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메리
쟁준
생각보다 좀 멀리 나온 것 같다. 익숙한 거리를 벗어난 지 5일이 지났을 때, 진재유는 인정했다. 현실을 받아들인 것에 가까웠다. 돌아가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진재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희게 구름이 낀 것이 조만간 눈이 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눈 내리기 전에는 드가야 하는데. 진재유가 뒷목을 문질렀다. 피부에 닿는 제 손이 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상도 하다. 내 3일 나갔다가 또 3일을 꼬박 돌아오는 데 쓰는데도 와 거리가 안 맞지. 움직이느라 점점 지쳐서 그런가? 아니면 지난번에 시간을 예상보다 많이 소모해서? 들를 필요 없는 건물까지 들어갔다 오느라? 진재유는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해 봤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모두가 하나로 합쳐져서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유가 무엇이 됐든……. 진재유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까닭이 무엇이든, 일요일까지는 집에 돌아가야 한다.
걸음을 옮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자정이 지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였다. 지금은, 예상이 너무 틀리지 않았다면 오전 중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운 내야제. 진재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가 얼른 드가자. 다른 날이면 몰라도 내일모레는 꼭 같이 보내고 싶었다. 내일도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복귀가 늦어지는 만큼은 욕심을 버려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이 진재유는 저울질과 포기에 익숙해졌다. 그러니 괜찮았다. 적어도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고개를 든다. 저 멀리 퇴색된 타워가 보였다. 겉면에 표시된 날짜는 12월 22일. 벌써 동지구마. 다만 아무리 운이 좋아도 팥죽을 끓인다거나 할 수는 없을 거다. 진재유는 쓴웃음을 지었다. 약칭 〈좀비 사태〉 D+431. 진재유가 유령 같은 도시 속을 걷는다. 성준수가 생존해 있는 ‘집’을 향해서.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둘은 서울의 자취방에 있었다. 성준수는 소파에서 잠들었고 진재유는 그에게 허벅지를 내준 채로 반쯤 멍을 때리며 소리를 줄여놓은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었다. 핸드폰에 카톡 알림이 떴다. 단톡방에 기상호가 메시지를 보냈다. 햄들 저 방금 이상한 걸 봐서. 사람이 그어어 소리 내면서 사람 목 깨물던데 이게 무슨? 상황이래요? 누군가 심드렁하게 답장했다. 뭐 찍는 중인 거 아이가? 좀비 영화 새로 나오납지. 아니 근데. 기상호의 메시지에 점점 오타가 섞였다. 이동 중인 것 같았다. 카메라가 없어요. 그냥 못 본 건 아이고? 다 살펴봤는데 하다못해 지미집 하나 드론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어디고? 진재유가 메시지를 보냈다. 저 XX역 2출 방금. 중복으로 찍힌 자음을 두고 기상호의 연락이 끊겼다. 상호? 상호 니 뭐하노. 장난치나. 농담을 뭐 이리 본격적으로 하는데. 본능적인 불안이 메시지로 입력되어 나왔다. 말하다 말고 사라진 기상호를 찾는 카톡도 조용해졌을 때 기상호가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 저도이거미친소리같은거아는데 이거영화가아니라실화. 띄어쓰기가 죄 사라진 문자가 이어졌다. 진짜좀비. 조심하세요. 진재유는 마지막 메시지를 읽었다. 살아서만나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화면이 전환되어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인도 출처도 모르는 감염병. 속칭 좀비 바이러스……. 핸드폰으로 어렵게 찍은 것 같은 제보 영상이 이어졌다. 마구 흔들리는 영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아는 얼굴을 찾던 진재유가 눈을 깜박였다. 이게 아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뭔가 터졌다. 진재유는 성준수를 깨웠다. 준수. 인나 봐라.
