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장기 프로젝트 데이(기념일) 장기 합작 : 11월 14일 쿠키데이
최종수 우정 드림 (재업로드)
“종수야 어때?”
어떻긴 맛없지. 입안에 들어온 퍼석한 쿠키 때문에 피로해진 혀를 달래려 마신 스포츠음료에도 소용이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맛없는 쿠키를 매번 줄 수 있지. 심지어 이번엔 학교까지 찾아와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주는 정성에 더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쿠키 때문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아빠 친구 딸. 아빠 친구 아들. 우리의 관계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최종수에겐 그랬다. 어릴 때부터 뭔가를 만들면 실험용도 아니고 죄다 제게 먼저 사용하는 행동이 여전한 것은 정말 좋게 생각한다면 저를 친동생처럼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종수는 가족 모임을 할 때면 제게 했던 행동을 떠올렸다. 저렇게 무해한 얼굴을 하고선 직접 만든 쿠키라던가 머리핀이라던가 팔찌 같은 액세서리, 목도리 등… 뭐든 만든다면 죄다 제게 사용해보거나 주면서 지금처럼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걸 다 만들었네.
“뭐. 먹을만하네.”
“그렇지? 그럼 이거 친구들이랑 나누어 먹어. 다음 주가 쿠키 데이라고 해서 많이 만들어왔거든.”
그래. 저건 전부 임승대의 몫이 될 거다. 종수는 종이봉투를 받아서 들었다.
“그리고 오늘 부 활동 마치면 나랑 우리 집 가는 거 알지?”
“어.”
“근처에 있을 테니까 마치면 연락해줘.”
그러고선 체육관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언제부터인지 근처에 있던 임승대가 손을 내밀었다. 종수는 고민 없이 손에 쿠키가 든 종이봉투째로 쥐여주려다 잠깐 고민을 하더니 두어개만 꺼내 손에 올린다. 조금 전까진 다 줘버려야지 했지만, 맛이 없어도 승대에게 전부 다 주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던가.”
“진짜?”
“어.”
그러고선 후배와 대화 중인 이규가 있는 쪽으로 갔다. 좀전의 상황에 규의 얼굴엔 미소가 묻어났다. 사이가 안 좋은 두사람이 간식을 나누어 먹는 상황은 기쁠 수밖에.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았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건 얼마 지나지 않고 깨닫게 되지만…
“잘했어. 맛있는 걸 같이 나누어 먹으면 더 맛있지.”
“맛없어.”
“어?”
“맛없어서 쟤만 준거라고.”
상황을 파악하기 몇초.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하나 까먹었던지 뜯긴 포장지와 종수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매서운 눈빛이 보였다.
“그래도 네 성격 같으면 애초에 안 받거나 종이봉투째로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주신 거라 그런 거야?”
“아빠 친구 딸이니까.”
종이봉투를 코트 밖에 내려놓고 오겠다며 이동하는 종수를 보던 규는 짧게 숨을 뱉어낸다. 그런 뜻으로 한 질문이 아닌 걸 알면서 종수는 어쩌면 규의 대답을 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여기까지가 규의 생각이었지만. 우선은 이를 바득 갈며 다가가는 승대를 붙잡아야 했기에 그렇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정확한 건 나중에 물어봐도 되는 거였으니까.
부 활동을 마치고 각자 자유 활동 시간이 정해졌을 때, 종수는 인사를 하고선 체육관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근처에 있겠다고 했으니 전화를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통화 중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친구랑 통화를 하는 걸까. 메시지를 보내려던 차에 바로 상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교문 앞에 있다는 말에 조금은 빠르게 움직였다. 날도 추운데 왜 교문 쪽에 있는 걸까. 짜증이 났지만 우선 교문 쪽에 있는 경비원에게 서류 제출 후 밖으로 나오니 근처에서 손을 흔드는 그가 보인다. 종수는 빨리 가자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쿠키 나눠줬어? 애들이 뭐래?”
“아직 안 줬는데.”
“당일날 주려고?”
