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Escape

어느 이름 없는 연구자의 이야기

대탈출 S2 Ep. 5~6 이름 없는 NPC의 이야기

※ 이 글은 tvN 예능 프로그램 <대탈출>의 스토리를 차용하여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인 2차 창작물로, 실제 설정과는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립니다.


1.

안녕하세요, 저는 희망연구소의 신입 연구원        입니다! 신입이라고는 해도 들어온 지 한 달 정도는 되었지만요! 먼저 희망연구소가 어떤 곳인지부터 소개해드릴게요.

희망연구소는 Partially Deceased Syndrome, 그러니까 PDS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인자를 가진 희망이를 연구하기 위해 세워진 연구소입니다. 아, PDS 바이러스는 풀어서 설명하자면 부분적 사망 증후군…. 더 쉽게 말하자면 좀비 바이러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세히 설명하려면 할 수 있지만, 너무 길어지는 건 아무래도 재미가 없겠죠. 공부하는 기분이잖아요, 안 그런가요? 좀비라고 하니까 영화에만 나올 것 같고, 저도 자료로만 봤지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실감이 잘 안 나기도 합니다. 아, 희망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야, 딴생각하지 말고 일이나 해.”

“어, 엇…. 네!”

아, 혼나버렸습니다. 앞으로는 딴 생각을 하더라도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해야겠어요. 그게 직장인의 노하우라는 거겠죠…. 저는 신입이다 보니 아직 노하우가 부족합니다. 아니, 이런 생각보다도 똑바로 일할 생각을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희망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제가 이곳에서 맡은 업무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PDS 바이러스와 그 면역 인자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고-저는 보조에 가깝지만요-, 다른 하나는 희망이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며 돌보는 것입니다. 사실 어느 쪽이든 제 전담 업무는 아니고, 특히나 첫 번째 경우에는 진전이 아주 크게 있지는 않은 상황이긴 합니다. 그래도 희망이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어요! 비록 그쪽 전공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대하니 희망이도 아주 조금은 마음을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희망이가 상어가족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아냈어요! 아직 어린 나이에 큰 트라우마를 겪어서인지, 말도 제대로 하지 않으려 하고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희망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그래도 요즘은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다.

“희망아~ 이거 먹어야지 건강해지지, 응? 이거 다 먹으면 상어가족 노래도 틀어줄게. 이것만 다 먹자?”

이것이 희망연구소의 일상입니다. 사실, 부모님을 좀비 사태로 잃고 본인만 살아남아 매일 같이 주사를 맞고, 채혈을 반복하는 희망이를 보면 아직도 마음이 쓰입니다. 저도 어릴 땐……. 아니, 사실은 지금도 주삿바늘을 무서워하는데, 어린 희망이는 얼마나 무서울까요? 차라리 희망이가 성인이었다면 이런 죄책감까지는 들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인류가 모두 좀비가 되어버리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요.


2.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생존자 구출 계획이 없다뇨!”

고함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뒤를 돌아 확인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금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요. 정부 입장에서도 이곳을 모조리 폭파하는 편이 낫겠죠. 간신히 물리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표정엔 침울함만이 가득했습니다. 아마 저 역시 그런 얼굴을 하고 있겠죠.

“……이대로는 안 돼.”

이병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보안 담당자와의 연락이 끊어진 후에, 한참을 휴대폰만 들여다보시다가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얼굴이 침통하면서도 결연해 보여서, 저는 어쩐지 슬퍼졌습니다.

“뭐가 안 돼요? 우린 이미 끝났어요. 정부 놈들이……. 정부 놈들이 우리를 다 죽일 거라잖아요. 기껏 살아남은 의미가 없잖아요!”

다른 연구원이 말했습니다. 이병실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그 말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선생님은 마른세수를 했습니다.

“……우리 힘으로 빠져나갈 방법은 없는 걸까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푸념이나 체념에 가까운 6마디에, 선생님의 표정이 돌연 변하더니 갑자기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습니다.

