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추석기념 연성인데, 이제 윷놀이가 개판오분전인.
24.09.17 백업
명절 기념 글 써봤습니다! 철학 폴리스에서 윷놀이하면 어떻게 될까 싶었어요~
개그연성이라 막 발언하기때문에 너그럽게 봐주세요🥹
——
“아~ 네, 다들 모이셨으면 윷놀이 시작하겠습니다. 규칙은 아까 설명한 대로 알아들으시면 됩니다. 공자님 편부터 먼저 윷 던지시지요.”
몇몇 철학 사상들의 주도로, 한국의 명절 ‘한가위’를 맞이하여 옹기종기 모인 철학 사상들은 윷놀이를 하게 되었다. 나뭇가지 네 개를 던져서 하는 팀전 게임이라는 말에 유독 솔깃해 하던 것은 서양철학 사상들 쪽. 물론 중간중간의 피드백을 위해 동양철학 사상들도 끼긴 했지만, 사상들은 북적북적 모여 바닥에 깔린 큰 윷판부터 흥미로워하고 있었다.
팀은 공자 팀과 플라톤 팀으로 나뉘었다. 사실 공자와 플라톤은 게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나, 팀 이름을 어떻게 붙일지 한바탕 논쟁이 이어진 후에, 제일 발 넓으신 선참 두 분 이름으로 나누는 게 가장 무난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그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 다툼 과정에서 나온 이름들은 보편자와 개별자(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가 동시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와 기(서양철학 사상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아우성이었던 데다 이황과 이이의 논쟁이 발발했던 것을 다산이 진정시켰다), 이데아와 동굴(이러면 동굴 팀이 명백히 비하당하는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의가 속출했다), 경험론과 합리론(서양철학 사상들 간에 대 논쟁이 이루어졌다) 등이 있었다. 온갖 말다툼 끝에 그냥 사람 이름으로 하는 게 제일 낫겠다고 모두가 지친 채 동의했었고, 공자와 플라톤 역시 그 정도 이름 빌려 쓰기는 상관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앞에서 윷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판을 보던 사람은, 룰을 아는 한국인들 중 한국 철학 흐름상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기에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 염려가 없다 판단된 다산 정약용이었고.
판도는 묘하게 공자 팀 쪽으로 흘러갔다. 사람이 많기에 도착점으로 돌아와야 하는 말은 팀별로 다섯 개였다. 어느덧 공자 팀의 말 두 개가 도착점으로 돌아온 가운데, 플라톤 팀의 경우에는 모가 나오면 좋을 것을 윷 정도만 나와 아직 하나의 말밖에 돌아오지 않은 참이었다. 걸과 윷이 난무하는 플라톤 팀의 던짐 결과에 많은 철학 사상들이 탄식을 내질렀다. 그때였다.
“이 게임, 좀 불합리하지 않아?” 플라톤 팀의 데카르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데카르트 님?” 다산이 말했다.
“생각을 해 봐. 이 윷이라는 거, 결국 확률 놀이 아냐? 근데 도하고 걸이 나올 확률 말인데, 둘 다 1/4이잖아. 확률은 같은데 단지 어떤 면이 많이 나왔냐에 따라 점수를 나누는 거 좀 불합리한데?”
“맞아요! 윷과 모도 마찬가지예요. 윷도 모도 나올 확률이 각각 동일한 1/16씩이잖아요. 그런데 어느 쪽이 많이 나오냐에 따라 점수가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윷판 칸도 5칸 전진하면 모서리라 엄청 유리한데!” 플라톤 팀의 스피노자가 말했다.
“아니, 그냥 그쪽에서 윷만 나와서 그러는 거 아니고? 확률이 같은데 그쪽이 유독 그게 안 나오는 거 보면 그냥 운이 없는 거 아냐?” 이번에 말을 한 건, 공자 팀의 베이컨이었다.
“확률을 그렇게 칼같이 계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윷 모양을 자세히 보니 둥근 면이 평평한 면보다 훨씬 넓은걸요. 무게중심 상 둥근 면으로 떨어지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모두 평평한 면으로 떨어져야 하는 모 쪽이 윷보다 경험적 확률이 낮은 것이 맞잖아요?” 이번에도 공자 팀이었다. 손을 들고 대답한 사람은 벤담이었다.
다시 플라톤 팀의 흄이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또 문제가 있어. 도랑 걸은 확률이 같아보이지만 둥근면으로 떨어지는게 더 쉽다면, 도 쪽이 걸보다 점수가 높아야 하는 거 아냐? 또 빽도는 대체 정체가 뭐야? 왜 갑자기 동일 확률의 도인데 그게 나오면 뒤로 한 칸 가야 하는 규칙이 있어?”
“아니, 애초에 윷을 던지는 것으로 말의 전진을 정하는 게임을 하는 이유가 뭐지? 어차피 확률은 자연의 섭리 아닌가? 신의 은총과 자연의 섭리의 조화로 이 모든 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 모든 게임의 결과는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엔 플라톤 팀의 라이프니츠였다.
“아, 예정조화설 집어넣으시고. 신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요. 미래는 알 수 없고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건 실존하는 인간존재 그 자체라니까. 우리가 윷을 던지는 결과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앞길을 알 수 없는 불안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거라고요.” 갑자기, 플라톤 팀의 하이데거가 말했다.
“자네, 우리 팀 아닌가?”
“팀이고 뭐고 이상한 소리 하시는데 보고 있어요 그럼?”
“책임지실 수 있는 발언인가요?” 저쪽 공자 팀에서, 눈을 접어 웃으며, 한스 요나스가 발언했다.
“너 지금 은근슬쩍 나치라고 뭐라하는거야?”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요나스가 대답했다.
그 이후로는 판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확률로 싸우는 자들, 나치 운운에 화내는 하이데거, 싸움 붙은 수학 관련자들, 그 와중에 윷을 들고 와서 무게중심 측정하고 확률 다시 계산하는 과학 관련자들, 경험적으로 윷을 던지기보단 굴리는 것이 더 모가 잘 나온다 말하는 베이컨, 경험론 집어넣으라고 말하는 스피노자…….
다산은 벙쪄 있었고, 옆에서 플라톤과 공자가 말했다.
“오늘도 난장판이네.”
“하하, 그러게 말이오.”
*
잘 모르는 철학 사상들 잔뜩 쓰느라 조금 머리가 아프긴 하군요…
재미있는 상황이 떠올라서 써봤습니다. 윷놀이하다가 이 난리가 날 걸 생각하니 너무 웃기더라고요 ㅋㅋㅋㅋ
다들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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