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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주인] 질 나쁜 장난

아쿠네코 보스키x주인♀️

Scarlet by 스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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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를 끼운 뒤에 밀려오는 몽롱함이 가시고, 희뿌옇게 물든 눈앞이 점점 선명해지며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아직도 자신이 어떻게 현실 세계에서 이 저택으로 이동하는지 원리는 알 수 없으나, 언제나 그렇듯 눈꺼풀 너머로 비치는 강렬한 노란 빛이 사라지고 눈을 뜨면 어둠이 적막히 내려앉은 고풍스러운 방이 나타난다.

주인 이외엔 눕는 게 금지되었을 그녀의 침대에는 누군가 노곤히 몸을 뉜 채 잠들어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담당 집사일 보스키겠지. 평소에도 다른 집사들의 눈을 피해 몰래 주인의 푹신한 침구류를 독차지하는 그였기에, 주인은 집사에게 침대를 빼앗겼음에도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새근새근 보스키의 숨소리가 들린다. 주인이 살금살금 침대로 다가서자, 구불구불 시트 위로 흘러내리는 그의 푸른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엔 항상 그녀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그를 깜짝 놀라게 할 심산이었는데, 순한 아이처럼 자는 그의 얼굴을 보니 잠을 방해하고 싶단 생각이 싹 달아났다. 그를 깨울까 말까 잠시 고민하던 주인은 이내 피식 웃으며 그의 단단한 어깨에 닿을 뻔했던 손을 거뒀다. 대신 침대에 살포시 걸터앉자, 그의 흰 금속제의 의수가 주인의 무게를 따라 움푹 들어간 침대 끝으로 힘없이 떠밀려와 그녀의 손에 닿았다.

주인은 그의 눈앞에서 몇 번 손을 휘저어 그가 잠들었는지 확인해본다. 그가 눈꺼풀 하나 까딱하지 않자, 주인은 자기 손과 맞닿은 의수의 손마디 사이사이로 살며시 손가락을 밀어 넣어본다. 마치 엄마 몰래 숨겨둔 과자를 꺼내먹는 아이처럼, 그녀의 손가락이 차가운 금속제의 손가락 사이로 밀려들어 갈 때마다 긴장감으로 어깨가 옥죄인다.

그런데도 보스키는 여전히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성공했어. 주인은 스스로를 축하하듯, 보스키의 의수를 꽉 맞잡아본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그의 손을 이렇게 맘껏 잡아보겠는가. 간지럽게 붕 뜨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주인은 발을 붕붕 저으며 그의 의수를 꼼지락꼼지락 매만졌다.

그나저나 참 깊게 잠들었구나. 주인이 한바탕 그 난리를 쳤는데도 여전히 곤히 자는 검푸른 머리의 미남을 보고 있자니, 평소와는 다른 욕망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고개를 든다. 주인은 보스키가 깰까, 금속제로 이루어진 손등을 살살 자기 입술로 끌어당겼다. 보스키가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게 깨어질까 두려워, 심장이 당장이라도 목구멍 밖으로 뛰쳐나올 듯 쿵쿵 달음박질한다. 자신에게 짓궂게 장난을 치면서도 가끔은 신사적일 정도로 선을 긋는 그였기에, 오늘이 지나면 아마 다시 이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겠지. 그녀의 매끄러운 입술이 차가운 의수에 닿는다. 혀끝에서부터 차가운 쇠 맛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달콤한 디저트에 발린 생크림을 음미하듯, 주인은 그의 의수에서 좀처럼 입술을 떼지 못했다.

"귀여운 짓을 하는군, 주인님."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주인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보스키가 장난기가 가득 담긴 녹색의 눈으로 자신을 어떻게 놀릴까, 그녀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는 척을 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자신이 보스키 손바닥 안이었단 사실을 깨달은 주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내가 깨지 않았으면 내 손을 얼마나 붙잡고 있을 생각이었어?"

응? 주인. 깐족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마 오늘 일로 일주일은 족히 놀릴 생각이겠지. 주인은 샐쭉 입을 내밀며 그의 손을 침대 위에 툭 내려두려 했지만, 그렇게 두지는 않겠다는 듯 보스키의 의수가 주인의 손을 되레 꽉 붙잡아왔다. 마치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 더러워서 닦아주려 했을 뿐이야."

주인이 시선을 피한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보스키는 피식 웃었다.

"입술로?"

감사하지만, 다음엔 타액 대신 오일을 발라 마른 헝겊으로 닦아주겠어? 비꼬는 그의 어투에 주인의 귀가 끝까지 붉어졌다. 당장 반지를 빼고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반지가 끼워진 손은 여전히 보스키에게 붙들려 있었다. 주인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던 그의 녹안이 그녀의 눈동자를 쫓는다. 그 끝에 어두운 방에서도 커튼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을 반사하는 그녀의 황금 반지가 있단 사실을 깨달은 보스키는 혀를 찼다. 참으로 어려운 주인님이 아닌가. 닿을 것 같으면 겁먹은 사슴처럼 도망치고. 도망치나 싶어서 포기하려 하면 다시 슬며시 다가와 이렇게 귀여운 짓을 하고 있으니. 자신이 상대방에게 이토록 마음 졸이며 조심스럽게 다가간 적이 있던가.

"주인, 여기 오기 전에 빵 먹었어?"

"어? 아.. 머핀을 조금 먹긴 했는데."

"그런 것 같네. 입가에 빵 부스러기가 묻어있거든."

그랬어? 주인이 머쓱하게 웃으며 손으로 입가를 훔치려 들자, 보스키가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양손을 맞잡은 채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힌다.

"내가 닦아줘도 될까. 주인이 한 것처럼."

주인의 눈동자가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아마 방이 밝았더라면 잔뜩 붉어진 주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보스키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마 방이 환했더라면 주인도 잔뜩 붉어진 자기 얼굴을 봤을 테니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살짝 떨어졌다, 다시 맞닿길 반복하던 주인의 입술이 앙 다물린다. 대답 대신 부끄럽다는 듯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주인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잔뜩 긴장하기라도 한 듯 꾹 미간을 잔뜩 움츠리며 눈을 꽉 감았다. 잔뜩 긴장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묘하게 우스워 키스는커녕 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사람 아닌가.

"... 긴장 풀어. 장난이니까."

그 말에 주인이 살며시 눈을 살며시 뜨는 순간, 보스키가 그녀를 잡아먹을 듯 성큼 다가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포갰다. 의외로 보드라운 그의 입술을 느끼며, 주인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또 속았구나. 주인이 억울한 감정을 잔뜩 담아 맞잡은 손을 꽉 움켜쥐며 부르르 떨자, 보스키는 히죽 웃으며 주인의 달콤한 입술을 마저 탐했다. 자신의 손아귀로 알아서 걸어 들어온 사슴을 쉽사리 돌려보낼 줄 정도의 신사는 아니었으니까.

오늘이 지나면 아마 이런 기회는 또 쉬이 찾아오지 않을 텐데, 놓칠까보냐.

* 밑의 결제선은 채널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라지더라도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결제란입니다. 아래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장본의 금액은 글자수에 맞춰 책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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