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미츠] Ikaria
0. Prologue
※
파일럿 AU
가상의 국가, 사건이 존재합니다
본작의 설정과는 무관한 상황 다수.
굉음이 공기를 찢는다.
소음을 타고 뒤따라오는 충격이 온 전신을 망가뜨린다. 제대로 된 상황을 파악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기기의 모든 결함을 알리는 오류음이 희끗해져 버린 청력의 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마치,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소리를 듣는 꼴이나 다름없다. 아니, 그러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지금은 속이 뒤집혀버릴 것처럼 긁히고 있으니까.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푸른 하늘인가, 넓게 드리워져 있는 깊은 바다인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불분명한 상황 속 단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있었다. 미츠루기 레이지는 오늘 여기에서 죽는다. 오래 지날 것도 없이, 지금으로부터 약 3분도 채 지나지 않을 시점에 바닥과 몸이 충돌해서 살아있었던 흔적조차 남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리고, 미츠루기는 그렇다는 점에 한해 제법 초연한 편이었다.
IKARIA
미츠루기는 평소 죽음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처럼 자신이 쥐고 있던 패가 공중에 흩뿌려지고 영역 싸움에서 패배한 개처럼 꼬리를 잔뜩 말고 귀환을 감행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아니, 이것은 그런 것보다야 조금 더 복합적이다. 귓가를 타고 웅웅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커지고 있었다.
<미츠루기 중령>의 직함을 달고 나아간 첫 전장이었다. 상대방의 수에 비해 자신의 휘하에 배치되어 있던 전투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고, 상황 면으로 명확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또, 처음 전장에 나간 것을 감안하더라도 미츠루기의 머리는 명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완벽하게 찍어 눌러 버리는 것이 무력의 온상이요, 본국의 이름을 온 세상에 날리기 위해 불가피한 행위라고 생각하며 최고의 판단을 내린다. 단, 그것이 일부의 희생을 요하는 전술이라는 데에서부터 패착의 요인이 생겨 버린다.
어디에선가 가문도 이름도 혈통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아이를 주워온 카르마 고우가 녀석을 군사적으로 쓸만해질 때까지 키워내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아내는 동안, 사람들은 그가 받은 특혜에 관해 혀를 놀리며 제멋대로 자르고 덧붙인 소문을 요리처럼 즐겼다. 미츠루기 레이지는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죽음에 가까운 노력을 기하여 최고의 자리에 섰으나 한 측에서는 단지 뒷배의 힘으로 그 자리에 올라버린 젊은 중령의 판단에 불신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있었다. 그리고, '경험'이 많은 그들의 목소리는 출처도 근본도 없는 작은 소음 따위는 무시해도 상관없다 여겼던 미츠루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파장을 가지고 온다.
< 기존에 배치받은 자리로 이동하라, AT-492. >
미츠루기의 입장으로서 그것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판단이었다. 나이트가 비숍을 정리하고, 폰이 킹을 치면 완벽하게 이길 수 있는 전투였을 뿐이다. 미츠루기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수가 적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체스와 전쟁의 차이는, 단지 체스 말에게 없는 자아가 인간에겐 주어져 있다는 것뿐일 것이다.
< 불복한다. 상황 상 가장 합리적인 전술을 시행하겠다. >
그리고, 단 하나의 차이는 모든 세상의 파국을 몰고 온다. 다시 한번 명령을 내리기 전, 레이더망 속에 잡혀 있던 기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져 버린다. 구름 속에 은닉해있던 미사일이 바로 옆을 따라 날고 있던 기체를 격추시켜 버린다. 한 쪽은 수가 많은데도 노련하지 못했고, 한 쪽은 수가 적은데도 굉장히 노련하다. 즉각적인 명령을 내리기 위해 신호를 보냈으나,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신호가 들어온다. 투항하라, 미츠루기 중령. 반항하거나 도주하려는 시도가 확인되면, 그대로 격추하겠다.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수천 가지 시뮬레이션이 굴러가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온갖 생각이 한데 엉켰다가 풀린다. 귀환해야 하나?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하나? 지금 어떻게든 돌아간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본국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명예인 것인가? 어디에도 그럴싸한 선택지는 없었다. 지독한 교육이 만들어낸 손은 모든 경우의 수를 짚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 움직인다. 급진적인 순회 비행은, 그러니까 일종의 도박과 같은 것이었다.
