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학년

허상

ARK by 척추

BGM : NOCTURNE NO.20 IN C-SHARP MINOR OP.POSTH


“그런 처절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세우는 것도 폭력이야. 그 사람들의 괴로움과 슬픔을 '별수 없지'라고 치부하기 위해 날 구실로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난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다친 게 아냐. 난…. 실제로 피해를 보는 후배도,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할 정도로 마음이 다친 후배도 모두 구하려고 뛰어든 거라고.”

“그리고….”

네가 하는 말을 한참 듣고만 있었다. 가을 서늘함이 나무가 아닌 우릴 스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면, 정말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너와 나 사이의 짧은 거리에 스미는 냉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계율부로 인해 억압받는 학생들은 오히려 배움을 얻어가겠지. 사회로 나가기 전, 그 사회가 허락한 교육의 장이 일그러뜨려졌다는 걸. 걸핏하면 불이익을 거론하는 부서의 존재로 자리매김하면 더욱.”

그렇게 되면 자신처럼 졸업 이후 마법사 사회에 머물고자 하는 이가 줄어들지 않을까. 불현듯 슬리데린 기숙사의 신입생 수가 현저히 적었던 것이 떠올랐다. 홈스쿨링을 통해 교육을 받고자 하는 아이가 점차 늘어났으나 이유를 불문하고 학교의 일그러짐을 눈치챈 이가 많아진다면. 그리 된다면 농담처럼 나왔던 호그와트의 폐교가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은 억압받고, 핍박 받으며 정신적 ‘피해’를 보는 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계율부 부서의 존재로 모두가 호그와트를 꺼리게 된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가 아닌가. 정상적인 가정의 부모가 그런 곳에 아이를 밀어 넣을 리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네 비판은 달갑게 들을게. 그리고 난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부탁이라고는 했지만 그걸 수락한 것도 결국 나고, 타인이 고통받게 된 상황에 내 책임 소재도 있겠지. 거기에 따르는 비난은 전부 수용하려고 해. 그런데 말이야.”

너는 그러기 위해 다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이 다친 후배가 선택할 결과를 목도하고 그 이야기의 장에 뛰어들었을 때 느끼지 않았냐고. 그리 말하고 싶은 걸 잠시 누른 채 널 보았다. 아직도 네 얼굴이나 몸 곳곳에 자리한 붕대가 퍽 우스웠다. 마음을 다친 이가 지팡이를 네게 휘둘렀음에도 기꺼이 상황에 골몰하지 않고 이후 반복되지 않을,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한다. 한 번의 포기를 겪었음에도 기꺼이 나아가길 선택한 네가 새삼, 그리고 지독하게 …

“결국 네가 뛰어들었던 일의 마무리는 어떻게 되었어? 넌 그 일이 미칠 파장도 고려해야 했어. 물론 일개 학생이 어찌 일의 책임을 다 지겠어. 네가 원인이 된 일도 아니고, 하지만 네가 다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외에 다친 학생이 있었잖아 모워리.”

끔찍해서,

“학생 사이에 떠도는 가십은 내 귀에도 들어와. 피해 학생이 다쳐서 세인트 멍고 마법 질병 상해 병원에 입원했고, 가해 학생은 실종이지만 퇴학 처리가 됐다지 그래. 네가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결국 일은 이렇게 되었을 거야.”

숨이 막혔다.

언젠가 기숙사의 다른 이가 공부하던 룬문자 과목의 구절 하나를 떠올렸다. Que Sera, Sera, 될 일은 결국 된다던 뜻이었는데. 널 핑계로 하지 않더라도 일이 이렇게 되었을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그것과 별개로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공격한 일은 이해가 갔다. 이전까지 무력을 써서 분쟁에 마침표를 찍던 일을 했었는데 어찌 이해하지 못할까. ‘대화’보다 확실하고 강력하며 빠른 효과를 주는 게 무력이었고 자신은 그게 불변하다 믿었다. 하지만 그 일의 파장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왔더라. 혈통에 따른 일방적 힐난과 비판, 책임 소재의 판가름의 천칭에 서봤던 기억을 떠올리니 기분이 묘했다. 가해 학생은 실종되었지만, 어쩐지 그 친구라면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럴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차라리 원인을 도려내면 좋을 것 같았다. 차라리 입학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여버린 사회에 발 들이지 않는다면.

