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존재
저세계마왕님 룡뜰덕
펄럭, 망토가 크게 흩날리며 공룡의 시야를 방해하는 동시에 잠뜰의 몸이 공룡의 허리 틈 사이를 파고들었다.
“소중한 거라더니 이렇게 벗어던져도 되는거야?”
어이없어하며 웃는 목소리와 다르게 공룡의 몸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잠뜰의 공격을 피해낸다. 따악—, 나무 검집과 주먹이 맞 부딪히며 커다란 소음을 만들어내었다. 그럼에도 잠뜰은 아랑곳하지 않고, 표정하나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말 잘 듣는 아이라 괜찮아.”
오히려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는 잠뜰이다. 그러곤 이내 다시 공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던져졌던 망토가 채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마치 망토에 자아라도 있는 듯 다시 잠뜰의 몸 위에 자연스레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이것 보라는 듯 잠뜰이 턱을 까딱 움직였다. 물론 그것도 잠깐이고, 금방 다시 치고박는 싸움판이 펼쳐졌지만.
잠뜰의 주먹이 날라가고, 그걸 공룡이 피하는 모양새가 이어진다.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모르는 이가 봤을 때에는 작은 투닥임 같다 느껴질 정도였지만, 작은 사역마인 덕개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이 작은 빈 방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공포감을 자아냈다.
자신의 주인을 걱정하는 마음에 으으, 앓는 소리를 내지만 혹여나 자신이 끼어든 것에 대한 불만으로 곤란한 행동을 해버릴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주변만 서성이고있었다. 자신이 밥을 한다 우기거나, 청소나 집안일을 자신에게 다 떠넘기거나(물론 이 행동은 언제나의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굳이굳이 핑계거리를 만들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직접적으로 자신을 괴롭힐지도 모른다…
덕개가 이런 걱정을 하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싸움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자신의 주인은 자신보다 강해보이는 용사애게 도발까지 하는 모양새이니… 덕개는 그저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잘 보이지도 않는 움직임을 눈으로 쫒을 뿐이었다.
“제대로 덤벼보지 그래? 쥐새끼마냥 피하기만 할거냐?”
“덤빌 마음이 들어야 덤비지. 마왕이라면서, 이렇게 약해도 되는거야? 세계 정복 하겠다며.”
비아냥이 섞인 공룡의 말이 방아쇠가 되는 것 마냥 잠뜰이 벽을 즈려 밟고 온 몸을 내던지며 공룡에게 달려들었다. 벽에 잠뜰의 발 크기로 깊은 홈이 패이고 공룡이 그 모습을 보며 놀라기는 커녕 쯧, 혀를 찼다.
“얌전히좀 싸워라, 얌전히.”
다시 한 번 잠뜰의 주먹을 최소한의 몸짓으로 피한 공룡이 공중에 떠올라 무방비해진 잠뜰의 허리를 나무검 손잡이로 툭, 쳐냈다. 일순 정적이 흐르며 잠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룡의 행동은 분명 가벼운 몸집이었지만,
“자기 힘도 주체 못하면서 뭔놈의 세계정복을 하겠다고.”
아주 잠시간의 정적 후…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잠뜰의 몸이 나무바닥을 굴렀다. 자신의 눈 앞까지 굴러온 주인을 급하게 피하며 덕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아니, 자신이 피한 것에 대한……, 이건 비밀이었다. 주인이 안다면 분명 뭐라 할것이다. 분명. 덕개가 이런 고민을 하며 입을 급히 다물었지만 잠뜰은 덕개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가지고있지 않았으니 이걸 다행이라 해야하는 걸까.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밖에서 대련하던지 해야지. 방 안이 엉망이네. 아무리 안 쓰는 방이라 해도 말이야.”
공룡이 이곳저곳 부셔져버려 성치 않은 빈 방을 휙 둘러보며 옅게 인상을 찌푸렸다.
“집이 너무 큰 것도 문제라니까…”
으득, 적잖히 화가 난 모양인지 잠뜰이 이를 갈았다.
“야! 한 판 더 해!”
그런다 하더라도 뭐 어쩌랴
“됐네요, 오늘치는 끝났어. 오늘도 너가 갑자기 덤벼와서는. 제대로 싸우고 싶으면 시간과 장소를 지키라고.“
이미 잠뜰은 패배자가 되었고, 오늘치 싸움은 이곳에서 끝이었다. 그건 승리자인 공룡이 멋대로 정한 것이었지만 반박할 수 없다.
“…,”
잠뜰은 분한 듯 입술을 벌렸지만, ...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다물었다. 앞서 말했듯 반박할 수 없었다. 패배자가 무얼 할 수 있을까. 패배자는 다음을 기약하며 분노를 저축하고 이길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구상할 뿐이다.
분한 마음이 없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상당수의 힘을 잃어버렸다곤 하나 그녀는 마왕이었고, 한때 많은 악마들을 거느렸으며 이 세계를 지배할 정도의 힘을 가졌었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 애송이 용사에게 주먹이 제대로 닿지도 못하다니! 그것도 저 용사는 진심을 다해 제게 맡서지 않았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공룡이 평범한 인간보다 긴 삶을 살아왔대도 그것은 잠뜰에게 있어선 찰나의 시간일 뿐이었고 그렇기에 잠뜰이 공룡을 햇병아리로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어야 했는데...
"넌 싸울때 너무 앞 뒤 신경 안쓰고 싸우는 경향이 있어. 방금도 봐, 그렇게 온 몸을 내던지면 어떡해. 그것도 내 시야 범위 안에서. 사각을 노렸어야지."
지금은 이렇게 강의 아닌 강의를 받고 있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화가 나야 마땅한 일일 터인데, 이 신세가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잠뜰이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척,
퍽. 이번에는 몸을 빙글 돌려 발을 날렸지만, 나무검의 검집이 그 동작을 중간에 끊어버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삐끗 중심을 잃고 쓰러질려는 몸을 공룡이 대충 잡아 도로 세워뒀다.
"봐봐, 지금도. 싸울때 머리를 쓰라니까."
"...잔소리쟁이."
"...라고 해도 말이지, 일단 내가 너를 고용한 입장인데. 집안일은 다 하셨나요 청소부 씨?"
잠뜰이 입을 꾸욱 다물고, 공룡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돈 모은다면서."
"...그으게,"
"월금 삭감."
"...!!!!! 그런게 어디있어! 이 악덕 고용주!"
이게 이 세 사람의… 아니,
한 명의 용사와 한 명의 마왕. 그리고 하나의 사역마의 평범하나 평범하지 않은. 지루하나 지루하지 않은 일상이였다.
언젠가 세 존재가 흩어지는 날엔 이 세상이 멸망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마왕과 사역마가 자신들의 세계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아직 이 고민을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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