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무를 위해

HAC

줄리엣 클락 7학년-성인 공백기 로그

트리거/소재 주의: 국가폭력 묘사, (현대 시점 미성년자 캐릭터의) 전투 및 부상, 사망의 암시(실제 사망 x), 세계관 내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 묘사, 기타 세계관 내 폭력적 요소

다만 평화를 바라는 이들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작고 신비로운 어느 세계를 무대로, 오랫동안 쌓인 원한을 바탕으로 또 싸움이 일어나니. 마법사의 피가 마법사의 손을 더럽힌다. 숙명적인 두 기사단의 전쟁이 영국 마법 세계의 안팎을 휩쓰는 동안 불운한 젊은이들이 태어나 살아간다. 죽음으로 끝을 맺는 가련한 사랑 이야기. 이것이 지금부터 상연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해설 변형

추방이요? 차라리 자비를 베풀어 사형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추방은 사형보다 더 끔찍해요. 제발 추방이란 말씀은 하지 마세요.

넌 베로나에서만 추방됐을 뿐이야. 참아라, 이 세상은 크고 넓으니까.

제게 베로나 성벽 밖엔 세상이 없어요!

신께서 너에게 자비를 베푸셨는데 넌 왜 그걸 보지 못하는 거냐.

이건 자비가 아니라 고문이에요. 저에게 천국은 바로 여기, 줄리엣이 사는 곳이라고요.

-<로미오와 줄리엣>, 3막 3장

저길 봐요. 동쪽에서 심술궃은 햇빛이 헤어짐의 구름을 하늘에 새기고 있잖아요. 밤의 촛불은 전부 다 타 버렸고, 아침 해가 안개 낀 산꼭대기에서 발돋움하고 있어요. 난 지금 여길 떠나 살거나, 여기 머물러 죽거나 해야만 해요.

-<로미오와 줄리엣>, 3막 4장

0. What is it but nightfall? No, no, not night, but death.

결론부터 말하자면,

“응, 별 건 아니고. 호그와트에서 문제가 생겼다나 봐. 그, 머글본 뭐였지, 아무튼 다 나라 밖으로 내보내는 새 정책이 올해부터였잖아? 어떤 혼혈 여학생이 졸업식 도중에… 아, 너도 그 소식 들었구나. 그러게, 별 일도 다 있지. 아니, 다친 사람은 없대, 그냥 복구하는 데 시간만 좀 걸린다나 봐-”

졸업장을 건네받고, 그것을 소지한 채 축하를 받으며 학교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졸업으로 정의한다면, 그녀는 졸업하지 않았다.

“그 학생은 어떻게 됐냐고? 말도 마, 성인 여럿이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는데, 글쎄, 대연회장에서 지팡이를 꺼내들고 미친 사람처럼 발악하더니 빗자루를 타고 도주했는데,“

졸업장은 받았으나, 학교 바깥으로 나가며 축하를 받지는 못했기에. 졸업은 사회적인 의례이고, 그녀는 사회의 정중하고 신사적인 면상에 (비유적인)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 지금부터 당신들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겠다 선언했기에.

“어쩌다 보니 검은 호수 위까지 추격전을 했나 봐. 우리 베니가, 이제 고작 2학년인데 그거 본다고 얼마나 놀랬는지. 아직까지도 진정을 못하고 있어, (글쎄, 하필 걔가 슬리데린 반장이었대… 요즘 호그와트는 반장을 대체 어떻게 뽑는 거니? 내년부터는 혹시 모르니 반장도 순혈 학생으로 뽑자고 건의해야겠어…) 어쨌든, 어떻게 됐냐고? 빗자루 들고 주문도 막 쏘니까 당연히 이쪽에서도 대응을 하고. 그래 봤자 얼마 안 걸렸지. 15분이었나? 그것도 안 됐을걸. 졸업식 끝날 때쯤에 이미 다 상황 종료됐다고 했으니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 학생은 죽었다나 봐. 마지막에 빗자루에 뭘 매달고 있었는데, 그 빗자루도 다 부서진 채로 호수로 50미터는 추락했대. 호그와트 교장까지 나서서 근처를 싹 뒤졌는데 시신도 뭣도 못 찾았고.

