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히어로메이커/로엔벤]여름 어느날

2019.07_히어로메이커 전력 제 6회 주제 : 괴담

텐님창고 by tennim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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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타입(2019.07.07) 게시글입니다.

-최종수정(2024.02.19)

여름의 밤은 늦게 찾아와 일찍 떠나가지만, 그럼에도 어느 계절보다도 가장 강렬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날벌레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약올리듯 오가고, 찌는 듯한 더위가 당신의 몸을 내리누르며, 땀에 축축해진 옷은 당신의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찬찬히 식으며 괜한 오싹함을 주는 그런 밤.

로엔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다. 겨우 구한 여관방은 충분히 넓지 못했다. 서둘러 잠에 들지 않으면 옆사람의 잠버릇에 치이고 요란한 이갈이 소리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로엔은 그 때를 놓치고 말았다. 넘어오면 안된다며 일자로 정렬한 베개를 클로에의 장렬한 발차기가 날려버리고, 교주가 잠꼬대로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을 즈음 로엔은 자기를 포기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베개를 벽에 세워 등받이마냥 기대고 앉아있자면 로엔이 누워있던 자리는 금새 다른 이들이 침범하여 다시 누울래야 누울 수도 없게되었다. 내일 조금 피곤하긴 하겠지만 탑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밤샘 정도야 곧잘 해보았다. 일행의 기상시간은 이른 편이었으므로 적당히 하늘의 별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누군가는 일어날 것이었다.

로엔은 방에 난 작은 창을 올려다보았다. 굉장히 새카만 하늘이 로엔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까만 밤은 처음이었다. 날이 어두운가? 별이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건 이대로 날이 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로엔은 긍정적으로 그리 생각하였으나, 그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본 순간 모두 부질없게 되었다.

창 밖의 어둠 속 두개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이, 그것은… 깜빡이고있었다. 별? 그럴 리가. 그것은 틀림없는 눈이었다. 어두운 것은 하늘이 아니었다. 창을 가리고 달라붙어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누군가의 그림자며 몸체였다. 로엔과 그 눈이 마주쳤을 때, 로엔은 알았다. 그것이 미소지었다. 빛이 가늘게 접혔다. 그것이 로엔의 존재를 깨달았다! 쾅! 쾅!

쾅! 창을 내리치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울렸다. 그에 맞춰 로엔의 심장도 두방망이질쳤다. 저게 뭐지? 괴한? 그러나 로엔이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려 다시 한번 시선을 주었을 때, 창밖의 빛은 두개 이상으로 늘어있었다. 둘, 넷, 열 여덟, 서른……. 정렬 없이 마구잡이로 박힌 눈알이 도르륵 굴러 모두 로엔을 향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잡아들고 마법을 썼다. 어떤 마법을 쓰려고 했더라. 방어결계를 펼치려고 했던가, 바깥을 공격하려고 했던가. 너무 급하였던 탓에 그조차 기억하지 못했으나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마법이 발동되지 않은 탓이다.

갑작스레 닥친 위기상황에 로엔은 서둘러 일행을 흔들어 깨웠다. 깨우려고 했다. 허나 그들은 누구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큰 소리 속에서 여태 일어나지 않은 것부터 이상하다. 로엔보다야 이런 일에 훨씬 예민한 이들인데.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로엔은 알 수 없었다. 이 모든 인원을 로엔 혼자 업고 도망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방문은 꼭 누가 밖에서 막고 있는 것처럼 아예 열리지도 않았다. 문 밖까지, 어쩌면 창뿐 아니라 이 방을 사방에서 저리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공포만이 커졌다. 이건 꿈인가? 꿈이라면 깨라, 깨라…. 로엔은 지팡이를 꼬옥 쥐고 열심히 중얼거렸지만 그를 비웃듯 창을 두들기는 소리만 더 커져갔다. 결국 로엔은 다시 눈을 떴다. 꿈이 아니고, 일행들 누구도 나설 수 없다면 로엔이 모두를 지켜야 할 때였으니까. 마법이 통하지 않더라도.

