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생각한다
호무영 이지무영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사소한 아픔부터, 견딜 수 없는 폭력까지.
이그나지오는 폭력이나 아픔엔 이골이 나 있었으나 그것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차차웅의 세계란 으레 그런 것이므로. 통증도 괴로움도 살아남는 것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고 모든 고통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졌다. 가끔 서늘하게 떨어지는 처용의 눈빛이 그를 사무치게 했으나……그것 역시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형제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천진하고도 무관심했던 그 믿음은 어떻게 되돌아왔나. 오랜만에 만난 그의 형제는 어린 시절에 대한 모든 것을 전부 잊어버린 채였다. 너는 왜 나를 잊었을까. 그에게 기억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물음은 습관처럼 떠올랐다. 하필이면 우리가 함께한 어린 날을 통째로. 아무런 전조도 흔적도 없이.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은 생각을 나쁜 쪽으로만 끌고 갔다. 나를 잊을만한 이유. 기억을 버린 이유.
기억에 대해 생각한다. 너는 언제나 기억과 악몽은 함께 온다고 말했지. 검은 연기 같은 괴물에게 쫓길 때면 어릴 때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난다고. 발에서 흐른 피로 길을 그릴 정도로 도망쳐도 언제나 숨을 돌리던 그때에 잡힌다면서. 그렇게 잡혀 죽기 직전 본 괴물의 얼굴은 항상 너 자신의 얼굴이거나 처용의 얼굴이었다고. 그렇게 잠에서 깰 때면 너는 모든 것을 잊는다 했다.
지금의 너를 생각한다.
너는 아직도 그 악몽을 꾸고 있나.
유진과 백정을 잃은 날부터 신무영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고 밤이면 그의 울음소리만이 들렸다. 자신의 얼굴을 한 괴물이 나온다는 그 악몽을 너는 다시금 꾸고 있나. 그렇다면 너는 잠에서 깨는 순간 또다시 모든 것을 잊는 걸까.
신무영은 이미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가 한 번 더 기억을 잃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잊게 될까. 유진을 잊고 백정을 잊고 복작복작하게 머물렀던 그의 집과 그 마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잊고 탈을 잊고 차차웅을 잊고 나를 잊고 그 자신마저 잊으면 이제 그는 무엇이 될까. 랑은 신무영이 되었고 신무영은 이제 무엇이 되려 하나. 저렇게 괴로워하며……
이그나지오는 다시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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