“다음에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면 그땐 어떡할 생각이야? 무력이 모든 분쟁을 해결해 주지 않는단 걸 알아. 하지만 때때로 예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아무 전조나 이유 없이 부서가 생긴 게 아니잖아. 네 사고를 제외해도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물론 교장이 자신에게 계율부 입부 시 당부했던 말은 지금 뱉은 말과 상충하지 않았다. 지극히 교장 개인의 사담이 이어졌지만 이를 네게 말하진 않았다. 적어도 ‘표면적’인 계율부의 설립 이유는 ‘불건전한’ 학생이 많다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한 가지 약속할게. 적어도 다른 부원과 달리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내가 다른 학생을 억압하진 않을 거다. 또한 습득하는 정보가 타인에게 이로울 경우 언제든 협조적으로 굴 거야. 난 누굴 악의적으로 괴롭히려고 입부한 게 아니니까.”

책으로만 접했던 100년 전의 마법사 사회가 이런 분위기였을까. 그렇다면 네가 반발하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자신이 조금 더 늦게 지쳤더라면, 아니 천천히 나아갔더라면 함께였을지 모르겠단 생각을 하였지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마법사 사회에 가진 미련은 이제 없었다. 발목에 찰랑이는 파도가 언젠가부터 서늘함을 넘어 시렸다. 곧잘 들이쉬던 호흡이 거품이 된 게 언제더라, 물의 수위가 머리 위에 있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숨을 뱉었던 때가 있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네가 본인이 왜 미쳤는지에 대해 상세히 토로하는 걸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사빌이 이야기하던 것이 떠올랐다.

‘당연한 것들이 가라앉고 새로운 것, 혹은 과거의 것이 다시금 떠오르는... 격동의 순간에 무엇이 단단하게 버티느냐에 다음 시대가 걸려있어... 아무 역사책을 봐도 다 똑같은 흐름인 것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맞나봐’

라고 했었는데… . 네 이야기를 들으니 과연, 역사는 정말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았다. 호그와트에 드루실라 헤인즈가 살아있다, 왜 하필 이런 학교에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이라면 그것만큼 웃긴 일이 있을까. 이 순간, 자신이 동경했던 영웅은 없었다. 역사가 정말 반복된다면 자신이 동경하던 이도 나타날까. 그럴 리가.

“하지만 점술만큼이나 그 얘기에 신빙성이 부족하단 거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네가 보고, 듣고, 느낀 바가 역사의 반복을 주장했더라도 드루실라 헤인즈의 그림자는 호그와트에서 목격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었고 모습을 본 이도 없었다. 네 주장이 신빙성을 떠나 ‘사실’이라고 해도 당장 네 말을 들어줄 이가 호그와트에 있을까. 네가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앎에도 잘 믿기지 않았다.

“너무 지나친 생각 같아, 전쟁이 쉽게 일어날 리 없잖아. 그리고 일어날 이유가 있을까. 그땐 모든 걸 뒤엎기 위해 알렉산더 워커가 나섰잖아. 하지만 지금은 …”

엎을 것이 없었다. 전쟁이 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그리 말하며 널 보았다. 교내의 분위기가 순수혈통에 너그러우며 비순수 혈통 학생을 배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호그와트만 그러했던가? 마법사 사회는? 당장 다이애건앨리에서 비순수 혈통 태생의 출입을 막은 가게가 몇이나 되던가. 퀴디치 연맹의 비 순수혈통의 경기 참가 횟수는 또 어땠는가. 네 ‘전쟁’ 얘기는 차라리 희망적이었다. 적어도 전쟁을 할 만큼의 사람이 혈통 우월주의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말일 테니까.

“뒤엎을 수 있는 게 있긴 한가? 당장 너와 나의 태생으로 출입이 불가능한 가게가 다이애건앨리에 널렸어. 이걸 이상하게 보고 규제를 하는 정부도 사라진 지 오래인데 무엇 하러 전쟁을 하지? 내가 드루실라 헤인즈라면 전쟁이 아니라 부추길 것 같아. 너, 그리고 … 달리 반발하는 이들이 자멸하도록.”

그러곤 네 부탁에 왼손을 쥐었다 폈다. 검지에 자리하던 후플푸프 기숙사 반지는 6학년을 기점으로 항상 집에 두었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반지를 끼고 있으면 헬가의 이념이 떠올라서 괴로웠으니까.

“대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네가, 나한테는 이기적인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환자를 때릴 쓰레기로 날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불쾌한데. 적어도 그런 소원을 빌 거라면 맞고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상태로 찾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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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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