지진 대피 같은 건 훈련이라도 받지. 좀비 바이러스 창궐에는 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데. 일찍 물리고 친구 많은 좀비 되기? 진재유가 부엌에서 서성이는 동안 거실에 우뚝 선 성준수는 밀린 카톡을 대충 훑어내렸다. 살짝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재유. 어? 이거 뭐…… 같이 죽자고 해야 하는 상황인가. 실없는 웃음소리가 샜다. 살아남을 생각부터 해야지 무신 소리를 하는 기고. 그런가. 성준수가 웃었다. 눈썹을 조금 일그러뜨리면서.
둘은 문과 창문을 단단히 잠그고 커튼을 쳤다. 남은 라면 개수를 세고 냉장고에 쉽게 상하는 음식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가방에서 교재와 노트북을 빼내고 대신 쓸모 있어 보이는 걸 몽땅 집어넣었다. 응급 상자. 라이터. 뭔 자가발전 손전등. 이건 뭐고. 뭐에 쓸모 있는 물건들을 집어넣는지는 진재유도 잘 몰랐다. 성준수가 물었다. 재유. 집에 야구 방망이 같은 거 있어? 어…… 내 찾아보께. 창고를 뒤적거리는데 농구공 하나가 퉁 퉁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성준수가 공을 멈춰 세웠다. 진재유는 아버지의 골프채 가방과 좀 낡은 야구 방망이 하나를 찾아냈다. 이게 있긴 또 있구마. 돌아봤을 때 성준수는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 이내 진재유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평소와 같은 낯이었다. 재유. 조금의 간격 끝에 말이 이어졌다. 내가 좀비가 되면, 아니…… 내가 좀비가 돼도 넌 살아남아야 해. 자꾸 헛소리를 하는 게 방금 지나간 화면에서 뭘 봤는지 모르겠다. 진재유는 대답했다. 내 이런 말 듣고 있는 게 억울해서라도 니는 살려 놔야 쓰겄다. 성준수가 피식 웃었다. 다가온 그가 고개를 숙였다. 진재유는 고개를 들어 조금 건조해진 입술에 입을 맞췄다. 농담이야. 안 죽어. 너도, 나도. 그 짤막한 말이 어떤 예언처럼 들렸다. 진재유도 웃었다. 아직도 영 현실감이 없는 상황 속에서 끝까지 함께 살아남을 각오를 했다. 그들 앞에 무슨 일이 닥치든 간에.
초반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들은 그 허술한 자취방에서 예상보다 오래 버텼다. 전력과 수도가 상상처럼 쉽게 끊기지 않았다.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아직 현황과 정보 따위가 간간이 갱신되고 있었다. 멀리 있는 가족들과도 연락이 닿았다. 여는 뭐 괘안타. 다들 멀쩡히 잘 지내데. 농담조로 답했다. 서울이 문제구마. 서울이……. 사람이 너무 많았다. 좀비는 한때 사람이었던 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좀비 후보로 보였다. 좀비한테 알량한 동정심 품는 것보다야 나은 사고방식 같긴 했는데 속이 마냥 편하지가 않았다.
식사량을 줄였다. 처음엔 영 기운이 나지 않았는데 결국엔 허기에 익숙해졌다. 입이 짧은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네. 성준수의 말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더 이상 메시지가 올라오지 않는 단톡방에 점 하나를 찍어 보냈다. 속도는 제각각이었지만 톡방에 있는 모두가 반응했다. 같은 점 하나를 보내는 아도 있고 느낌표 보내는 아도 있고 뭐고? 하고 물음이 돌아오기도 하고. 다 살아 있네. 이 새끼들 할 일 없어서 폰만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성준수가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펼친 손 모양. 이번엔 우르르 같은 이모티콘이 올라왔다. 교수님이 출석 부른 거 같구마. 마지막 메시지까지 확인하고 핸드폰을 끈 성준수가 진재유에게 툭 기댔다. 카톡 서비스는 뭐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거지. 그짝 일하는 사람들은 원래도 다 좀비라드라. 성준수가 작게 웃는 기척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자주 웃는 것 같은데. 진재유는 그냥 같이 웃었다.
