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준호] 천생연분(天生緣分) 단문
~연애는 대만준호가 하고 고통은 주변사람들이 받는다~
* 천생연분과 같은 배경으로 초단문
"안녕뿅"
"안녕"
강의실로 들어온 명헌은 동오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 동오 역시 명헌에게 인사를 하며 옆 자리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강의가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강의실엔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 그리고 학생식당 바로 위층에 위치한 강의실. 식사 후 졸린 눈을 붙이기에 좋은 장소였다. 두 사람 역시 점심을 먹고 조금 일찍 강의실에 와서 한숨 자고 강의 들을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하아........."
다 죽어가는 얼굴로 강의실 책상에 엎드려 한숨을 쉬고 있는 정대만을 보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명헌은 동오의 옆자리에 앉으며 자신의 뒷자리에 있는 대만을 힐끔 쳐다봤다. 명헌이 오든 말든 관심도 없는지 대만은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쟤 왜저래뿅?"
명헌의 물음에 동오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애인이 해외에 가셨대 라고 대답했다.
"권준호가?"
"응, Y대랑 결연 맺고 있는 미국 대학에서 주관하는 학회에 과 신입생 대표로 가게 됐다더라."
"신입생 대표라니 대단하네. 미국 가는 게 정대만이 아니라 권준호였네뿅."
"아니! 뭔 학회를 일주일씩이나 해?! 그냥 간단하게 하면 되는 거 아냐?!"
신입생한테 뭔 학회를 참석하라 그래?! 데려가서 부려먹기만 하려는 거 아냐??? 다 죽어가던 대만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소리쳤다. 조용했던 강의실에 대만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단숨에 그에게 주목됐고 동오는 그런 대만에게서 등을 돌렸다. 대만이 창피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정말 동기라고 불러주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명헌은 아직도 씩씩거리는 대만의 머리 위로 두꺼운 전공책을 쿵 하고 올려놓았다.
"진정하고 앉아라뿅. 쪽팔리니까"
"하아......."
"겨우 일주일가지고 뭐 그리 난리냐뿅"
"겨우라니?! 일주일이 얼마나 긴데! 다섯손가락을 다 접고도 2개는 더 접어야 한다고! 애인이 같은 땅 위에 없다는 게 얼마나 상실감이 큰 줄 알아? 내가 이래서 준호 맘 아플까봐 미국 유학도 안 가려고 한건데 왜 준호가 미국에 가냐고오..."
전공책을 머리에 얹은 채로 씩씩거리던 대만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또 책상 위로 엎어졌다. 책상 밑으로 떨어지는 책을 붙잡으며 명헌은 대만이 미국 유학을 안 가는 건 권준호가 걱정이 돼서가 아니라 자기가 이렇게 앓아누울까봐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동오는 뭐라는 거야 진짜..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부터 계속 저런다. 진짜 내가 창피해서 옆에 못 앉아있겠어."
"그래서 앞에 앉은 거야? 나라면 정대만 주변 2M 자리에는 안 앉았을 거다뿅"
말로만 투덜거리지 실제론 동기인 대만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는 동오를 보며 명헌은 말했다. 그런 그에게 너도 내 옆에 앉았으면서 말만 그런다며 대꾸하는 동오였다. 친구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대만은 다시 다 죽어가는 파김치 모드가 돼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대만이 책상에 올려둔 핸드폰이 지잉 하고 울린 건. 진동소리에 대만은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입꼬리를 쓱 올렸다. 뭐 때문에 저러는지 안봐도 훤했다.
"권준호 연락인가봐뿅"
"그런가보다. 저렇게 실실 쪼개는 거 보니."
동오는 혀를 차며 말했고 명헌은 몸을 완전히 뒤로 돌려 대만의 핸드폰 쪽으로 고개를 쓱 들이밀었다. 카톡의 내용은 대충 방금 막 도착해서 숙소로 이동 중이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학회에 참가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빠서 톡 보는 게 늦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보면 바로 답장할게. 혹시 피곤하면 내가 하는 톡에는 답장은 꼭 안 해도 돼]
라는 그의 메시지에 대만은 아무리 피곤해도 네 톡에 답장은 할 거라면서 자긴 괜찮으니까 걱정말고 시차적응 잘하라고 타자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명헌은 손을 뻗어 대만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스크롤을 올리면서 주고받은 내용을 보니 준호를 찾으며 빌빌거리는 주제에 괜찮은 척 하면서 대꾸하고 있는 게 가관이었다. 쓸데없이 가오 잡고 있네뿅.
"야!! 이명헌 너 뭐야?!"
"잠깐만 있어봐라뿅"
명헌은 대만이 치고 있던 톡의 내용을 다 지우더니 대만보다 2배는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대만이 뒤에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핸드폰 내놓으라고 난리였지만 옆에 있던 동오가 막아주고 있었다. 아오 이것들 이럴 때만 같은 농구부였던 거 티내냐?? 라며 대만은 소리쳤지만 명헌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나 이명헌이다뿅. 정대만이 지금 완전 다 죽어가는 꼴로 권준호 너만 찾고 있어. 아주 세상 무너진 사람 같다뿅. 그 꼴 보기 싫어죽겠으니까 가급적이면 톡 자주 해주고 빨리 돌아와라뿅. 얘 이러는 거 쪽팔려서 같이 못 다녀주겠다. 미안하면 올 때 나랑 동오 몫까지 기념품 사와라뿅.]
엔터까지 누르고 나서야 명헌은 대만에게 핸드폰을 돌려줬고 대만은 다급하게 그가 쓴 톡의 내용을 확인했다. 아오 진짜 이런 걸 왜 써서 보내 라고 명헌에게 꽥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해보일 뿐이었다. 준호가 보고 싶어서 죽어가고 있어도 그걸 준호에게 알리고 싶진 않았다. 대만의 자존심이 그걸 용서하지 않았다. 아무리 애인이라고 해도 이런 모습까지 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의 앞에서 펑펑 운 전적이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랬다. 게다가 이런 말을 하면 당장 올 수도 없는 거리에 있으면서 걱정해올 게 뻔했으니까. 아니나다를까 1이라는 숫자가 사라지기 무섭게 보이스톡 알람이 울렸다. 대만은 핸드폰을 들고 그대로 강의실을 나갔다. 그 자리에서 받았다면 분명 방해받을 게 뻔했으니까. 대만을 말리느라 자리에 일어나 있던 동오는 강의실 밖으로 사라지는 대만을 쳐다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만이 사라지자 강의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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