조금은 늦게 종수의 답을 들은 상대의 표정은 예상외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구나 한 뒤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보다 어리고 조용한 동생이 심심하지 않게 하려 계속해서 말을 거는 누나처럼.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성격상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단답형으로 대답하는데도 주제에 대해 말하다 뜬금없이 먼 과거의 일에 대해 꺼냈다. 어째서인가 했더니 올라탄 버스 창밖으로 나란히 손잡고 걷는 아이들을 보며 한 말이었던 것 같다. 어릴 적이 떠올랐나보다. 내겐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기에 넘기려 했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상대의 엄마 친구 아들,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사람과의 이야기였다. 왜 여기서까지 그 이름을 들어야 하는가. 종수는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렸다. 그러자 옆에선 숨이 길게 새어 나오는 소리가 난다.
“지금 생각하면 박병찬 걔도 참. 나 때문에 고생하긴 했지. 내가 만든 걸 다 걔한테 먼저 해봤으니까.”
“내가 아니라?”
“무슨 소리야? 네겐 제일 잘 만든 걸로 줬어. 최고의 완성품만 네게 줬는데.”
그게 최고였구나. 종수는 규에게 부탁해 제 방에 있을 종이봉투 속 쿠키를 떠올렸다. 맛없는 쿠키부터 조잡한 머리핀,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형광의 액세서리, 화려한 색상의 목도리 등 그동안 만들어줬던 게 다 그의 입장에선 제일 잘 나온 것이었다는 게… 종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긴 마음에 안 들 만 했겠다. 네 취향은 전혀 안 들어간 것들이었으니까.”
“알면 주지 마.”
“그래도 너만 보면 챙겨주고 싶단 말이야.”
“박병찬은?”
“갑자기? 걔는… 나보단…”
대답을 한 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지자 조용히 입을 닫았다. 창밖으로 움직이는 나무의 개수를 세어보다 안내 음성이 들리자 벨을 누르고 내렸다. 혼자서 못 나오기에 손을 붙잡아 간신히 내리고 나니 저 멀리 오랜만의 봐도 익숙한 곳이 보인다. 목적지는 그곳이니 걸어서 이동하는 중 편의점 문엔 쿠키 데이 기념 과자 세일 홍보 전단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몇시간 전에 받은 맛없는 쿠키를 떠올렸는데 상대 역시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만든 쿠키는 어땠어?”
“아까 괜찮다고 했잖아.”
“얼굴은 별로라고 쓰여 있던데. 괜찮으면 더 가져가. 집에 많이 만들어놨거든.”
“그냥 저기서 사줘.”
대답을 들은 상대가 걸음을 멈추니 종수는 뒤늦게 다른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손으로 제 입을 가린 뒤 고개를 숙이는 그를 보고 순간 철렁해 더 빠르게 다른 변명을 하고 있던 차에 아래쪽에서 숨을 뱉어내는 큰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웃음을 참고 있었던 모양인지 파악한 종수는 변명을 멈추고 그냥 먼저 가려기에 뒤쪽에서 종수의 손을 잡아당긴다. 다른 한손으론 눈을 소매로 닦아낸다.
“아, 미안. 종수는 반응이 재밌으니까. 가자. 사줄게.”
“집에 많다며.”
“내가 먹으면 돼. 내 입맛엔 맞으니까. 누나 카드 있으니까 맘껏 골라.”
그대로 당겨져 함께 편의점 쪽으로 향한다. 종수가 힘을 쓴다면 그의 행동을 멈출 수 있을 텐데. 종수는 그러지 않고 하자는 대로 따라 들어간다. 맘껏 고르라고 했으니까. 우선은 눈앞에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옆에선 울리는 전화에 통화를 하기 시작한다. 들리는 목소리는 어디쯤 왔냐는 질문이었기에 다 왔다는 대답하고 있었다. 바구니에 과자가 쌓이는 것도 모른 체. 통화를 마치고 음료 판매대로 간 그를 뒤로하고 먼저 계산대에 들고 와서는 바구니 속에서 과자 하나를 꺼내 그것만 따로 계산한 뒤 가방에 챙겨 넣는다. 많이 받았으니 하나 정도야.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빠르게 가방을 다시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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