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마키 - 새해

마키는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났다. 두 손을 깍지 끼고 팔을 머리 위로 쭉 뻗고 몸을 좌우로 꾹꾹 눌렀다. 아직 단잠에 빠져있는 유타의 머리를 쓰다듬고 문을 열려는 찰나, 등 뒤에서 사람 하나분의 질량이 실렸다. 유타는 마키의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두 손으로 마키의 얼굴을 감싸 온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마키가 고개를 뒤로 빼며 한 손으로 유타의 입을 막았다. 마키에게 가로막힌 유타는 으응-, 소리를 내더니 마키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침부터 좀."
"오랜만이잖아. 봐주면 안 돼?"

유타는 올망졸망한 눈으로 마키를 올려다보았다. 얘는 간식 앞에 둔 강아지처럼 굴어, 마키는 눈을 게슴츠레 떠 유타를 슬 노려보았다. 유타의 눈빛엔 절대 이길 수 없는 마키였다. 마키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유타는 울상이던 입꼬리를 높게 올렸다. 유타는 마키를 품에 꽉 안고 놔주지 않았다. 마키는 답답하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유타의 손길을 뿌리치진 않았다. 

한참을 뭉개던 두 사람은 마키의 핸드폰이 울리고서야 둘 사이의 공백을 허락했다. 마키가 보조 감독으로부터 오늘 업무를 전달받는 동안 유타는 주방으로 발을 옮겼다. 밥솥의 보온 기능을 켜고, 어제저녁에 해놓은 감자조림을 그릇에 넣어 전자렌지에 돌렸다.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달궈놓은 프라이팬 위로 깨 넣었다. 통화를 마친 마키가 방문을 닫고 나와 상차림을 도왔다. 먹기 편하게 미리 손질해 둔 양상추, 파프리카를 볼에 붓고 옥수수 캔을 따 수저로 푹푹 퍼 그 위에 뿌렸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마키, 이거 어제 한 건데 맛있어."

유타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포슬포슬한 감자를 반으로 갈라 마키의 그릇에 놓았다. 유타는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음식을 먹는 마키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고전에서 근무하는 마키는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주말이나 방학, 유타가 집에 있는 날엔 함께 사는 집으로 왔다. 그마저도 각자 일이 있으면 귀가 시간이 들쑥날쑥해서 온전히 함께 있는 시간은 적었다. 그랬기에 유타는 이렇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나 좀 그만 보고 얼른 먹어. 다 식는다."
"응, 마키."

마키는 손을 입에 갖다 대고 큼큼, 목을 다듬었다. 벽에 걸린 달력에 표시된 날짜를 보았다. 

"유타, 너 모레부터 출장이네."
"아, 응. 2주 동안 미국 남서부로. 아, 가기 싫다."
"허, 살다 보니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다 나오네. 2주면.. 1월 4일에 오는 거야? 다음에 볼 땐 새해겠네."
"그래서 가기 싫다는 거야. 크리스마스도 같이 못 보내고.. 1학년 때 이후로 같이 연말 보낸 기억이 없어."
"어쩔 수 없잖아."

마키는 팔을 쭉 뻗어 입을 삐죽 내미는 유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건 마키뿐이었다. 유타는 본인에게 주어진 일에 부담감을 느끼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의 필요를 거듭 증명받는 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일을 받은 것 자체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일을 수행하는 기간이 문제였다. 애인과 보내기 딱 좋은 기념일마다 국내는 건사하고 해외에 나가 있으니, 애인과 만날 기회조차 가당치 않았다.

작년 연말은 어땠는가, 를 생각하면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일이 끝났는데 비행기표를 못 구해서 화상 통화로 새해 인사를 전해야 했었다. 마키의 옆에는 그리운 친구들과 후배들이 있었다. 판다는 마키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버렸고 이누마키는 화면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슬쩍 보이는 쿠기사키는 마키 허벅지를 베고 자는 듯했고, 후시구로는 건배를 권하는 이타도리에게 마지못해 어울리는 것 같았다. 판다는 유타에게 새해 인사를 건네곤 다른 애들에게 폰을 넘겼다.

"선배, 해피 뉴 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랜만에 보고 싶던 얼굴들을 보니 울적했던 기분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떠돈 핸드폰은 주인 품으로 돌아갔다. 가장 보고 싶었던 얼굴이 화면에 보이자 유타는 손을 격렬히 흔들었다.

"잠은 잔 거지? 다크 서클이 더 심해진 것 같다."
"괜찮아. 마키는 잘 지냈지?"
"어? 미안, 잘 안 들리네. 잠깐만."

마키는 뒤에 걸어놨던 겉옷을 둘둘 말아 쿠기사키의 머리 아래에 놓았다. 소란한 술자리를 살금살금 빠져나왔다. 중간중간 잠깐만, 을 속삭이는 마키가 유타 눈엔 한없이 귀여워 보였다.