햄들요. 원래 이런 좀비물은 다 클리셰가 있다아입니까. 기상호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는 그렇게 시작했다. 원흉은 제약회사나 연구소고 남쪽에 생존자를 수용하는 셸터가 생기고……. 군대가 바리케이트를 치고 면역자가 나타나고, 일 년쯤 지나면 백신도 나온다고. 김다은과 북 치고 장구 쳐 가며 그런 잡다한 사항들을 늘어놓은 기상호는 가장 희망적인 관측을 적어 뒀다. 어카다 보믄 부산서 다 같이 다시 모이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마지막 메시지는 이전과 같았다. 살아서 만나요. 카톡은 며칠 더 가지 못하고 먹통이 됐다.
소리에 반응하고, 빛에 취약하대. 집요하게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던 성준수가 말했다. 진재유는 텔레비전 볼륨을 아예 0으로 내려버렸다. 생방송이었다. 돌아가는 카메라를 앞에 두고 어딘지 결연한 표정의 아나운서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했다. 대사를 외울 시간이 없었을 테니 손에 든 건 아마도 휘갈겨 쓴 메모지인 것 같았다. 스쳐 가는 자막 하나 놓치지 않고 신경을 기울였다. 낮엔 그늘에서도 비실거리지만 밤에는 그렇지 않다. 머리를 파괴하면 움직임을 멈춘다. 썩은 좀비는 내구도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되는대로 주워섬기는 것 같던 아나운서가 말을 멈췄다. 아나운서 특유의 미소를 띠고 그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메라에 담기는 영역을 미처 다 벗어나기도 전에 시퍼렇게 핏줄이 도드라진 팔이 그를 덮쳤다. 화면이 크게 흔들리더니 검게 꺼졌다.
밖에서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먼 파도처럼 들렸다가 조용해졌다가 했다. 잘 안 터지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긁어모았다. 레트로 좀비는 뇌까지 썩은 것 같던데 21세기에 나타난 좀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물린 지 얼마 안 된 좀비는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이를 드러낸다고 했다. 뭐고. 좀비가 와 이리 지능적인데. 뭐…… 이성이랑 본능 사이에서 갈등이라도 하나. 움직이는 속도가 좀 느린 걸 보면 사지 주체를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좀비 되면 농구는 못 하겠다. 아무 말이나 이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성준수가 고개를 돌렸다. 진재유는 그 시선을 따라 현관문을 쳐다봤다. 초인종이 울렸다.
미친……. 성준수가 거의 숨소리에 가깝게 중얼거렸다. 반응을 좀 기다리는 것 같더니 곧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래도 좀비가 사람 말은 못하더라. 그으으으……. 희미한 울음이 들렸다. 손톱으로 문을 긁어내리는 소리가 소름 끼쳤다. 둔탁한 퍽, 소리가 난 후에야 밖이 조용해졌다.
한동안은 내다볼 엄두가 안 났다. 며칠 후에 성준수가 문을 쾅 걷어차 열었을 때 그 앞에는 머리가 으깨진 좀비 시체가 남아 있었다. 좀비가 이미 반쯤 시체인데 시체라고 부르는 게 맞나? 진재유는 거기다 대고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자취방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에 뭐가 있을지 몰라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오래 버텼는데, 언제나 끝은 있는 법이다. 식량이 다 떨어졌다.
가까운 편의점을 털었다. 먼저 왔다 간 사람들이 이미 반쯤 털어간 것 같았는데 그럭저럭 둘이 먹을 만큼은 챙겨 올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본 게 있다고 STAFF ONLY가 적힌 문 쪽으로는 접근하지도 않았다. 마트를 터는 건 그것보다 조금 험난했다. 저 좀비 와 입구 쪽에서 안 나오노. 다른 출입구가 있는지 둘러보는데 성준수가 옆에 있던 음료수 캔을 집어 들었다. 몇 번 흔들어 보더니 멀리 던진다. 뭐에 부딪혔는지는 몰라도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조금 기다렸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쳐나왔다.
