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업계와 AI는 공존이 가능한가?

시리즈에서 우수빈 작가의 <이별해 주세요, 제발!>의 표지가 AI 생성물임이 들통나 표지를 갈아치우는 등의 소동이 있었는데, 요즘 조아라에서 AI를 돌려 만든 표지가 보여서 왜 AI로 돌린 그림 쓰는 게 창작윤리 쪽으로 문제가 있는지 한 번 얘기해두려고 한다. 이 글에서 우수빈 작가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건 일단 아니지만, 혹여라도 AI를 쓰고 싶다는 유혹이 들 누군가를 위해 쓴다.

챗GPT니 생성형 AI니, 요즘 AI가 신기술로 주목 받으면서 관련 업계에서 말이 많은 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기술은 업계의 미래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은 기술이다. 그것도 사람과 기계가 내 몸값이 더 싸다고 겨루는 방식으로 말이다. 

사실 AI는 한동안 돈이 안 되는 기술이고 학문이었다. 그러다가 데이터가 거대화되는 시대가 되었고 이 거대 데이터를 AI에 적용해보게 되었고, 그 때문에 최근의 급격한 발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거대 데이터'라는 게 뭔지 한 번 따져보자. 우리가 웹 공간 어디에 게재하고 까먹은 모든 글과 그림, 좋아요와 싫어요 버튼을 눌러댄 개수, 검색어와 따라간 링크들, 건강 관리한다며 앱에 기록한 각종 개인 정보들, 이런 저런 결제를 한 기록들, 위치 서비스를 받기 위해 지역까지 표시해준 데이터들이 다 거대 데이터다. 그러니까, 더 쉽게 말해 몇 년 전에 '앱에 추적을 허용' 옵션 같은 게 뜨는 걸 보고 이게 뭔 소린지 이해 못했어도 허용해준 모든 사람들의 이름만 없는 데이터들을 싸그리 모아놓은 게 거대 데이터다. 흔히들 빅데이터라고도 하며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관념 때문에 데이터의 크기가 국가별로 편차가 크긴 한데, 아무튼.

이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이 데이터가 충분히 거대하기만 하다면 분석만 하면 굉장한 마케팅 자료가 된다. 그래서 은근슬쩍 회사들이 '우리 회사 서비스를 더 잘 사용하려면 이거 가입해보세요!^^'란 식으로 이런 저런 회원가입이 필요한 앱이나 사이트로 끌어들이려는 거다. 즉, 당신이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에 받는 서비스지 따지면 공짜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창작물, 그러니까 '글과 그림'을 생각해보자. 

무언가를 창작해내고 그걸 자기만 보고 끝내긴 당연히 아쉬우니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떤 사이트에 올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사이트가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우리의 서버를 사용하고 싶어하니까 당신이 올린 창작물을 데이터로 써서 연구하고 기술 개발하고 그걸 팔 겁니다.'라는 경고를 우리는 인터넷 시대가 되고 나서 제대로 받은 적이 없지 않던가. 때문에 지금 업계를 위협하는 생성형 AI는 따지고 보면 모든 창작자들의 저작권을 철저하게 무시해서 개발 가능했던 기술이다.

생성형 AI의 메커니즘이 그렇다. 인공신경망 어쩌고 하지만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거대 데이터를 때려부어놓고, 그 거대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을 만들어 명령을 통해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해서, 거대 데이터에 기반한 학습을 통해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등등을 만들어내는 거다. 생성형 AI가 핫해지기 전에 읽었던 북미쪽 기사로 기억하는데, 개인이 업로드했던 그림들을 원작자 허락 없이 이미지들을 학습해서 만들었다는 저작권 침해 지적은 이 기술의 탄생부터 함께 해왔고 이제 결과물들이 시각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니까 문제가 인식된 거다.

그러니 AI를 통한 '창작'은 절대 '창작'일 수가 없다. 타인의 노력과 기술을 홀랑 훔쳐서 다 섞어놓고 명령대로 재생하는 거지. 지금의 생성형 AI에게 그림을 더 안 넣으면 그 이상의 화풍 발전은 발생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생성형 AI는 학습할 데이터 없이, 아예 제로에서 뭘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도둑질해 만든 기술이라는 거다. 저작권이 침해당하지 않았으면 만들 수 없었던 기술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창작물을 도둑 맞은 걸로 모자라 생계까지 위협 받아야 하는가? 그것도 고작 '저쪽이 더 싸다'는 이유 때문에?

이건 그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글이 챗봇 바드를 공개하면서 고립어 특성을 가진 한국어와 일본어 버전으로 발표한 걸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글도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나 한국어가 고립어라 데이터가 영미권보다 필연적으로 적어서 기술 발전이 늦는 거지 '충분한 데이터'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왜 지구의 전체 인구를 생각하면 비교적 구사자 수가 적은데도 한국어와 일본어 버전으로 공개했겠는가. 이 두 언어는 고립어라 자연스럽게 구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편이라서 이거 마스터하면 다른 언어는 전부 다 AI로 구사 가능하다는 증명이 되니까 그런 거다.