로엔은 지팡이를 가로로 들고 여차하면 물리적으로라도 막아보려는 심보로 창가로 조심히 다가갔다. 창이 여태 깨지지 않은 것이 그저 용했다. 어쩌면 저것은 방에는 들어오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날이 밝는대로 조용히 물러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희망은 원래 쉽게 깨지는 법이라고 했던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창에 크게 금이 갔다. 저것이 창을 깨고 방안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걸까. 죽음을 앞두고 본능대로 깨어난 뇌가 쓸데없이 바쁘게 일처리를 하는 바람에, 로엔은 그 짧은 순간에 300여개는 넘는 끔찍한 미래를 예상하고 말았다. 이럴 때, 이럴 때… 벤님이라면,

“벤님이었다면.”

로엔은 창이 깨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질끈 눈을 감으며, 결국 벤으로 이어지고만 제 사고에 웃어버렸던가. 벤님, 든든한 벤님. 못하는 일 없이 무엇이든 척척 해내고, 어떤 상황에도 기죽지 않고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상대를 내려다보고 결국엔 자신의 흐름으로 끌어들이고 마는, …로엔은 평생 될 수 없을 그 모습을, 로엔은 동경했고 또….

…아무리 주마등이라 해도 찰나의 시간이 너무 길지 않나? 어둠이 로엔을 향해 뻗어오는 모습을 분명 보았는데. 각오를 다지고 치켜든 지팡이에도 그 무엇 하나 닿는 느낌이 없었다. 슬쩍 뜬 눈에 비친 것은 여전히 검고 검은 흑색이었으나, 저따위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믿음직한,

“벤님!”

그래, 벤 카슬러의 것이었다. 언제 깨어났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지? 다른 일행들은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역시 벤님은 굉장해! 로엔이 그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벤을 보는 사이, 벤은 제 단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막아내는 것도 모자라, 눈알을 찍어눌러 밖으로 내모는 것까지 모두 마쳐버렸다. 마법마저 봉하는, 실체도 없어보이는 그것을 벤이 어떻게 해치웠는지보다도 그저 벤의 활약 자체에 두근두근 설레어버린 로엔의 손을, 벤은 조용히 잡아 끌었다. 다른 일행이 침범하여 사라진 로엔의 잠자리도 사정없이 그들을 발로 쳐내어 만들어주고는 로엔을 눕게 했다.

아까까지는 그렇게 불면에 시달렸는데, 심지어는 방금까지 무서운 경험을 했는데도 벤의 손길이 닿자 이상하리만치 순순히 잠이 몰려왔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제 아침이었다. 먼저 깨어난 이들이 웬일로 늦잠을 잤느냐며 가볍게 놀리는 것에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보니, 윌리엄이 창 아래 깨진 조각들을 치우고 있었다. 일어나보니 깨져있었다며. 역시 낡은 여관은 묵을 곳이 안된다며 웃는 것을 뒤로 하고 당장 벤을 찾았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아침에 혹시 그것은 꿈이었나 했으나 역시 현실이었던 탓이다. 로엔이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라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저기, 벤님은 혹시 어디 계신지….”

“나무 위에!”

“감사합니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답이 이어졌다.

“도적은 나무 위에서 자잖아!”

어라? 그러고보니, 벤님은 어제… 이 방에서 자지 않았다. 로또스 전기의 도적 설정을 욕하며 나뭇가지 위로 기어올라가던 모습이 이제야 떠올랐다. 황급히 달려나가 침낭이 매어진 나무 아래로 달려가면 벤은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로엔이 벤의 이름을 불러도 으응, 막둥아 잘잤냐…, 하는 태평한 잠꼬대만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어제 로엔이 본 벤의 모습은 대체 무엇이었지? 무언가 정체불명의 것이 벤을 흉내낸 것이었다면…….

로엔은, 그런 가정을 세우며 어쩐지, 어쩐지... 오싹함보다도,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잠과 현실의 경계에서, 이마에 무언가 물컹하고 따뜻한 것이 닿는 것을 느낀 것도 같았는데.

“벤님이, 아니었구나….”

이마를 매만지며, 로엔은 아침준비를 돕기위해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벤의 붉어진 귀는 보지 못했다. 뭐, 그런 어느 여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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