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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츄린과 레이시오와 그날의 밤

Ate a Wright by 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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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타스 레이시오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

스타피스 컴퍼니에서 살인하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은 피어포인트가 위치한 은하계에서 컴퍼니가 개척하지 않은 행성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베리타스 레이시오는 첫 살인의 경험을 기억한다. 피가 튀었던가? 그의 성격상 교살했을지도 모른다. 교살은 총격에 비해 피도 튀지 않고 살인자도 더럽히지 않는다. 그의 말이 피해자의 사망을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리타스 레이시오가 미필적 고의를 이유로 재판에 소환된 적은 없었으니 그건 아닐 것이다.

레이시오는 눈을 뜬다. "쏴 봐." 그래, 총. 총이었다.

"날 못 믿는 건가?"

찰그락, 하고. 약실 돌아가는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렸다. 레이시오는 볼트 액션과 수동장전식 총기의 장전 소리를 구별할 줄 알았다. 실린더가 불안정한 소리를 내며 상대의 손안에서 회전했다. 레이시오는 눈앞의 사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어라 주절대겠지. 본인의 업무 스타일이라던가. "보아하니, 즐거운 협력을 위해서는 내 업무 스타일을 설명해야 할 듯하군." 정답. 레이시오는 대답 없이 눈썹을 까닥였다. 상대가 삼색의 보랏빛 눈을 곱게 휘며 웃었다. 새벽녘의 빛이 그의 곱상한 얼굴 위로 미끄러져 그들의 왼쪽에 있는 벽에 기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눈 깜박할 새 사내가 방아쇠를 당겼다.

공이가 세 번 연속 빈 약실을 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사내는 여전히 요사스럽게 웃고 있었으며 레이시오라는 작자는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을 극히 싫어했다. 그는 사내의 손을 내치고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그 시절의 레이시오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죽인 건 어벤츄린이 아니야, 아하."

"글쎄? 아닐 수도 있지. 네 인지 회로를 허구 역사학자들이 수정했을 거란 생각은?"

"내가 듣기로 이 우주는 지니어스 클럽의 천재 네 명이 만들었다고 아는데. 허구 역사학자 따위가 간섭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오, 대단한 자신감이야, 레이시오 교수. 그래서 네 선택은?"

"어벤츄린은 이런 도박판에 제 생명을 올리지 않아. 아하의 본체가 아니라 그런지 사람의 욕망을 읽는 기술이 같잖기 그지없군."

스타피스 컴퍼니의 전략투자부 간부인 어벤츄린이 목숨을 건 도박을 즐거워하던가?

눈앞의 어벤츄린이 웃는다. 레이시오는 불현듯, 그 시절의 어벤츄린 역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꺼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인이란 것은 으레 그렇지 않던가. 어벤츄린이 제 숨을 대가로 거는 판은 체스에서 흑색 폰 하나로 백색 퀸을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물론 어벤츄린이 백색이다. 그는 도박에서 언제나 우위를 점했다. … 츠가냐인들은 다 그랬다. 적어도 그때의 레이시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이런 곳에선 지지 않아."

다시 말하지만, 베리타스 레이시오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 없는 사내였다.

"아니미친 아하 인형 쥐어패기만 할 줄 알았는데 사람도 먹네 괜찮으세요?"

"…… 안 괜찮아. 멍청해지는 것 같으니 썩 물러나."

"진짜 너무하네. 저 지금 보존의 길 걷거든요."

"그거 안 됐군. 난 지식의 길을 걸어."

"레이시오, 너 수렵이잖아."

"시끄러워, 어벤츄린."

공간의 평균 아이큐가 절반은 내려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레이시오는 다짐했다. 복귀하면 헤르타에게 헤르타 인형의 키만 한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리라. 그는 장황한 수사법과 여백 없이 A4 종이 백 장을 통렬한 비판으로 꽉 채울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환락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어때?"

"네가 잡아먹히면 되겠군."

"아니, 얼추 보였으니까 하는 말이지. 그때가 그렇게 인상 깊었어?"

"소리는 못 들었나 봐?"

"인형 속에서 뭐라고 웅얼거리긴 하던데."

"그럼 직접 확인해보면 되겠군.“

"이거 너무하네. 난 연약한데."

어벤츄린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레이시오의 뒷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가 인형 속에서 내뱉은 말을 전부 들었다는 사실은 함구하기로 결정한 것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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