"이제 됐네. 뭐라고 했어?"
"아냐. 중요한 말 아니었어."
"싱겁게. 근데 어떡하냐. 간만에 일찍 끝냈는데 혼자 해외에서 보내고."
"난 이렇게라도 얼굴 봐서 좋아."
"그, 새해 복 많이 받고 얼른 보자."
"응. 마키 춥겠다. 빨리 들어가."
"너 꼭 자라. 알겠지? 만났을 때 다크서클 심하기만 해."
"알았어. 잘게. 약속, 약속."

유타는 화면에 새끼손가락을 걸듯이 손을 앞으로 가져다 댔다. 마키는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으며 유타를 따라 했다. 곧 화면에 유타의 얼굴만 비쳤다. 전화할 땐 좋은데 끊고 나면 우울해진다니까, 침대에 풀썩 누운 유타는 이마에 손을 올렸다. 눈을 감으니 마키의 목소리와 얼굴이 더 선명해졌다. 보고 싶다,가 온 마음을 가득 채웠다.

"유타, 나 다녀올게. 쉬고 있어."
"응. 잘 다녀와."

유타는 집을 나서는 마키를 살짝 안았다. 마키는 유타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에도 발걸음을 주저하던 유타는 재작년 일이 생각났다. 친구로 지내던 오랜 기간을 청산하고 애인으로써 처음 맞는 연말이었다. 국내 임무였던데다가 12월 30일에 끝나 3일간 휴일이었으므로 얼마나 들떴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12월 31일, 시계는 오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연락 없는 휴대폰을 빤히 바라보던 유타에게 마키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 유타."
"응. 무슨 일이야?"
"일이 좀 생겼어. 늦을 것 같아. 빨라도 내일 저녁에나 돌아갈 것 같은데. 미안해서 어떡하냐."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응. 다친 건 아니고 전해 들은 거랑 현장 상황이 좀 달라서 해결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난 신경 쓰지 마."
"고마워.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아. 연락도 힘들 것 같네."
"마키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나중에 봐."

아쉽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아는 유타였다. 케이크나 음식은 나중에 먹어도 되고, 새해 인사는 이미 받았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내년도, 내후년도, 앞으로도 함께 있을 테니 괜찮았다. 단지 마키가 오늘 일을 신경 쓸까 봐 걱정될 뿐이었다.

"올해는 꼭 같이 보내고 싶은데.."

손가락을 까딱이며 소파 팔걸이를 두드리던 유타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

"그럼 출발할까요?"

시간은 어느새 흘러 유타의 출국 날이 되었다. 출국 날은 평일이어서 마키와는 어제저녁 인사를 마쳤었다. 유타는 보조 감독의 말에 끄덕이며 열린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그리고 저번에 부탁하신 일 말인데요. 12월 31일 새벽 5시 표로 구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시면 31일 밤 10시쯤 될 거예요. 다른 표는 예정대로 1월 4일 저녁 표입니다."
"감사합니다. 힘드셨을 텐데."
"아니에요. 저도 일찍 갈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집에 애가 어려서요. 아, 부담드리는 건 아닙니다!"
"저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유타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고생해야 했으니, 일종의 원기 충전이었다.

-

부리나케 달려온 유타는 숨을 고르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12월 31일 11시 58분. 서두르니 더더욱 열리지 않는 문이 서글펐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키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틀어진 티비에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키, 해피 뉴 이어."
"너도. 올해도 잘 부탁해."

마키는 두 팔을 벌려 유타를 안았다. 유타는 마키를 꼭 안고 몸을 좌우로 움직였다. 마키는 유타의 등을 두드리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쌓인 피로가 다 사라지는 유타였다.

"유타."
"응."
"다음엔 오늘처럼 무리하지 마. 나한텐 너랑 맞는 새해가 진짜 새해거든. 설사 그게 1월 5일이든, 12월 29일이든, 난 너랑 있으면 돼."

유타는 마키의 귀가 빨개져 있는 것을 보았다. 마키가 이 말을 할 때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알기에 그 감동은 더 컸다. 마키는 딱히 보고 싶다 같은 말을 하는 편은 아니다. 스킨십은 자주 해도 애정 표현을 자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애인으로썬 때에 따라 서운해할 수 있는 성격이지만 유타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말로 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게 마키의 마음이었다.

투박함 속엔 왠지 모를 다정함이 담겨있다. 보고 싶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도 전부 자신을 고려한 마키의 사랑이었다. 유타는 자신을 꽉 안고 있는 마키의 팔을 풀어 마키의 손에 자기 손을 겹쳤다. 인중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잠시 뗐다가 입술로 옮겼다. 서로를 바라본 둘은 웃음을 터뜨리며 동시에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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