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소설

오늘 밤만의 캠프파이어

클레이 군웅담 로로라디 4천자

이걸로 다섯 번째다.

처음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만 해도 지도를 제법 소중히 잡고 있던 라디리나는 분노에 찼는지 그걸 바닥에 패대기치고 있었다.

 

“그 망할 데몬, 거짓말을 친 게 틀림없어!”

 

라디리나의 말에 모모케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둘 – 정확히는 휴먼 한 명과 플레임 드래곤 한 마리가 길길이 날뛰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불씨에 공포를 느낀 로로와의 태도는 점점 공손해졌다.

 

“케이오스 씨가 실수한 게 아닐까…요?”

“갑자기 웬 존댓말이야. 그리고 그 녀석, 실수할 놈으로는 보이지 않았어. 우리를 속인 거야. 그럴 줄 알았다니까! 이런 외딴 숲에 황결정 같은 게 숨겨져 있었다면 다른 황구자가 있었을 테니까…”

 

케이오스가 ‘황결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라디리나가 가장 좋아했으면서…그런 말을 했다가는 금방이라도 마가목 땔감이 되어버릴 테니 로로와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사정은 이렇다. 에바 일당과의 소동이 끝나고 얼마 뒤, 케이오스가 두 사람에게 지도 하나를 주며 말했다. 어쩌면 여기에 너희가 찾는 물건이 있을 거라고. 의기충천한 라디리나는 모모케와 로로와를 끌고 외딴 숲으로 뛰쳐나갔지만…똑같은 곳에서 다섯 번쯤 헤맨 결과, 이 지도는 쓰레기나 다름없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러다 해가 질 것 같은데…”

“…더 돌아다니다가는 위험하겠어. 어쩔 수 없지. 노숙하자.”

 

모모케가 동의한다는 듯 허공에서 한 바퀴 돌며 그륵, 소리를 낸다. 여기서 다른 의견을 낼 생각도 없으니, 로로와 역시 그러기로 했다. 거침없이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라디리나의 눈치를 보며 바닥에 떨어진 잔가지를 줍는다. 때려죽여도 바이오로이드. 그렇다고 완벽한 식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식물에서 태어나며 식물에 근접한 만큼 자연을 해치는 사람을 보면 제 몸을 해치기라도 할 것처럼 두려웠다. 그러나 자연을 개척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드래곤 엠파이어 출신은 다르다. 하물며 지금은 로로와가 살던 시대로부터 3천 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지적할 생각도 없지만, 하나하나 지적하다가는 겨우 붙잡은 인연을 놓칠 것도 같았다.

 

“동굴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동굴이 없었으면…”

“…없었으면?”

“얼어 죽었겠지, 뭐.”

 

덤덤한 라디리나의 발언에 로로와가 헉,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올리비가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고…그래도 라디리나처럼 ‘얼어 죽는다’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는 않았다. ‘어쩌면 몹시 추울 것’이라고 돌려 말했지. 그런 것에서 사소한 문화 차이를 느끼며, (문화 차이가 맞기는 할까?) 로로와는 잔가지를 둘러앉은 중앙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노숙도 불 피우기도 익숙하다. 둘 다 바이오로이드인만큼 불의 취급에는 주의해야 했지만, 지금은 모모케가 있으니까…

 

“모모케, 부탁해!”

“캬오-!”

 

모모케의 불씨 섞인 숨결이 잔가지에 닿자, 그것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간다. 그러자 라디리나는 때가 되었다는 듯 자기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건 – 식량이었다. 혹시나 해서 사흘 정도 먹을 걸 준비했거든. 그 중 생고기를 본 모모케가 기분 좋다는 듯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커다란 나뭇잎 위에 라디리나가 늘어놓은 재료들을 보니, 로로와는 오늘 하루 자신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미안한데, 내 것도 있어?”

“되게 뻔뻔하게 물어보네. 그렇지만 네 몫도 준비했어. 음, 뭘 좋아할지 모르겠어서 적당히 우리 먹는 거랑 비슷하게 가져왔지만.”

 

3천 년 전 바이오로이드를 보는 건 아무리 그래도 처음이거든. 라디리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생고기, 브랜트 게이트에서 제작했다는 긴급 스튜, 스토이케이아 거리에서 산 샐러드. 노숙하면서 먹는 것치고 꽤나 호화롭다. 그러나 예상외로, 세 명 (정확히는 휴먼, 바이오로이드, 플레임 드래곤이었지만) 분으로 나눈 음식을 바로 나눠주지는 않았다.

 

“다 끓이면 내일까지 먹을 수 있거든.”

 

생활의 지혜라고나 할까.

