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human

I sacrifice for humanity. (1)

나는 인류를 위해 희생한다

작업실 by A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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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왔냐?"

승혁이 들어오는 여원을 보며 물었다. 여원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 이 새끼. 또 옷 안 챙겨 들어가지."

승혁은 익숙한 듯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공용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드레스룸 안에는 4개의 옷장이 있었는데, 그 중 베이지색의 옷장을 열었다. 거기서 한참을 뒤적이던 승혁은 여원의 잠옷과 속옷을 꺼냈다. 잠시 후, 그의 손에 들려있던 옷가지들이 사라지며 화장실 선반 위에 나타났다.

"야, 선반 위에 옷 올려놨다."

옷장 문을 닫으며 크게 소리치던 승혁은 다시 소파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그 위로 드러누웠다. 그는 폭신한 소파가 착 몸에 감겨오는 걸 느끼며 TV를 틀었다. TV에는 방금 여원이 처리하고 온 괴물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TV에서는 새로운 변종이 나왔을 때 처리하는 건 이능력자들이 당연히 해야 될 일이라며 떠들고 있었다.

또 다른 변종. 1기 때보다 점점 강해지는 괴물들에 죽어나가는 건 이능력자들 뿐이다. 3명 사망, 7명 부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확실히 예전보다 많이 적어진 숫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들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 맞을까?

승혁은 느껴지는 불쾌함에 TV를 끄고 천장을 바라봤다.

'당연한 거라. 음.'

한참을 고민하던 승혁은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런 건 자신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여원이 다 씻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화장실 앞에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은 그는 소파에 누워있던 승혁의 다리를 깔아뭉개고 앉았다.

"아, 돼지. 비켜라."

"꺼져. 뉴스나 틀어봐."

"그런 거 봐서 뭐한다고."

"뒤진다. 내놔."

"응, 아니야."

승혁은 손에 쥐고 있던 리모콘을 어디론가 보내버렸다. 여원은 사라지는 리모콘을 멍하니 바라보다 승혁의 명치를 한 대 후려쳤다.

"억."

"미친놈."

여원은 혐오스러운 걸 바라보는 표정으로 승혁을 힐긋 보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철컥, 방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승혁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애새끼란, 역시.

방 안에 들어온 여원은 제 방 한구석에 버려져있다시피 하던 휴대폰을 집어올렸다. 지금 받고 있는 월급으로 휴대폰을 바꿀 수 있는데도 여원은 나온지 10년은 더 된 고물폰이라 불리는 걸 사용했다. 휴대폰을 잡자마자 지지리 궁상맞은 척 한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싶었지만 여원은 신경을 껐다.

여원은 화면을 키고 바로 뉴글에 들어가 "한여원"을 검색했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뉴스들이 가득했다.

[ 속보, 우후죽순 생겨나는 괴물들..범인은 이능력자들? ]

[ 괴물들로 인해 황폐해진 민가에서 이능력자 한여원, "사정이 있어서 늦었네요" ]

[ 한여원, "솔직히 이능력자는 월급 많이 줘야된다고 생각해요" 이능력자관리부 공개회담 발언 논란 ]

어제 회의를 끝마치고 잠도 거의 못자다시피 미뤘던 서류작업을 끝냈던 여원이었다. 그러다가 긴급 호출로 불려나가서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처리를 했는데...그를 반기는 건 싸늘한 뉴스였다.

여원은 멍하니 저를 욕하는 기사 헤드라인을 보다가 클릭해서 들어갔다. 처음 들어간 건, 공개회장에서의 발언 기사였다.

[ 최근 15일경, 이능력자관리부에서 공개회담을 열었다. 수려인 대통령과 이능력자관리부 장관과 그에 소속되어 있는 주요 팀장들이 대화를 나눴다.

이능력자관리부 소속의 제1팀장인 한여원씨는 불만사항이 없냐는 질문에 "솔직히 이능력자는 월급 많이 줘야된다고 생각한다"며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데 일반 공무원 월급과 비슷한 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몇몇 네티즌들은 해당 발언에 대해 "그러면 그 전부터 힘써왔던 소방이나 경찰 쪽에 더 지원해야 되는 거 아니냐?", "배가 불렀네. 팀장직위 달면 그만인가."라는 반응을 내비쳤다. ]

"이딴 놈도 기자를 하는데 말이야."

민석은 여원의 휴대폰을 스윽 잡아챘다. 익숙하다는 듯 내놓으라고 손짓하는 여원을 가볍게 제압한 그는 기사를 다 읽고나서야 그에게 휴대폰을 넘겨줬다.

"하씨, 능력써서 들어오지 말라니까."

"너 또 삽질하고 있을 거 같아서."

여원의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집었다가 놓은 그는 방 불을 켰다. 갑자기 환해지는 방 안에 여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휴대폰 할 때는 밝은 곳에서 하라니까."

"네 알 바 아니잖아."

"한쪽 눈은 내 소유잖아."

"미친놈. 또 헛소리하지."

"하 그때 두 짝을 걸고 내기했어야 하는데."

여원은 민석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슬쩍 내밀었다. 그러자 민석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불리는 능글맞은 미소를 내비치며 여원의 중지 손가락을 스윽 내렸다. 여원은 짜증난다는 듯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버렸다. 민석이 그 옆에 앉으려하자 여원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잠옷차림도 아니고, 씻지도 않았는데 앉지 마!"

"젠장, 이래서 눈치가 빠른 사람이란."

민석은 목숨을 담보로 잡고 그의 침대 위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가만히 서서 침대를 내려다보던 민석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휴대폰 압수 당하기 싫으면 그만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여원은 그의 기척이 사라진지 한참이 지나서야 이불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

여원은 한참동안 휴대폰을 바라봤다. 아직 읽지 않은 기사들은 많았다. 하지만 계속 기사를 읽고 있다면, 진짜 그때는 만나기 껄끄러운 그까지 들어올지 모를 일이었다. 여원은 그 생각에 휴대폰을 끄고 방 문을 열었다. 그들 때문에 어쩐지 배가 고파진 거 같으니까.

"뭐야, 밥 먹게?"

"응."

"너 아무리 밥 먹으라 해도 안 먹었잖아. 그것도 한 달 동안."

승혁은 의외라는 시선으로 여원을 바라봤다. 안 먹은지 좀 된 거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 정도였나. 여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먹고 싶은데?"

"라면?"

여원의 아무렇지 않은 대답에 승혁은 미쳤냐며 오랜만에 먹는 건데 자극적인 라면을 먹으면 위장이 버텨주긴 하겠냐며 잔소리를 내뱉었다. 여원은 귀를 틀어막고 식탁에 앉았다.

"라면은 안 되고, 죽 먹어. 죽."

승혁은 냄비 하나를 꺼내 물을 들이부으며 말했다. 여원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동안 부엌에는 칼질소리와 보글보글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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