그래도 자취방에 평생 머무를 수는 없었다. 자차가 이래서 중요한 거였구마. 진재유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동 수단이 없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기? 이게 무슨 팔자에도 없는 국토대장정인지. 큰길에 전복되어 있는 초록색 버스를 보고 진재유가 물었다. 니 버스 몰 줄 아나? 성준수가 같은 곳을 흘끗 보더니 탈 줄은 아는데. 같은 대답을 했다. 진재유는 아주 잠깐 실전으로 알아가는 버스 운전 같은 걸 생각하다가 접었다. 교통사고로 죽는 것도 죽는 거라서.
계단을 몇 번 오르내리던 진재유가 좀비 대가리를 좀 후려갈긴 다음 전리품으로 자전거를 끌고 왔을 때 성준수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탄 게 언젠지 모르겠는데. 자전거가 페달 밟으믄 굴러가는 거밖에 더 있나. 다행히 성준수에게는 보조 바퀴가 필요하지 않았다. 좀 비틀거리던 자전거가 곧 똑바로 나아간다. 내비게이션이 없어서 도로 표지판을 열심히 봐야 했다. 성준수는 의도치 않게 자전거로 무단횡단하던 좀비 하나를 쳐버렸다. 좀비가 주섬주섬 일어나는 것보다 넘어질 뻔한 성준수가 빡쳐서 머리를 날리는 게 빨랐다. 미친 새끼가 왜 거기서 튀어나오고 난리야. 안전 운전 쫌 해라. 진재유가 웃었다.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기상호 말대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군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정확히 머리를 조준당하는 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아 자전거 타는 좀비 보셨냐고요. 멀리서 멀쩡한 검은자위와 팔을 보여주고서야 지나갈 수 있었다. 걷었던 소매를 도로 내린 성준수가 멀찍이 떨어지고서야 중얼거렸다. 공권력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진재유는 앞머리를 고정하던 머리끈을 조금 조정한 다음 대답했다. 뚫리기 전에 튀자. 둘은 다시 자전거에 탔다. 니 자전거 안 짝나? 좀 작은데 뭐…… 네 건 더 작잖아. 그건 그랬다. 별로 오가는 말 없이 도로를 타고 달렸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다.
빈 도시에서 멈췄다. 식량은 식량대로 체력은 체력대로 떨어져서 더 갈 수가 없었다. 힘들다는 말을 의식적으로 참고는 있었는데 발 끄는 속도에서 티가 났다. 자전거를 끌고 큰길을 따라 좀 돌았다. 여는 다 대피했나 보네……. 어슬렁거리는 좀비 몇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둘은 부동산 중개업자라도 된 것처럼 집을 보고 다녔다. 한두 번 정도 문을 열었다가 어둠 속에 있던 좀비가 우르르 기어 나오는 바람에 문을 내팽개치고 튀긴 했지만 어쨌든 낮이 끝나기 전에 무사히 마트 옆집을 점거했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웠다. 준수. 어. 영화에선 이럴 때 뭐 하는지 아나. 쌓인 먼지를 무시하고 옆에 누워 있던 성준수가 고개를 조금 돌렸다. 뭐 하는데. 진재유가 몸을 반쯤 일으켰다. 입술이 떨어진 다음에는 날리는 먼지 때문에 미친 듯이 재채기를 해야 했다.
거기서 또 오래 머물렀다. 내려가려고 해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좀비는 추위도 모르는 것 같다. 점마들 얼어 죽지도 않네……. 산 사람이 굶어 죽기 직전에 봄이 왔다. 길가에 가게가 있어서 새 자전거를 구했다. 다시 도로를 달렸다. 중간에 길을 잃어서 낯선 지명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여러 번이었는데 조금씩 내려가고는 있었다.