뭐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정책 첫 해부터 불길하게시리-

…유령이라니, 그런 끔찍한 소리 마라, 얘. 빅터는 진작 졸업해서 그 꼴 안 봐서 다행이지….“

1. 외모부터 늘 단정히

줄리엣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학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체구에 긴 땋은 머리의 여학생.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은 줄리엣이 지팡이를 빼들자 긴장하는 대신 한숨을 쉬었다. 손대지 말라는 차가운 경고도 어린아이의 투정일 뿐이었다. 그새 “작별 드레스”는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어 가슴팍에 녹색 방패 모양의 반장 뱃지가 달려 있었다. …우승컵까지는 볼 수 있을 줄 알았지. 올해에는 정말로 다시 우승할 자신이 있었는데. 신입생 애들도 태도도 바르고 성실했고….

줄리엣은 고개를 돌려 대연회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크고 환상적인 건물이 이 거리에서는 장난감처럼 보였다. 처음 입학한 해 방학식 날, 녹색의 휘장이 천장을 가득 채우고 펄럭거리던 풍경을 떠올렸다. 주위에서 귀청이 떨어질 것처럼 울리던 환호성과, 가슴속에 차오르던 (본디 그녀의 것이 아닌, 주제넘는,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는) 자긍심과.

2. 평범함을 추구한다.

올해 예술 클럽의 전시회도 늘 그렇듯 안뜰 복도에서 진행되었다. 많은 작품이 그곳에 걸리거나 비치되거나 연주되거나 시연되었고, 클럽에는 비순혈 학생도, 순혈 학생도, 저학년도, 고학년도 있었기에 “작별, 또는 이별”이라는 올해의 주제 또한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어떤 학생에게는 언젠가, 또는 곧 다가올 미래였고, 어떤 학생에게는 조금 찜찜하고 적당히 먼 이야기였다. 어떤 학생에게는 단짝 친구의 일이었고, 어떤 학생에게는 데면데면하던 룸메이트의 일이었다. 그 해 복도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다 떠났다.

3. 하지만 너무 평범해서도 안 된다.

물음을 받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냐고, 뭘 위해 승리하지 못할 싸움을 하냐고. 차라리 빠르고 우아하게 퇴장하는 것이 피차 좋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야말로 누구를 위해? 매년 같은 짓을 또 반복하고 반복할 영국 마법 사회를 위해? 친절하고 상냥하고 다정했으며 결국 최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땐 쫓겨나거나 쫓아내는 양편으로 절벽마냥 갈라섰고 동시에 내 심장을 반으로 갈라놓은 당신들을 위해…. 못해도 3년 전, 이르면 6년 전 이미 이곳을 돌아갈 곳으로 삼아 버린 나를 위해. 줄리엣은 최선을 다해 무장 해제 주문과, 마비 주문, 결박 주문, 기타 비살상적-하지만 진정으로 비폭력적이지는 않은-제압의 목적이 담긴 주문들을 피해 방향을 전환하고, 허공에서 구르고, 몇 번이나 떨어질 뻔했다. 자유롭게 내쉬는 숨 한 번 한 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호흡이 가빠왔다. 1학년 첫 비행 수업의 날보다도, 호그스미드에서 마법을 잃은 날보다도, 불과 며칠 전 순간이동 수업의 날보다도 더, 왜냐면 그때는 항상 혼자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혼자였으므로….

4. 가능한 많은 친구를 사귀고,

그러나 언제나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 또한 하나였다. 혼자가 아니라고 다짐하는 것. (결국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하는 달이었다.) 손에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지팡이를 고쳐쥐면 수많은 반지의 감촉이 느껴졌고, 심장 근처에는 목걸이와, 손목에는 팔찌와, 귓가에는 흔들리는 안경줄과. 수많은 작고 반짝이는 우정들이. (범죄자들은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하여 패물을 착용했다.)

줄리엣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단안경은 여직 은회색-공포, 불안-과 보라색-투지-을 번갈아 가며 번쩍였다. 그것을 붉은색으로 바꾸기 위해 시선과 심장에 분노를 한껏 담았다. 이렇게 하늘이 맑고 쾌청한데, 당신들은 우리의 슬픔과 절망과 분노와 종국에는 체념이(줄리엣은 그것이 가장 아팠다) 보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제 슬픔을 알아줄 자비의 신은 저 구름 속에도 없는 건가요…? 추적자들을 조금 빗긴, 아무도 없는 허공에 지팡이를 겨누고, 왜냐하면 애초에 그 분노는 어느 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외쳤다. 온 힘을 다해.

봄바르다.

즉시 분위기가 바뀌었다.

5. 무엇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다.

