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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거성 토벌전

오피셜 대죄식자 AU

S by 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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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초의 순간을 기억한다. 시작은 산크레드였다. 간밤에 자리를 비운 널 기다리기 위해 나는 크리스타리움의 광장에 앉아 있었다. 날은 조금 흐린가 싶더니 곧 비가 내렸고, 그에 따라 기온이 떨어지며 추위가 엄습했다. 방한복 없이는 견디는 게 힘들겠구나 싶어 나는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몸을 녹이는데 산크레드가 왔다.

여기 있었구나, 모노. 한참을 찾았어.

대화를 되짚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끈한 휴게실에 나는 다소 정신이 몽롱한 채였다. 산크레드가 왔구나. 직후 깨달은 건 그러나 너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산크레드를 맞이하며 자리서 일어나면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카엘은?

그러자 산크레드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눈을 감는가 싶더니, 이윽고 한숨과 함께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카엘은…….

산크레드가 놀라지 말라고 했기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가 아무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벼락처럼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는 알고 있었겠구나. 그래서 간밤에 떠났구나. 도망으로써 모든 죄를 면죄받기 위해.

소문은 일파만파 퍼졌다. 지역은 봉쇄되었고 밝은 밤은 다시금 찾아왔다. 밤잠을 이루기 어려운 나날들이 도래했다.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올 텐데도 나는 밤이 낮이고 낮이 밤인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온종일 내리쬐는 백광에 시간 감각이 모호해지기 일쑤였고 그 사실을 자각할 때면 나는 종종 정신이 아득해졌다. 새벽과 수정공과 크리스타리움의 병사들은 번갈아 크리스탈 타워에 모여 대책을 강구했으나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야슈톨라가 언젠가 한번, 당신 생각은 어때요, 하고 물어왔으나 내 대답은 간단했다. 뜻대로 하라고.

그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그들이 결정하면 나는 따를 것이다. 암막 커튼을 친 어두컴컴한 방에서, 그러나 침대에 누우면 커튼 너머로 비어지는 실금같은 빛에 눈을 찡그리면서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의견도 드러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산크레드가 찾아왔다. 결론을 지었어. 나는 그 말을 지금도 곱씹는다. 그를 토벌하기로 했다. 네 도움이 필요해. 산크레드는 어두운 방을 익숙하게 더듬어 내 앞에 섰고 나는 그 사실이 조금쯤 반가웠다. 그래서 대답했다. 언제?

모든 건 수월하게 흘러갔다. 일주일 후 나는 새벽과 함께 아므 아랭의 외곽, 봉쇄된 빛의 태내에 서 있었다. 그곳은 어찌나 건조한지 들숨과 날숨에서 쩍쩍 갈라지는 듯한 환청이 들릴 지경이었다. 흐려지지 않는 유백색 하늘을 올려다보면 가면 안으로 볕뉘 같은 햇살이 엷게 울렁거리듯 흘러 들어왔다.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에서 나는 놀랍게도 다정한 환대를 읽었다.

괜찮겠어요?

야슈톨라는 그렇게 물었고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야슈톨라가 무엇을 묻는지 알았으나 괜히 대답을 미뤘다. 그 대신 조금 비겁한 답을 내어놓았다.

뭐가?

당신 말이에요, 하고 고개를 내젓는 야슈톨라의 낯엔 엷은 우려가 떠 있었다. 흑마봉을 등에 맨 라케티카 대삼림의 마녀는 눈을 가늘게 좁혀 나를 보고 있었다. 카엘.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거기서 내가 아닌 널 향한 걱정을 읽었다. 야슈톨라의 진심은, 글쎄, 여전히도 모호하지만 그날, 그때, 거기에 존재하는 내게서 너를 염려하는 야슈톨라를 보며 나는 문득 괜찮겠구나 싶어졌다. 또 무엇이, 하고 묻는다면. 무엇인진 나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어째서인지 마음이 놓였다는 불분명한 대답밖엔 할 수 없겠지만.

대검이요. 무언의 실랑이 끝에 야슈톨라가 먼저 말했다. 대검 말이에요. 대검으로도 괜찮겠냐는 말이었어요.

그러자 곁에서 수정공이 거들었다. 만일 직업을 바꾸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하게. 나는 준비되었네. 그때 내가 뭐라고 답했을 것 같아, 카엘? 네가 듣는다면 아마도 헛웃음을 터트릴 황당한 대답이었다는 사실만 알려주겠다. 그외엔, 글쎄, 듣고 싶다면 내 꿈에라도 나타나 보는 것도 괜찮겠지.

나는 끝까지 직업을 바꾸지 않았고, 파티의 전위로서 가장 앞장섰다. 유백의 요람을 다 함께 거닐다가 너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도 나다.

난 확신한다. 너와 나는 그때 눈이 마주쳤다. 빛을 머금던 혼이 깨지며 괴물의 형상을 띠게 된 너지만 나는 그런데도 그 눈속에서 카엘, 너를 똑똑히 보았다. 깨지지 않은 영혼이 있었다. 찾기 어렵지도 않았다.

시작하자.

누가 그렇게 말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너는 그 육중하고도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한때 동료였으나 이젠 침입자가 되었을 우리를 맞이했다. 네가 품은 빛에 눈이 시렸으나 나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한 걸음.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니까, 카엘. 이건 말하자면 장황한 작별이다.

예리하게 빛나는 섬광을 보며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잘 가, 잘 있어, 여기 있을게, 기억할게, 돌아와, 날 두고 가지 마 따위의 신파적인 언어들뿐이다. 그들은 입밖으로 내뱉는 순간 타인의 몰이해와 뒤섞이며 온전히 닿을 수 없는 어떠한 형체로써 변모하고 마는 탓에 나는 어느 것도 입에 담지 않기로 한다. 너는 어렸을 적과 달라지지 않은 여전한 겁쟁이라는 사실이 그나마 작은 위안을 준다. 너는 도망쳤으나 결국 내게 돌아와 내가 닿았다. 내가 너를 찾았고 내가 너에게 닿았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겠는가.

구태여 전위를 택한 까닭도 그러하다. 네가 더는 내 뒤에 있지 않으니 뒤돌아볼 수 없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졌다. 대신 나는 가장 앞에서 너를 보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가려지지 않는, 그 어떤 빛으로도 덮을 수 없는 영원불멸의 잔상. 한때 광막했고 지금도 내 온 신경을 빼앗는 가장 아름다운 백색거성을.

있지, 카엘.

나는 기억한다. 그때의 공기. 잔떨림. 더위와 추위. 느려지는 시선. 사위의 소음. 또는 고요함.

기억한다. 낮은 목소리. 조심스레 깔아 속삭이는 단어들. 짓궂은 웃음. 가볍게 내리누르던 압력.

기억한다. 너의 우려. 상처. 기쁨과 고통. 고독과 절망. 섦과 환희. 그 모든 걸 망라하면 탄생하는 카엘, 너 자신을.

기억한다. 그러니 잊지도 않는다.

나직이 올라가는 초읽기와 함께 속삭인다. 그러니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5초.

4초.

3초.

2초.

1초,

 

이윽고 별을 잡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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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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