사람을 만났다. 마주쳐서 서로 머리를 후려갈기려다가 서로의 움직임을 보고 주춤주춤 팔을 내렸다. 그사이 바리케이트가 몇 번 뚫렸단다. 변이가 느려진 좀비들이 검문을 통과해 남하하는 바람에 이젠 잘 통과시켜 주지도 않는다고. 돈 많은 사람들은 해외로 뜨고, 운 좋은 사람들은 배 타고 도망가고, 그리고 남쪽으로 갈수록 대피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랬다. 부산은 거의 전쟁통이라데. 그렇게 말하는 상대의 손에 문득 시선이 닿았다. 진재유가 성준수를 뒤로 확 잡아끌었다. 선명한 이빨 자국. 덜 변이된 좀비가 혀를 찼다. 난 아직 사람인데……. 빌어먹을 군인들이 통과시켜 주질 않아서……. 뒤에서 뻗어 나온 다리가 복부를 걷어찼다. 비틀거리는 얼굴에다 뻑 소리 나게 주먹을 내지른 성준수가 진재유의 손을 붙잡고 달렸다.
불행이 이어졌다. 성준수의 자전거가 고장 났다. 자전거 하나를 달달 끌며 걸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도시에는 좀비가 우글거렸다. 2층으로 올라가 문 하나를 열었을 때 불쾌한 냄새가 훅 끼쳤다. 왜 좁은 방 안에 이렇게 몰려 들어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씨발 진짜. 성준수가 골프채를 놓쳤다. 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있다. 슛이 죽어도 안 들어가는 날 같은 거. 마구잡이로 걷어차 넣은 좀비를 마지막으로 진재유가 문을 쾅 닫았다. 이 건물은 텄다. 계단을 내려가려고 돌아서는데 다급하게 손을 뻗은 성준수가 진재유를 끌어안았다. 목 바로 뒤에서 뭐가 콱 깨물리는 소리가 났다.
재유. 나.
말하지 마라.
팔을 억지로 잡아 빼고 도망쳐 온 새 은신처는 진재유의 자취방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조금 좁긴 하네. 자전거를 아까 그 건물 앞에 세워뒀는데 다시 가지러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침대에 걸터앉은 성준수가 눈을 깜박였다. 집안 확인을 마친 진재유가 다가와 옆에 앉았다. 가방에서 소독약을 꺼낸다. 성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재유가 약을 낭비하고 붕대를 다 감을 때까지.
괜찮지 않나.
뭐가.
사랑하는 사람 대신 죽는 거.
니 내가 헛소리 말라 카지 않았나.
그런 말은 안 했는데.
성준수의 시선이 진재유가 들고 다니던 야구 방망이에 닿았다. 무기도 하나. 자전거도 하나. 그리고…… 이제 사람도 하나. 재유. 성준수가 말했다. 미안해.
아무래도 쉬어갈 곳을 찾아야겠다. 진재유는 옆으로 늘어선 가게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뭔 칼국수집이 비어 있길래 들어갔다. 문을 막아 놓고 벽에 기대앉았다. 긴 숨을 내쉰다. 손을 넣은 주머니에 바스락거리는 게 잡혔다. 엊그제 들렀던 마트에서 하나 가져온 초코파이다. 슬슬 배가 고프긴 했는데 이걸 먹을 순 없다. 초코파이 유통기한 얼마나 되지. 모르는데. 진재유가 스르륵 옆으로 누웠다. 방석을 대충 말아 베개로 쓰기로 했다. 별로 편하지는 않았다.
은신처에는 비축된 식량이 있었다. 누가 근거지로 쓰다가 간 것 같았다. 한 방에 몰려 있는 좀비는 그 사람의 유인책에 갇힌 게 아니었을까. 추측은 할 수 있었지만 앞사람의 흔적이 일기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뿐이었다. 남하를 멈춘 뒤로 한동안 진재유는 근처를 다 들쑤시고 다녔다. 무언가 꿰뚫고 지나간 창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깔끔하게 주차되어 있는 봉고차. 웬 블루투스 스피커에 좀비가 무더기로 죽어 있는 골목 같은 거……. 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재유는 잘 썩은 좀비의 머리에다 벽돌을 명중시킨 다음 길 건너의 편의점을 털러 갔다.