한편 아래쪽은 아수라장이었다. 줄리엣은 돌아갈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를 꿈꿨고, 불과 흙보다는 바람과 물을 좋아했으며, 늘 취미로 호그와트의 도면들을 찾아내고 베껴 그리며 때로는 직접 새로 그리기도 했다. 1학년 때 아주 특별한 친구와 한,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다. 언젠가, 우리가 졸업하기 전에는 슬리데린 기숙사를 깔끔하게 “환기”시키겠다고. 하지만 슬리데린은 결국 네 기숙사 중 하나였으니까, 줄리엣은 호그와트의 모든 물이 흐르는 통로들을, 가장 높은 탑에서부터 가장 낮은 지하실에서까지, 하나하나 찾아내 마법을 걸었다. 자신이 근처를 벗어나면 즉시 한번에 발동하도록. 가끔 호그와트의 영혼은 이상하게 작동하곤 했다. 그 안에는 천 년 전부터 어린 마법사들을 지키기 위한 마법만이 걸려 있었고, 그것은 아직 그 어린 마법사들의 혈통을 분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물줄기들은 줄리엣이 원한 대로 얌전히 가두어져 있던 벽과 바닥, 천장에서 탈출해 공기 중으로 세차게 뿜어져 나왔고, 그것들은 처음에는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렸다. 그것은 처음에는 이름들이었다. 이내는 작은 소망이 담긴 단어들이었고. 곧 문장이 되었다. 하나의 반복하는 문장.

6. 학생의 본분은 공부.

20번째 세기, 영국 제도에 한 여자가 살았다. 어느날 그녀는 별안간 달리는 말 앞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왕의 말이었고 그 자리는 아주 중요한 자리였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했고 정신증 환자라고 매도했으며 더러는 마녀라고 불렀다. 하지만 여자는 목숨이 위태로웠기에 사람들은 나뒹굴던 신문지로 여자의 피를 지혈했고 그녀를 병원으로 옮겼다. 나중에 그 여자의 가방 속에서는 보라색 깃발이 발견되었다. 제도에서 치마를 입은 절반은 그녀의 장례식에서 시위를 벌였고.

7.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식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줄리엣은 여전히 한 명의 아이일 뿐이었다. ‘영국령 머글본 강제 이주 법령’(줄리엣은 그것을 꿋꿋이 추방 정책이라고 불렀고 사람들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이 선고되었고 집행되기까지 1년. 어른들의 투쟁을 흉내내 친구들과 동료 관계를 맺고, 비밀 결사대에 가입하고, 예술로서 저항을 말하고, 그리곤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고 호그와트 복도와 연회장에 몰래 깃발을 걸고 탄원서의 양식을 어설프게 베껴 각종 정부 부처에 보내봤자 이곳은 마법 세계였고, 조금 다른 현실을 가진 아직은 근대보다는 중세에 가까운 곳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할 수 있는 전부를 그녀는 했으니까. 허공은 내가 갖게 된 이상만큼 높고 바람에 머리칼이 눈을 찔러 눈물이 나도 비행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당신들이어서 끝까지 외롭지는 않았으니까. 희박한 공기 속에서 흥얼거리는 노래 또한 당신들의 것이었으니까,

8. 편지 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느덧 해가 지고 달이 떠올라 하얗게 빛났다. 양 손과 무릎은 떨리고 주문은 비처럼 쏟아졌으며 줄리엣은 위를 향해 날았다.

누군가의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 빗자루는 조각나 부서지며 여기저기 불씨를 튀겼다. 허공에는 병동 부인이 없는데도…. 빗자루 뒤쪽에 성글게 묶었던 깃발이 길게 유성의 꼬리처럼 이어졌으며,

나의 사랑은 결국 신념을 위해 죽었고 우리는 같은 영혼의 상반된 반쪽이었기 때문에….

9. 언제나 출구를 파악한다.

그러니까, 단 한 사람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면.

쫓겨나느니 죽겠다고 외쳤고 실제로 그것을 실행했던 어떤 미친 퀴디치 선수 병자 예술가 잡종 슬리데린을 기억한다면.

두렵지 않아.

헛되지 않아.

사라지지 않아….

나는 우리는

여기에.

10. 사랑에 빠지지 말 것. 왜냐면,

그러니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줄리엣의 베로나여. 안녕, 안녕, 천 번이라도!

11. 이 세계는 마법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기적이 일어난다 누군가 그녀를 걱정했고 친애했고 사랑했으며 가족이라고 친구라고 불렀고 연락하자고 당부했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르는 대신 살라고 말했으니-)

*그림: 지인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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