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바보 취급하며
2회차, 나후 님
사람들이 북적이는 호프 집 사람들이 어떤 희망을 찾아 모이는 곳이라 호프일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게 아니라면 맥줏집 정도로 써도 되잖아요 아니지 홉을 쓰니까 그런 거지 근데요 선배 홉의 철자도 에프가 아니라 피로 끝나잖아요 그러면 호핑과 홉핑은 다를 게 없지 않은가요 아니지 그러면 피가 두 개가 되니까 홉핑과 호핑은 다른 거지 홉핑과 호핑이요 응 홉핑과 호핑이요 선배는 뭘 원하고 여기에 오신 거예요 가짜 알코올 값싼 닭 튀긴 냄새 왁자지껄 울다가 웃다가 제정신 아닌 사람들의 모임이 그리우셨나요 아니지 아니지 나는 그냥
어?
내가 여기 왜 너를 불렀더라…… 이 선배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아까 내가 했던 공상의 궤적을 좇아 슬그머니 눈알을 굴린다 이 사람 속의 역동 나는 알 수가 없는 그러니 아무런 관심 없음으로 대응하리라 또 아쉽지 않은 소리를 원해서 나를 불렀겠거니 나의 반절쯤 되는 고통을 전부로 생각하고 있겠거니 어차피 선배는 남자 친구랑 헤어진 것으로도 몇날 며칠을 힘들어할 것이고 나는 자살한 언니의 버리지 못한 장신구 따위를 몇 년 몇 개월 단위로 고민할 것이다 애초 그런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타인의 고통이란 참으로 덧없고 공감되지 않는 것이지 않을 수 없고 누군가는 내가 현학적이고 비판적이고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허무적이고 그런데 나는 힘들었겠다는 말 하나를 듣기 위해 이 고통을 겪어온 게 아니라는 계시가
있잖아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했을 때
어떻게 해야 돼?
음... 내용에 약간의 트리거가 있는데 이번 시는 90년대 대학가의 분위기가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답니다... 슬픈 우리 젊은 날 대학생들의 시집이 집에 있는데, 거기에 뜬금없이 화장실에 적힌 낙서 같은 걸 읽고 괜히 가슴 찡했던 게 생각이 나서 그런 시가 문득 쓰고 싶더라고요 예전과 요즘의 대학가가 다르다고 매번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살고 있었는데 어쩌면 저도 누군가를 바보 취급하며 살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냥, 그냥, 모두 자기만의 바보들 속에서 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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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수집하는 나비
다들 남겨주신 것처럼 첫 문장을 읽고 너무너무 깜짝 놀랐슴니다 나후 님의 시에서는 같은 단어가 여러 번 반복 되는데 거슬리거나 과하지 않고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신기해요 이번 시에서는 '홉핑과 호핑'이 그런 느낌을 주네요 시에서 나후 님만의 고뇌가 느껴지는 게 매력인 것 같습니다!
검색하는 판다
첫 문단 호프와 호프의 유사성을 논하며 전개되는 부분이 무지 좋았어요. 그러한 발상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어?' 다음의 두 번째 문단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사정과 사고가 정직하게 낱낱이 밝혀지며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라든가 비밀스러움이 사라진 것 같아요. 그 이후 마무리되는 부분 역시 첫 문단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의 강렬함을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HBD 창작자
사람들이 북적이는 호프 집 사람들이 어떤 희망을 찾아 모이는 곳이라 호프일까, 이 문장이 정말 인상 깊습니다. 그러게요, 얼마나 거대한 호프길래 호프의 집이라고 하는 걸까요? 이후로 전개되는 옥신각신 말싸움도 재밌었습니다. 3연에서 남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는지 다소 냉소적으로 보는 시선에도 줏대가 있어서 좋았고요. 몰이해의 시대입니다. 아니 몰이해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한 번도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한 적이 없으니까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것은 무척 무의미한 것입니다. 화자가 계속해서 반복했듯 우리는 당신의 고통을 깊이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그것을 알면서도 무척 괴로워서 어쩔 줄 모르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겠습니다마는, 직전까지 폭주하듯 달리던 속도감이 마지막 질문에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브레이크가 걸린 느낌이라 다소 아쉽습니다. 마지막에 한 문장 정도만 더 추가되었어도 공상과 상처 따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계속해서 돌아간다는 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제 의견일 뿐 피드백은 피드백으로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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