성준수는 잠이 늘었다. 실은 깨어 있을 때도 눈을 감고 있어서 잘 구분이 안 갔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게 된 지 좀 됐다. 진재유는 혼잣말이 늘었다. 식량을 구하러 밖에 나와서도 중얼중얼 입속말로 성준수한테 말을 걸었다. 나중에 습관 못 고치면 미친 사람 소리 듣게 생겼다고, 붕대로 성준수의 상체를 칭칭 둘러 감으며 말했다. 팔과 상체를 같이 동여매고 끝을 침대 기둥에 묶어 뒀다. 손목 발목을 묶으면 편했겠지만 아가 농구 선순데 혹시라도 다치면 안 되니까. 다행히 성준수는 별 반항 없이 묶인 다음 침대 헤드에 기대어 가만 앉아 있거나 옆으로 누워서 잤다. 오래 뜨이지 않는 하얀 눈꺼풀을 생각하며 진재유가 웅얼거렸다. 준수. 늦어서 미안타. 내 금방 가께. 사람이 사라지고도 전력이 꺼지지 않은 타워에 표시되는 날짜가 바뀌었다. 12월 23일.
모르긴 몰라도 저 타워에서 죽은 사람만 한 무더기는 될 것 같다. 진재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 년쯤 지났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 희망이 꺾이면 사람은 참 쉽게도 무너져서……. 진재유는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매번 지나쳤던 쇼윈도 앞에 멈춰 섰다. 보석상이었다.
가방에서 작은 통조림 하나를 꺼내서 올려놨다. 이런 걸 보는 안목이 있지는 않아서 그냥, 심플하게 생긴 것들 중에 저 보기에 예쁜 걸 골랐다. 뭘 골라도 괜찮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준수는 뭐든 어울릴 기다. 그래도 욕심껏 제일 예쁜 걸로. 반지 한 쌍. 목걸이 줄 하나. 반지 하나를 챙기고 제 것은 목걸이로 걸었다. 끼워주는 건 성준수의 몫이다.
이미 식품이란 식품은 다 털었던 다X소 앞에서도 한 번 멈췄다. 입구가 좁아가 여서 도망치는 건 좀 빡신데. 내 생일이니 한 번만 봐 달라 염불 외며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좀비는 없었다. 진재유는 생전 가 본 적 없는 코너에 발을 들였다. 가느다란 양초 한 줌에 500원. 500원짜리는 없는데. 하나만 빼내서 도로 올라왔다. 초코파이가 들어 있는 주머니에 곱게 넣어 뒀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한참 늦었구마. 아무리 주변 좀비를 다 치워버렸다고 해도 밤에 거리에 나다니는 건 좀 꺼려져서,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준수. 내 왔다. 마이 기다렸나. 그렇게 말하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털썩 누웠다. 가져온 것들 정리는 이따가 하자. 내 쫌 오래 걸었더니 피곤해가……. 탈진 직전이다. 물만 겨우 마시고 도로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체력 진짜 말도 안 되게 떨어졌네. 그게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한밤중에 깼다. 여전히 피곤한데 배가 고파서 더 잘 수가 없었다. 사람 사는 데 뭐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대충 꾹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저녁에 멈춘 시계가 7시 2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재유는 손을 뻗었다. 시곗바늘을 돌린다. 자정으로. 두 바늘이 모두 위를 가리키게.
준수.
…….
이 봐라.