 

라디리나가 가방에서 주걱 같은 것을 꺼냈다. 모모케의 도움을 받아 생고기는 살짝 익히고, 스튜는 냄비에 풀어 살짝 익은 그것을 솜씨 좋게 잘라 넣는다. 얼마간 끓인 뒤, 샐러드 야채를 넣어 풍미를 더하면 완성! 그야말로 드래곤 엠파이어제 전투 식량과 비견할 보존식이 탄생했다.

 

“…그런데 고기를 바이오로이드가 먹어도 되던가?”

 

라디리나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인 채 말했다.

 

“바이오로이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오히려 우리가 꺼리는 건 채식이야. 뭔가…몸의 일부를 먹는 느낌이거든.”

“아, 그건 생각 못 했네. 풍미를 더하겠다고 샐러드를 듬뿍 넣어버렸어.”

“아, 그래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이면 괜찮아. 맛이 문제가 아니라 식감이 문제라고 해야 할까…아무튼, 고마워. 라디.”

“별말씀을.”

 

라디리나가 움푹 팬 나무 그릇에 스튜를 듬뿍 담아 로로와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그래도 그 데몬 덕분에 이런 야경도 볼 수 있고 좋네. 동굴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그가 비꼬듯 말한다. 앞질러 먹은 스튜의 맛은 굉장했다. 고기건 야채건 풍미를 놓치지 않고 뱃속까지 전달해 준다는 것이 제일…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라디리나, 이거 정말 굉장해! 라고 재잘거린다. 그야 올리비의 음식은 이렇게까지 먹을만하지는 않았으니까. 당연히 이것들이 전문적인 요리는 아니지만, 서바이벌 요리 기준으로 말을 얹자면 라디리나 쪽이 좀 더 훌륭했다.

 

“그럼 천천히 먹어. 입천장 데지 말고.”

“…이미 덴 것 같기도 하고…그래도 맛있어!”

“모모케도 천천히 먹어.”

“우물우물…”

 

황결정이 없다는 건 뼈아프지만, 라디리나가 말했다.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맞아, 케이오스 씨가 나쁜 뜻으로 우리를 여기 보낸 건 아닐 거야.”

“여전히 사기당하기 딱 좋은 녀석이라니까. 사람이 그렇게 좋아서 어쩌자는 거야. 3천 년 전에는 다들 이랬나.”

 

그런가. 로로와가 곤란하다는 듯 웃었다. 문득 올리비가 떠올랐다. 자신을 마지막까지 지켜준 상냥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진 것 같다. 건네받은 생명과 힘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라디리나도 올리비 같은 사람과 다니는 게 더 편하지 않았을까. 모닥불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흐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로로와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던 걸까. 라디리나가 자기 손바닥에 주먹을 ‘탁’ 치며 정신 차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내가 무슨 소리 했다고 또 땅을 파고 있어? 정신 차려.”

“응, 라디…미안. 잠깐 옛날 생각을 하고 있어서…”

“난 휴먼이라 황결정이 없으면 3천 년 동안 사는 건 무리야.”

 

라디리나의 말에 로로와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어떤 ‘결의’에 찬 모습에 금세 숙연해진다.

 

“황결정을 찾으면 휴먼의 수명을 뛰어넘어, 최고의 드래그리터가 될 거야. 모모케와 역사에 남을 콤비가 되어주겠다고! 뭐, 나는 이런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그런가. 3천 년 뒤에 깨어났다는 네 사정에 공감해 주기는 힘들어.”

“… ….”

“그렇지만 상상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모모케도 없고, 부모님도 없고, 내가 알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어디서는 미친 여자가 실험하겠다고 쫓아오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힘들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라디리나가 얼굴을 붉힌 채 숨을 고른다. 아무래도 격려 같은 건 부끄럽다고 생각한 걸까. 로로와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니까, 힘내. 바보같이 쪼그라들지 말고.”

 

잘 싸우잖아…몰라, 밥이나 먹자. 라디리나가 숟가락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로로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뭘 웃어! 모모케도 라디리나의 말에 까르륵, 웃으며 불씨 섞인 숨을 토해낸다. (그런 분위기였지만, 불씨만큼은 묻지 않도록 로로와는 부단히 신경 썼다)

 

“고마워, 라디.”

 

로로와가 빈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말했다.

 

“나한테 이런 것도 해주고…그냥, 도와줘서 고마워. 라디가 아니었다면 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야. 라디가 곁에 있었으니까, 뭐라도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지킬 사람이 있으니까…”

“여기 있었나.”

 

로로와의 말을 끊고 남성의 목소리가 툭 끼어든다. 케이오스의 부하, 미카니라고 하던가. 케이오스 님께서 너희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무뚝뚝한 태도는 언제나와 같다. 발소리도 없이 등장한지라 라디리나도 로로와도 모모케도 깜짝 놀랐다. 그러는 사이 라디리나와 로로와의 눈이 마주쳤다.

 

어쨌든, 돌아갈 때가 된 거 맞지?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