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Daily by 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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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울증이 있었고, 아직도 약을 먹는다.그리고 아빠는 엄마한테 집착이 아주 심했다. 내가 20살 때 벌어진 일로, 엄마와 나는 함께 살고, 아빠는 따로 살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할 계획이다.

전화를 하루에 수십통을 했다. 지긋지긋해했다. 어렸을 땐 왜 나한텐 하지 않을까…….? 나도 몇 통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나중에 그 전화에 시달리게 되니 짜증이 났다. 진저리가 나고, 왜 안 하던 짓을 할까…….? 그 전화를 지속하게 된 건 내가 고3때의 일이었다. 엄마가 안 받으니 나한테 한 거였지만….처음에야 잠깐 받아주지. 계속하니까…….차단박고 싶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엄마랑 아빠가 싸울 땐 욕이 난무하고, 거기서 그만싸우라고 하면 둘 다 나를 혼냈다. 어른들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끼어들지 말라고 하기 전에 안 싸우거나, 최소한 나에게서 안 보이는 곳에서 싸울 수는 없을까…….? 차라리 밖에 나가서 싸우라고 했더니, 나보고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렇게 싸우고도 나한테 엄마가 그렇다고 너까지 아빨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엄마한테는 그런 남편이어도 나한텐 아빠라면서, 대체 뭘 원하는 걸까…….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애초에 그렇게 싸우지 않는 게 맞지 않나.

내가 고등학생에 접어들게 되면서 엄마의 갱년기가 왔고, 그와 동시에 나는 기존에 엄마가 하던 장보기를 맡게 되었다. 더불어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게 되었다. 처음엔 엄마가 많이 힘든가…….했지만, 내용을 보자면 결국엔 아빠 욕이나, 불만…..고모나, 큰아빠, 작은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좀 있었다. 점점 나는 엄마의 하소연 때문에 감정쓰레기통이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선 더 자주 싸웠다. 그것도 고3이 되고선 더 자주. 눈에 띄게.

내가 9살 땐 부부싸움을 하다가 김치볶음밥에 컵의 파편이 들어간 적도 있었고, 뭐 원인은 다 아빠에게 있었지만.

내가 20살 때 전화를 자주하는 것 때문에 행선지를 밝히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말했다) 나는 그날 벡스코에 악뮤 콘서트를 보러 갔었다.(원래는 김재중 콘서트 가려고 했는데 엄마 기다리다가 표 날림으로 못 감) 대충 친구랑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 나왔는데 전화 올까봐 폰을 끄지 못했는데 콘서트 도중에 계속 전화를 해서, 아니 안 받으면 그만 할 법도 하지 않나? 마칠 때까지 계속 전화를 해댔고, 나는 무시한 채 콘서트를 즐겼다. (당시 산 응원봉은 엄마를 싸우고 던졌다가 고장나서 그대로 버림)

그러고 벡스코에서 집에 오는 길에 한달간 아빠에게서 온 통화횟수를 세어보니 101통이었다(부재중 포함) 기겁하며 엄마에게 전화해서 짜증을 냈다. 그리고 난 그 날 아빠에서 스토커라고 이름을 바꿔뒀다.

고등학교 졸업을 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난 취업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불경기+코로나로 취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빠는 차를 바꾸고 싶어했다. 엄마와 나 둘 다 반대했다. 그 차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 차만 아니었어도 지금 그 꼴은 안 봤을 텐데……싶지만.

그 차는 수입차였고, 2억이 넘는 차였다. 당장 우리에게 2억은 없었다. 10년 동안 아파트 대출도 이자만 겨우 갚고 있는데, 무슨 수로 차를 한단 말인가. 나도, 엄마도, 절대 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데려가 차를 했다며 엄마한테 비밀로 하라고 했다. 나는 아뿔싸…….하고 그대로 엄마한테 말했다. 2억…….미쳤다……엄마랑 아빠는 그 날 또 크게 싸웠다.

집을 담보로 하는 거였나……아님 차를 담보로 하는 거였나……아님 할부였나…….할부였던 것 같긴 한데……….차 계약서 가져오라고, 무르고 싶었지만, 이미 절차가 다 끝나서 무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빠의 건강은 안 좋아져서, 같이 운전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그 아저씨가 도중에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서 차를 운행할 수 없게 되었고……..(화물쪽에서 일하셨음…….) ,아빠가 무리해서 하다가 차 사고를 냈고, 그 길로 그 차를 폐차시켰다. 그러나 이미 벌려놓은 일은 어쩐다……그 길로 아빠는 앓아누웠고, 엄마랑 나는 답답해했다. 엄마는 진작에 다른 일 하자로 안 했나고 그러고. 아빠는 막 죽을 거라고 그러고, 물 안 먹어도 1주일은 버틴다는데……

뭐 그래서 결국 이혼했다. 난 장 보는 것 때문에 그 사실을 1달 뒤에 알았지만. 아빠는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집 날리는 건 막아야지……싶어서 이혼했다. 사실 아빠의 사고 이후 엄마는 이혼을 요구했었다. 아빠는 계속 거부했지만, 집이 날라갈 위기에 처하자 이혼을 해준 거다. 정작 해달라고 할 때는 안 해주고, 이제서야…….

사실 위장이혼의 의심가능성이 있어서, 아빠를 내보내야해서, 원룸 하나를 구해다주고, 나한테 이것저것 시켰다. 엄마도 아빠도.

그러고도 차 사고 내서 앓아누웠던 여파로 몸이 안 좋아져서 결국에 입원시키고 보호자로 있었다. 엄마도, 나도.

코로나 기간이라 한동안은 면회가 안 됐었고, 나는 면회가 끝나고 나오면서 엄마한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럼 셋이다 같이 망해야겠냐 그랬다. 딱히 그런 의도로 물은 건 아니었다.

이전에 엄마한텐 이혼 얘기를 들었고, 난 아빠가 합치고 싶어하는 의도를 알아서 물어봤더니 전혀 그럴 생각 없었다.

솔직히 내가 엄마라도 그랬을 것 같았다. 돈 좀 모으면 돈 사고 치고, 또 사고 치고 이러는데 뭐가 이쁘겠어? 살면서 고통스러운 날이 더 많았는데 뭐하러……

엄마는 아빠한텐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입을 닫았다. 얘기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걸로 끝났으면 했다. 하지만…….아빠가 엄마와 나를 쉽게 놓아줄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는 이혼이라고 생각하고 아빠는 서류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엄마도 굳이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나도, 그러했다.

의도를 밝혔더라면 아빠는 절대 이혼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이후에 엄마의 선생님에게 이런 상황을 말씀드리고 받아줘야하나요? 했더니 선생님은 받아주라고 하셨지만, 사실 난 좀 버거웠다.

사실 이 전에 엄마한테 힘들다고 하니 더 이상 나에게 하소연을 하진 않으셨다. 다만, 딸이니까 이 얘기를 했다고 하셨다. 뭐 쌩판 남에게 이런 얘기를 하진 않을 테니까.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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