모든 포위망을 뚫기 위해, 사냥개들의 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토끼처럼 절박하게 날았다. 한계에 가까운 속도로 귀국하기 위해 힘을 주어 날아간다. 손끝이 우그러드는 것 같다. 식은땀이 손등을 타고 흐른다. 이런 선택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인지 금세 미츠루기의 기체를 둘러싸고 있던 포위망에서 벗어나 버린다. 차라리 잘 된 것이다. 벌을 받거나, 설령 죽는다고 하더라도 직접 '보고 배운 것'을 전달하여 본국에 승리와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번의 전투가 헛된 소모전이 아님을 증명해 내리라. 레이더에 또 한 대의 전투기가 걸리지 않았더라면, 미츠루기는 아마 통쾌함을 느끼고 웃어버렸을 것이다.
바로 뒤에서 무서운 기세로 쫓아오고 있는 한 대의 기체가 끝까지 따라붙는다. 이 정도 되면 놓쳤다고 판단하거나, 근거리인 만큼 미사일을 발사하여 격추하기도 쉬울 텐데 그러지는 않고 지독하게 거리를 좁히기만 한다. 투항하라. 신호가 몇 번이나 계기판에 걸린다. 웃기는 소리. 조금만 더. 이대로 이 속도로 움직인다면, 금방 아군의 상공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찰거머리 같은 저 정체불명의 기체도, 그 즈음 되면 제풀에 지쳐 돌아가거나 아군의 방어 시스템에 의해 격추될 것이다. 아마,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쾅!
아주 커다란 굉음이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그것은, 어쩌면 천체가 충돌했을 때 들릴 법한 소음이었기 때문에 온몸이 충격으로 인해 마비되어 버린다. 부서지고 망가져버린 파츠가 결함을 일으키면, 기기가 요란히 울리기 시작한다. 기압이 떨어지고 있었다. 미츠루기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한순간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의 기체가 더는 비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무렵, 뒤에서 따라붙던 기체가 내린 선택은 미사일을 이용한 격추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잠시 이 상황에 관해 의심해 버리고 만다.
정확히 두 대의 전투기가 추락하고 있었다. 꼬리에 머리를 처박아버린 모양이, 꼭 생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새의 모양과 같다. 무언가 어떠한 판단을 내릴 새도 없이, 이미 모든 상황에 관해 철저히 대비할 수 있을 만큼의 교육을 받은 손이 몸뚱이가 의식을 잃기 전 제멋대로 좌석을 사출해 버린다. 하늘로 향해 솟구쳐 올라버린 의자가, 허공에서 잠시 멈춰버린 직후 끊임없이 낙하한다. 가속이 붙어 벌써 먼저 떨어지고 있던 전투기는 이미 아득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주 잠깐, 미츠루기는 이 상황이 꼭 찍어둔 사진을 바라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충격보다는 심장마비로 먼저 죽어버린다고 하는데. 지금의 상황이 원체 비현실적이기 때문인가, 미츠루기는 되려 훨씬 초연하게 굴 수 있었다. 그러나 좌석에 내재되어 있던 낙하산을 착용하고 펼쳐야 하는데, 반동이 온몸에 번져버려 손 하나 까닥할 수가 없다. 툭. 대신해서, 미츠루기는 좌석에 매달릴 수 있었던 안전벨트의 마지막 잠금장치를 해제해 버린다. 저 멀리 퉁겨져 사라진 의자도 저 아래 어딘가에 처박혀 버리리라. 무언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것들이 멀리멀리 날아가 버린다. 마음만큼은 평온하다. 그래.
나는 이 자리에서 죽는 건가.
눈을 감아버리면, 다음에 떴을 때 무슨 상황이 일어나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득하게 멀어져 버리기 시작하는 의식을 구태여 잡으려 들지 않고, 느리게 눈을 감는다. 저 멀리, 하늘을 등지고 날아드는 그림자는 분명히 사신일 것이다.
자신의 기체를 들이박았던, 그 빌어먹을 만큼 황당한 녀석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에 관한 생각만으로도 우스울 마당에, 이름도 얼굴도 모를 녀석을 생각하고 있는 최후라니. 어쩌면, 패잔병에게 걸맞은 조촐하기 짝이 없는 죽음일지 모르겠다.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공기가 찢어버린 귓바퀴 속으로 들릴 리가 없는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가 절박하게 부르고 있었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무언가가 온몸을 감싸고 드는 감각을 느끼며, 미츠루기의 의식은 깊은 바닥을 향해 처박혀 버린다.
그것이 사신의 포옹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다정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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