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영] 그냥 보고 싶은 뭔가가 있어서 썼음 1

Backlog by 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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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 느껴지는 휘황찬란함에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대령, 거기 서서 뭐 해?”

다비드는 자신의 상관을 흘끔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면서 그의 옆으로 붙었다. 벌써 의욕이 없어 보이는 후배의 모습에 준장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다비드 영, 내가 말한 거 다시 읊어봐.”

“준장님… 저 마흔여섯입니다.”

“첫 번째.”

“…대놓고 싫은 티 내지 말 것.”

“두 번째.”

“무슨 말을 들어도 적당히 호응하고 넘어갈 것.”

“세 번째.”

“최대한 친절하게 굴 것… 아니, 그 늙은이는 정신이 나갔답니까?”

“인마, 우리랑 동년배야.”

“그럼 늙은 걸 늙었다고 하지 뭐라고 합니까.”

“네가 뭐라고 하든 그 양반 파워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쪽은 돈과 장비를 대고, 우리는 세상을 지키고, 서로 좋자고 하는 일에 왜 우리가 납작 엎드리냔 소립니다.”

“엎드리란 소리가 아니라 좋게 좋게 넘어가라는 거다. 너 수염은 왜 안 깎았어? 내가 좀 깎고 오라고 했잖아!”

두 사람은 시큐리티를 빠르게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들어가기 전에 신체검사와 소지품 검사는 필수였지만 두 사람은 아무 검사도 받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무기인 자들에게는 의미 없는 시간 낭비였다.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을 향해 빠르게 올라갔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 번쩍이는 도시의 야경에 눈을 돌릴 법도 하건만, 다비드는 엘리베이터 문에 흐릿하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만 노려보며 정복을 단정하게 매만졌다.

“최대한 늙어 보이고 싶어서요.”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서 번쩍이는 샹들리에의 불빛이 다비드의 눈을 찔렀다. 넓은 홀에 제각기 모여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엘리베이터에 집중되었다. 두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이 사람들의 시선을 적당히 무시하며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준장님, 대령님,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반쯤 희끗희끗하게 센 남자가 손을 내밀어 준장과 악수했다. 다비드 또한 그와 악수하며 딱딱하게 인사를 건넸다.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아뇨, 오히려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죠. 세상을 지켜주시는 분들 아닙니까. 다른 분들도 초대하고 싶었는데 안타깝습니다.”

“부대를 비우는 사람이 많을수록 방비가 약해지니까요.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하지만 대령님 혼자라면 큰 문제는 없겠죠?”

자신도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하려 했던 다비드는 입을 다물었다.

‘능구렁이 같은 놈 같으니라고…’

다비드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남자는 두 사람에게 칵테일을 한 잔씩 건네며 홀을 가로질렀다.

“마침 드 마티 씨와 얘기를 나누던 중입니다. 오시자마자 일 얘기를 꺼내서 송구하지만, 준장님도 함께 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드 마티 씨가요? 이탈리아로 귀국하신 줄 알았는데요.”

“네, 그럴 예정이었습니다만, 논의할 일이 있어 제가 귀국을 미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유는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아, 대령님은 여기 계시죠, 어제도 큰 전투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두 사람을 따라가던 다비드는 남자의 말에 멈칫했다.

“부대 관련된 얘기라면 듣겠습니다.”

“아뇨 아뇨, 파티까지 와서 일 얘기를 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대령님은 편하게 즐겨주세요. 준장님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진 않겠습니다.”

준장이 다비드에게 여기 있으라는 뜻으로 눈짓했다. 다비드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짧게 까딱했다.

“배려 감사합니다.”

“그럼 곧 돌아오겠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스카이라운지가 나옵니다. 이 시간의 야경은 절경이니 꼭 구경해보세요.”

두 사람이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다비드는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있을 요량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그는 군인다운 반사신경으로 한 여성이 그와 부딪히기 전에 빠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어머!”

“이런-”

다비드는 깜짝 놀란 여성이 누군지 알아보고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관의 첫 번째 당부는 어긴 셈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그,” 이제 막 성인이 된 듯한 여성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다비드는 그녀를 조용히 내려다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다비드 영입니다. 아버님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아, 아, 네, 절 아세요?”

“스튜어트 양도 이미 절 알고 계신 듯한데요.”

“아…”

여성은 당황한 듯 한참을 또 머뭇거리다가 다비드가 내민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이런 어린애한테 늙은이를 붙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안달했군. 아직 어리숙한 태도에 다비드는 속으로 조소했다. 가볍게 붙잡은 손을 끌어당겨 손등에 입을 맞추자 손이 움찔 떨리는 게 얇은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인사를 위한 예법이니 그렇게 당황하실 거 없습니다.”

“아… 죄송해요. 이런 큰 파티는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다비드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떠날 생각이었다만 이 어린 여성을 여기에 그냥 내버려두고 떠나는 것도 예가 아닌 것 같았다.

“…아버님 말씀이…”

다비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카이라운지에서 보는 야경이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아, 네… 맞아요.”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여성은 고민하면서 주위를 짧게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비드는 지극히 사무적인 얼굴로 여성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여성은 또다시 머뭇거리는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그의 팔에 가볍게 제 손을 얹었다. 여성은 알지 모르겠으나 주위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점차 그 둘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다비드는 점차 험악하게 굳어가는 얼굴을 간신히 무표정한 얼굴 뒤로 숨기며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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