한국처럼 트위터에서 흥하는 밈들을 창작물들이 저작권 인식 없이 마구 채택해 사용하고 불법 사이트를 조폭들이 돈 된다고 운영하는 나라에서 저작권이 잘 지켜질 거라는 착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것도 북미에서 했으면 고소장이 명절 안부인사처럼 오가며 저작권 분쟁이 있었을 텐데, 이런 인식도 없는 나라에서 AI산업 밀어주겠다며 저작권을 무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합당한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나? 없잖은가.

그런데도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성형 AI로 대충 생성해낸 이미지 걸어놓으면 나중에 똑같이 당해도 '업보'말고는 해줄 말 없다. 생성형 AI를 국내에서 사용 금지 시키고 싶다면 창작과 관련된 업계에서 전반적으로 강한 반대 의사 표명이 있어야 하는데 세상 만사가 자신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굴러갈 거 같은가? 아니면 창작 윤리가 그렇게 만만한가? 윤리를 무시하고 만든 기술로 윤리를 무시하는 업계가 죽으면 그 자체가 현대 예술이나 다름 없는데 그렇게 해보고 싶은가? 도덕이나 윤리 없이 어떤 논리로 업계에 대한 보호를 호소할 생각인가? 아직도 80년대처럼 욕망이 전적으로 옳은 줄 아나? 

창작과 관련된 직종을 가지고 있는 사람부터가 생성형 AI의 기술이 대변하는 바를 눈치 채야 하는데 그런 눈치가 없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싫든 좋든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협업이 필수적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 정도는 민폐를 끼치면서 살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지 않게 주의하고 주변인들에게 평소에 친절하게 대하라는 아동용 조언을 지금 다 큰 어른들에게 꼭 해줘야 하나? 자신이 존중을 받고 싶으면 상대를 존중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아직은 이게 나온지 얼마 안 된 기술이기 때문에 국가에 따라 규제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긴 하다. 유럽에선 엔간하면 막힐 것 같고 북미는 아직 좀 애매하다. 캐나다가 AI 관련 회사들의 투자가 활발하다 보니 미국까지 합해서 생각하면 아직은 좀 애매하지만 규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모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서구에서 막히면 국제법이 그쪽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대외 수출을 신경쓰는 한국은 국제법을 지켜주는 편이라서 한국에서도 당연히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 그에 대비하고 있어도 모자른 판국에 상업의 영역에서 벌써부터 이런 일이 벌어진 여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성형 AI를 악의적으로 사용할 경우 때문에라도 일러스트레이터 보호를 위해 병기 표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나도 이에 동의하는 바이다. 사실 일러스트레이터의 정보를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보고 고용할 때 사기치는 사람들이 은근히 특정 업계에 있다는 얘기도 제법 들었고... 다만 그 표기의 위치가 어디인지가 문제라서 싫어하는 작가도 있는 걸 알고 있다. 이 주장에도 공감한다.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책의 표지에 이미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이틀이 들어가야 하고 작가와 출판사 명도 있어야 하니 우겨넣기엔 디자인적으로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도 잘 안다. 

그런데 그럼, 따지면 내지 역할을 하는 작품정보 영역에 넣으면 될 것 아닌가? 시리즈와 리디에서는 소설 뒤에 주로 붙이고 카카페는 아예 따로 빼놓은 그 영역 말이다. 검색했을 때 [제목 - 작가 필명] 이렇게 짧게 뜰 때 일러스트레이터의 필명이 병기 표기 되면 공저로 착각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하니 다른 정보와 함께 적으면 그만인데 이젠 일러스트레이터 보호를 위해서라도 고민해봐야 할 필요를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편집자도 같이 표기하는 게 낫다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이딴 게... 편집? 관리를 아예 안 하나?' 소리가 나오는 경우와 '이 양반 암만 봐도 편집자가 문장을 거의 대신 써주는 거 같은데?' 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공존하는 업계기도 하기 때문이다. 뜨끔한 작가가 있을 걸 알고 있으니 자기 일은 자신이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해라 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유쾌한 줄 아는가?

이번에는 그래도 AI 생성물로 만든 표지와 삽화가 빠르게 내려갔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아무도 모른다. 창작물을 만들어낼 때 '편하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면 그 욕망이 윤리를 무시하면서까지 이뤄야할 욕망인지, 그리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윤리가 무시되면 어떤 대가를 치뤄야할지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기술에 대한 규제는 때로는 어떤 가치를 대하는 대중의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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