초코파이를 까서 초를 꽂았다. 초초코파이다 이제. 뭘 하기도 전에 이미 한쪽이 바스러진 임시-케이크를 조심조심 들고 침대로 갔다. 성준수는 앉아 있다. 창밖의 하늘이 검다. 진재유가 성준수의 손을 찾아 쥔다. 창백한 손의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이게 왜 이렇게 헐렁하지? 뒤늦게 진재유가 깨달았다. 살이 빠졌을 걸 생각 못 했다. 반지가 빠질세라 주먹을 쥐여 줬다. 다시 초코파이를 든 진재유가 기름이 다 떨어져 가는 라이터를 켠다. 아이 이 잘 안 되네……. 초에다 어렵게 불을 붙이고 나면 조금 미간을 찡그린 성준수의 얼굴에 희미한 불빛이 일렁였다. 이거도 빛이라 그런가. 성질부리지 말고 좀만 참으래이. 진재유는 오랜만에 웃었다. 닌 이래 봐도 진짜 잘생겼다. 고작 그런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억지로 눈을 크게 떴다. 진재유는 주먹 쥔 성준수의 손에 제 손을 얹고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준수의. 생일 축하합니다……. 진재유는 곧 꺼지려는 촛불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생일 선물은 서로 없는 걸로 퉁치자. 그때 성준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초 불고 소원 빌믄 된다. ……준수?
갑자기 성준수가 고개를 돌렸다. 진재유는 그 시선을 따라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멀리서 무언가 반짝였다. 소리가 가까워진다. 검은 하늘을 가르는 화려한 불빛. 헬기다. 웃기게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공권력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진재유가 숨을 들이쉰다. 촛불이 꺼졌다.
백신이 나왔다. 상호 점마 뭐 신기 있는 거 아이가. 이게 왜 죄다 들어맞는데? 진재유의 의문에 답해 줄 기상호는 옆 침대에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원인을 두고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아 이거 정부가 묻은 거 같다니까요. 김다은이 동의했다. 아무리 봐도 언론 통제임. 니들 쫌 짝게 말하면 안 되긋나? 공태성이 이마를 짚었다. 표정으로 봐서는 뒷목을 잡고 싶은 것 같았다. 공태성의 혈압이 터지기 전에 병실 문이 덜컥 열렸다. 햄들 저 왔어요! 수액 달고 발랄하게 들어오는 정희찬은 자기 몸통만 한 과일 바구니를 안고 있었다. 뭐고? 누가 이 병실로 갖다주랬는데요. 그기 누군데……. 정희찬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무나 찍었다. 감독님이신가? 진짜 아무나였다.
기상호의 말은 현실이 됐다. 성준수의 치료를 위해 부산에 내려왔더니 익숙한 얼굴들이 다 있었다. 헐 햄햄햄 재유햄 살아있을 줄 알았어요오아악. 병원에 막 들어서는 진재유를 발견하고 달려와 덥석 끌어안으려던 기상호가 기겁하며 떨어졌다. 바로 뒤에서 성준수가 귀신처럼 창백한 얼굴로 꼬라보고 있었다. 햄요 저 심장 떨어지는 줄……. 진재유가 웃었다. 괘안타 점마 햇빛 받아가 피곤해서 그런다. 엥 준수햄 좀비 됐어요?!?!
그러는 니도 좀비구마. 준수햄은 다 찢어 죽였을 줄 알았다며 징징 우는 기상호도 환자복 신세였다. 아 저 백신 테스트하느라 물려 봐갖고. 뭐? 이쪽은 뭔가 파란만장한 사연이 있었나 본데 이게 자세하게는 국가 기밀 취급이라 말해줄 수가 없단다. 어쩐지 뿌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기상호를 본 진재유가 코웃음을 쳤다. 내 들을라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을 것 같든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진재유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진재유는 면역자였다. 나라에서 아주 받들어 모시는 중이었다.
