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싫

실험 계획

프랑스는 베이컨이 아니고, 프랜시스 베이컨.

서철로 뭔가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던 중 베이컨으로 글이 쓰고 싶어졌어요!

항상 그렇지만 철학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아요. 발할라의 베이컨은 뭐 하고 지낼까, 생각하다 떠오른 소재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발할라라는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다.

자신은 종교의 잘못된 권위에 억눌린 학문을 제자리로 돌리려 했었다. 실용적인 학문을 종교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려 했고 본인 또한 자연을 직접 관찰하였으며, 굳이 신학적인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신과 종교는 철학의 관심사가 아니니까. 우리는 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다만 감탄하고 숭배할 뿐.

그런데 여긴 뭘까.

잘 몰랐던 세계의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났다. 이곳의 기후는 자신이 살던 영국과 완전히 달랐다. 이곳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만난 적도 없고, 이야기를 들어 봐선 자신과 같은 시대의 사람조차 아닌 듯했다. 꿈인가? 라기엔 경험하지 못한 것이 꿈에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늘 따라왔다. 접해본 적도 없는 사상이 자신의 꿈에 나타나지는 않을 듯했다. 그렇다면 이곳은 저승인가? 그러나 나는 왜 저승 같은 공간에서 의식과 감각을 유지하고 이 자연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가? 노자라는 자가 기록해 두었다는 ‘죽간’이란 기록물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이곳의 관리자라는 존재는, 신인가? 철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신학은 고려 대상이 아니어야 할 터인데, 철학을 한다는 사람들을 이곳에 모아두고 지켜보는 연유는 무엇인가? 신적인 존재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아야만 할 철학자들을 지켜보는 것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내적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려는 유희이거나 기만인가?

베이컨은 식탁보가 덮인 야외 탁자에서 서책과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아있었다. 슬슬 추워지기 시작하는 날씨에, 그는 잠깐 몸을 떨었다. 초겨울의 찬바람이 스쳤다. 여기 온 지도 조금은 시간이 지나서, 어느 정도 적응은 하였다. 이곳의 날씨는 생전 영국보다 다이내믹했다. 치솟는 더위의 여름 날씨, 훅 떨어지는 겨울의 기온. 사람들 또한 달랐다. 특히 동양이 그랬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전의 자신만큼 풍족한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베이컨 또한 식사량을 조금씩 줄여 지금은 소소하게 빵과 차 정도만 끼니로 먹게 되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중국의 차를 구하기가 생전 영국보단 훨씬 수월한 것이 흡족했기에, 점점 그는 발할라를 받아들였다.

날이 갈수록 이곳에는 사람이 늘었다. 뒤에 ‘태어난’ 자들은 베이컨 자신을 경험론의 선구자라고 불렀다.

‘솔직히 당황스러웠지. 경험론empiricism이라는 말은 내겐 긍정적 의미가 아니었으니까.’

베이컨 생전에 ‘경험주의자’라는 말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놀이 삼아 학문을 하는 사람, 즉 진지하지 않은 학자를 가리켰다. 그래서 처음 자신을 경험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태어났을 때, 그는 화를 냈다. 눈에 띄게 당황하며, 후학은 그에게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경험주의는 철학의 흐름을 크게 나누는 두 축 중에 하나입니다.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상대되는 개념인데 왜 이리 화를 내시는 건지……. 그제야 베이컨은 자신의 생전과 ‘현재’의 ‘경험론’이란 말의 함의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체감했다. 한동안 사과하지는 않았다. 몰랐던 게 잘못이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중엔 그 또한 그 달라진 함의를 받아들이고 후학에게 사과했다. 오만한 성정 때문인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한 번 받아들이고 나니 자신을 경험론자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그리 화날 일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큰 흐름의 한 축을 열어젖혔다는 사실에 다소 우쭐해지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리고 지금 당장은, 생전에 하다 만 실험을 이어 할지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로사항은 많았다. 이곳의 기후가 생전의 환경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실험 결과가 신뢰 가능할지도 의문. 이곳의 정체조차 모르겠는 상황에서 부패의 정도가 과연 신뢰 가능할지의 문제, 또 그 관리자라는 자가 여기까지도 관여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경험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러던 그는 문득 자신의 현재 사고과정이 이곳에 온 또 다른 학자의 사고와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자각했다. 모든 걸 의심하다 생각하고 사고하는 자신만은 의심할 수 없다 결론내며 이성으로 시작하는 연역을 신뢰하는 사상이었다 들었다. 르네 데카르트라고 했었지. 이것 참,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가 따라가고 있다니.

그는 다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내가 한 흐름의 축을 만들어낸 사람인데. 내 사상 밀고 나가는 뚝심 정돈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서 그 모든 고민을 그만두었다. 책을 덮고, 그는 미리 가져온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리고 그는 실험 계획을 휘갈기기 시작했다.

이곳의 겨울은 춥고 길고 건조하며, 눈도 많이 내리는 편이지. 어차피 여기서는 폐렴 걸려 죽지도 않으니 최적의 조건 아닌가. 나는 나의 경험을 믿겠다.

생각하며, 프랜시스 베이컨은 해가 기울어가는 것조차 모른 채 종이를 검게 채워갔다.

찻잔의 차는 이미 차갑게 식었으나, 그의 눈빛은 열의로 빛났다.


짤막하게 써봤습니다.

뭔가 베이컨이라면 발할라 와서도 실험하려 할거같은데,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할까 생각해보며 쓴 글이에요.

경험론, 경험주의자라는 어휘의 함의가 베이컨 생전과 달라진 것을 한번 소재로 써보고 싶기도 했어요. 사실 베이컨 본인은 자신의 논의를 경험론으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거든요. 경험론의 명쾌한 정의는 존 로크 때, ‘경험론empiricism’이란 말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정립된 분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할라 베이컨이 본인을 경험주의자라고 칭하는 걸 들었을 때, 좀 화내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그의 탐구에 대한 열정을 살려보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항상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24.10.02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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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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