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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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디나의 바닷바람엔 특유의 생선 냄새가 있다. 부둣가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소금기보다는 조금 더 눅진하고 찝찔한 비린내.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과 그로부터 분화하는 일상, 그 틈바구니에 숨죽인 포탄과 화약 냄새가 뒤섞여 탄생한 결과물이라고 로잔나는 말했다. 사는 것들은 대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며 가장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파편이 바로 냄새라고
* 이 모든 것에 지쳐서 나는 사라질 작정이었다지. ¹ 눈을 뜬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날이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숲 공기가 피부에 찐득하게 달라붙는다. 이불처럼 저를 덮은 안개에 몸을 뒤척이다가 찌르르 울리는 새 소리를 듣는다. 아침의 희미한 햇살은 아직 숲 밑바닥에 닿지 않고, 그렇기에 사위는 어두운 채지만. 그래도 모노는 몸을 일으
* ‘모집합니다. 나이/성별/인종/능력 무관.’ A이 팸플릿을 발견한 건 유월 이십육 일 오후 세 시경이었다. 점심시간 십 분 전에 걸린 긴급 출동으로 끼니를 거른 에스퍼들이 급식실로 대거 몰려들었던 바로 그때. 팸플릿은 홍보라는 제 탄생 이유를 착실히 수행하는 듯 배식처 바로 옆 벽면에 붙어 있었다. 촌스러운 파란색 배경에 얼기설기 누끼를 딴 설원
* 나는 최초의 순간을 기억한다. 시작은 산크레드였다. 간밤에 자리를 비운 널 기다리기 위해 나는 크리스타리움의 광장에 앉아 있었다. 날은 조금 흐린가 싶더니 곧 비가 내렸고, 그에 따라 기온이 떨어지며 추위가 엄습했다. 방한복 없이는 견디는 게 힘들겠구나 싶어 나는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몸을 녹이는데 산크레드가 왔다. 여기 있었구나, 모
1. 웃지 마. 난 진심이야. ……. 내 영웅은 너뿐이야. *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쐐기에 카엘이 질겁하며 몸을 틀었다. 춤을 추듯 빙그르르 돌며 귓가에 울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서쪽 오십 미터에 하나. 북쪽 십삼 미터. 공격 태세에 들어간 건 북서쪽 육 미터. 날아다니는 적을 노려보며 방아쇠를 당긴다. 단말마를 지르며
“귀신이 앓아누웠대.” 은밀한 중얼거림은 전장의 스산한 피바람을 타고 퍼진다. 높게 올려 묶은 백발이 뱀과 같은 궤적으로 흔들리는 동안 모노는 청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따닥, 따닥, 모닥불 타들어 가는 소리. 곳곳에 친 천막 안에선 부상자들이 앓는 신음과 생존자들의 흐느낌이 번잡하게 뒤섞인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병사들은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 채, 그러
밤이다. 불면은 그림자처럼 피부에 스민다. 침대에 정갈하게 누운 채 모노는 생각한다. 이를테면 빛과 어둠에 대해서. 불과 바람에 관해서. 상반된 주제들을 향한 의미 없는 탐구를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같은 결론이 난다. 통합되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는 것들을 나란히 늘어트려 놓으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걷는 것들 위에 불면을 한 자락 떨구면. 그
00. 너는 떠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01. 땅거미가 지면 온갖 소음은 그 몸집을 부풀린다. 밤에 깨어 있지 않은 날은 드문 터라 나는 새까맣고 커다란 소음들에 여간 익숙해지지 못한다. 반 뼘 정도 열린 창문 너머에선 날갯짓, 바람, 잎사귀, 풀벌레 따위의 온갖 소음이 작아졌다가 커지기를 반복한다. 나는 발끝이 닿지 않는 침대에 누워 그것들에 귀
어느 볕이 좋던 날. 영웅이 사라졌다. 새벽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재빠르게 움직였다. 한 줄로 요약한 이야기가 밀서, 암호, 급보의 탈을 쓰고 전 세계에 은밀히 퍼졌다. 각국 정상들은 빠르게 모였다. 첫 편지를 부치고 정확히 일주일 후. 각국의 정상들은 올드 샬레이안의 대회의장에 앉아 있었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모두 상황이 긴급하다는
파이널판타지14 확장팩 전반에 걸친 스포일러 및 효월의 종언 주요 스포일러 포함 00. 당신의 여행은 좋았나요? 02. 모노에게 있어 단순하지 않은 시작은 없었다. 깊은 생각보단 즉각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 탓도, 물론,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빠르게 내리는 결정과 종종 가지는 강한 확신이 그를 두 번 고민하지 않는 사람으로 빚어냈다
안녕하세요 이걸 쓰겠다고 한 놈은 나기는 하지만 뭔가 정신 놓고 타자 두드리고 있자니 상당히 웃기네요……. 거두절미하고 이야기를 해보자면. 여러분은 파이널판타지14라는 게임을 아십니까? 아주 오타쿠 친화적인 게임이죠. 게임이랑은 벽을 치다못해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저는 처음이나 다름없는 rpg를 파판으로 시작해 아주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1년이 다
날숨이 안개처럼 핀 밤이다. 땅거미 내린 지평선 위로 간헐적인 불빛이 깜빡였다. 일정하지 못한 거리를 두고 박힌 가로등이 꼭 이쑤시개 같다고 생각하면서 B는 모자를 한껏 눌렀다. 우산이 없었다. 출근길에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은 대가가 이렇게 돌아왔다. 나직이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빗줄기가 굵지는 않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사 건물 처마의 끝단
온종일 안개가 자욱했다. 세상이 회색빛으로 보일 정도로 짙고 빽빽한 연무였다. 그래서 B는 장마가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본래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야 할 빗줄기는 없었다. 땅에서 모락모락 피는 열기가 물기를 바싹 말린 탓이었다. 어렵사리 형성된 비구름에서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과일에서 즙을 쥐어짜듯 억지로 비틀어봤자 전부 땅에 닿기
00. 너는 떠날 거라고 했다. 01. 우스운 이야기를 해볼까. B는 봄과 겨울이 닮았다고 믿었다. 문학적인 의미보단 자조적인 믿음에 가깝기야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만남과 이별이 있고 그들 모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느 날에는 만남만 있기를 바라고 어느 날에는 이별만 있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
오. 안녕해요. 거기는 어때요? 여긴 좀 망했어요. 좀이 아니라 많이? 아무튼, 음, 산 사람이 별로 없어요. 나 때문은 아니에요. 나는 최선 다했어요. [죽겠답시고 블랙홀로 뛰어드는 사람 뒷덜미 붙잡으면서 인생 설교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그거 은근히 빨리 질린다니까요.] 오늘 날짜가……. 2043년 7월 14일이에요. 딱 일주일 지났어요. 음, 그러니
정말 지치지도 않으시는군. 그게 브루노의 첫 소감이었다. B 가문의 집사장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해온 지 어느덧 육십 년이었다. 호그와트를 졸업한 직후부터 몸담아 온 덕에 B 가문과는 이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웬만한 사건은 브루노의 손짓 아래 쥐 죽은 듯이 처리됐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가주에게 올라가는 일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것을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