병원에서 1인실을 바치려는 걸 마다하고 6인실을 택했다. 권력은 지상고 여섯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 쓰였다. 진재유와 정희찬을 뺀 넷이 싹 좀비였다. 닌 또 어쩌다 물렸는데. 사정을 탈탈 털었다. 물론 성준수가 좀비 입에 자기 팔 처넣은 이야기도 털렸다. 성준수가 쌍욕을 갈길 수 없는 틈을 타서 활개 좀 치고 선배들도 좀 놀려 보려던 악의 세력은 성준수가 오랜만에 악귀의 얼굴을 하자 사그라들었다. 희차이가 기특하네. 안 물리고 잘 살아남았구마. 사실 물리긴 물렸는데 보호대가 두꺼워서 이가 못 들어갔단다. 오. 그거 버렸음? 아무래도 그랬죠 드릅게 축축해져가……. 그런데 왜 입원했나 했더니 사유가 영양실조였다. 살아남은 대부분이 달고 있는 병증이기는 했는데 좀 많이 심했다. 주식 폭락하듯 떨어지는 체중 기록을 들은 진재유는 기특하단 말을 취소했다. 니 밥 좀 잘 무랬지…….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성준수의 침대에 앉아 있던 진재유가 웃었다. 준수 왔나. 님 방금 목소리 들었음? 거의 양봉장임! 수군거리는 소리는 무시했다. 성준수가 다가와 진재유의 옆에 앉았다. 후배들을 개무시까고 진재유에게 머리를 기댄다. 불편할 텐데 혼자 가서 검사받고 올 때마다 이러는 걸 보면 나 왔어.랑 비슷한 것 같았다. 성대가 다 회복되지 않은 성준수는 말을 못 했다. 종이에 쓰는 필담이 귀찮다고 핸드폰 메모나 카톡을 이용하는 성준수를 보며 기상호가 중얼거렸다. 이것이 21세기 현대인…….
좀비 바이러스는 이제 해외에까지 퍼졌다. 국제적으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다행히 백신과 부가적인 약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모든 좀비를 사람으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 덜 썩은 좀비 찾아서 백신 꽂기가 말처럼 간단한 일도 아니고. 서울에 남아 있는 좀비들은 아직도 처리 중이었다. 연구진은 동의를 받아 면역자의 피를 채혈해 가고 이런저런 실험을 계속했다. 내 이러다 좀비 되는 거 아이가. 농담 삼아 그렇게 말하면 성준수가 빤히 바라보거나 툭 쳤다. 진심이야? 아니면 재유. 자잘한 행동을 마음대로 해석해 보며 진재유는 즐거워했다.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성준수가 반응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여전히 가끔은 그 순간을 되짚는다. 사소한 후회들이 눈처럼 쌓였다. 그때 그러지 말걸. 이랬으면 더 나았을 텐데. 만약 이랬다면. 사백여 일의 순간순간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그럴 때면 성준수의 손을 잡고 가만가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성준수는 그중 절반 정도만 텍스트로 대답을 해 줬는데 사실 말하는 것만으로도 진재유는 좀 괜찮아졌다.
어느 날은 그렇게 말했다. 내 면역자일 줄 알았으면 니 안 묶어 두는 건데. 성준수가 핸드폰을 켰다. 진재유 쪽으로 화면을 기울이고 천천히 타자를 친다. 그 뒤로 이렇게 오래 말하지 못할 줄 알았더라면. 진재유가 눈을 깜박였다. 성준수가 움직일 때마다 약지의 반지가 조금씩 반짝였다. 곧 문장이 완성됐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데.
진재유는 성준수를 끌어안았다. 환자복을 입은 마른 어깨에 고개를 묻는다. 내 너무 울리지 마라. 중얼거렸는데 이상하게 눈물은 안 났다. 그 대신 웃고 싶었다. 그래서 진재유는 웃음을 터뜨렸다. 성준수는 진재유의 뛰는 심장 소리와 숨 섞인 웃음소리에 가만 귀를 기울였다. 진재유가 말했다. 내 대신 말해주께. 사랑한다, 준수. 성준수가 웃는다. 창밖으로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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