탁기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더욱 서로를 말릴 것이다. 같은 아픔이 있는, 다른 후회를 하는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피나.”

“왜?”

“후회해도 좋아.”

“갑자기 무슨?”

“실컷 후회하고 실컷 털어내 버리자.”

“그렇다고 잘못이 씻기는 건 아니잖아? 네가 말했듯이.”

“알아. 아니까 털어내고 싶은 거야.”

먼지가 아닌 걸 알아도 털어내고 싶다. 결국, 운동장은 다시 반 바퀴 돌아 비상식의 세계다.

“그래 볼까…….”

“지금부터야. 근데 굳이 약속은 하지 말자.”

스스로 만든 규칙에 얽매이면 곤란하잖아. 모란은 정면으로 피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에서 평행선을 걷던 두 사람은 그렇게 비상식에서 마주 본다. 어쩌면, 다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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