“지금 뭐 하시는…….”

“아직 방법이 있어.”

선생님이 확신 없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슬쩍 옆으로 다가가 노트를 훔쳐보았습니다.

-차, 고압전류 철조망,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 가능할까?

문장이 되지 못한 낱말들. 그것엔 확신도 자신도 없었지만, 아직 살길이 남아있다는 희망만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진심이세요? 저 철조망을 부수고 나가자고요? 좀비들은 어떡하고요!”

“이것밖엔 방법이 없잖아. 좀비들은… 어떻게든 유인해야지.”

그분의 눈빛엔 어떤 결심이 깃들어있었습니다. 살아남겠다는 다짐, 죽음을 각오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눈빛에, 저는 말을 잃었습니다.

“일단, 희망이를 구해야 해. ……마지막으로 확인된 장소는 격리실이었지?”

“네. 하지만 거기엔… 좀비들이 가득하잖아요.”

“그래, 그게 문제인데…….”

어떻게 해야 하지? 모두가 생각에 잠길 시간이었습니다.

……아니, 그래야 했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쓰러지지만 않았다면요.

“저, 정신 차리세요! 갑자기 무슨…….”

쓰러진 사람을 다른 사람이 부축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익숙한 그르렁대는 소리.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소리에 목 뒤가 서늘해졌습니다.

“다들 도망쳐!”

아수라장, 혼비백산, 아비규환. 그 어떤 단어를 붙여도 지금 상황에 가장 잘 맞고, 또 가장 어울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 단어가 어울리는 상황은 이곳밖에 없고, 이곳의 상황은 그 단어들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사람이 사람을, 아니, 좀비가 사람을 물었습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희망을 가졌던 눈에 초점이 사라졌고, 사냥이 벌어졌습니다. 좀비는 하나였지만, 아무도 이 상황을 대비하지 못했기에 순식간에 모두가 물렸습니다.

……가장 멀리 있던 저만 빼고.

“젠장, 너라도 도망쳐!”

연구원들이 좀비를 제압해 묶으며 소리쳤습니다. PDS 바이러스의 특성상 물린다 하여도 잠시는 이성을 유지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 하지만…….”

“됐고, 도망쳐서 희망이를 구해!”

이제 네가 인류의 희망이야.

그 말에 얼어붙었던 몸이 움직였습니다. 입에서는 피 맛이 났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뛰고, 뛰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대부분의 좀비들은 완전히 좀비가 되기 전 스스로를 결박한 경우가 많아서, 바깥에는 좀비가 거의 없었지만 제 뜀박질은 생존이 아닌 현실에서의 도피를 위함이었습니다.

뛰고, 뛰고, 또 뛰어서, 연구소에 들어왔습니다. 격리실에는 좀비가 가득합니다. 희망이를 구해야 합니다. 좀비들은 희망이를 공격하지 않겠지만… 만약 누군가 다른 사람이 희망이를 구하려고 한다면, 격리실에 희망이가 갇혀있다가는 끝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이를, 구해야 합니다.

격리실 밖에는 카메라 한 대가 있었습니다. 적외선 기능이 있었습니다. 이거라면 분명…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릴 뻔하다 생각을 떨치고 격리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머리가 새하얘져 몇 번이나 실패할 뻔했지만 열었습니다. 적외선 카메라로 주변을 둘러보고, 숨을 죽이고, 침대에 다가가서, 희망이 역시 조용히 안고 나와서…….

내가 할 수 있을까?

잡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해야 했습니다.

조용히 침대 쪽에 다가갔습니다. 숨조차 꾹 참은 채였습니다.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지만 살기 위해서는 숨을 참아야 했습니다. 희망이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제가 카메라를 쥐여주고 제 얼굴을 보게 하자 조금은 안심한 표정이었습니다. 희망이와의 관계가 진전된 것이 정말 다행이었죠.

조심히 희망이를 안고 나왔습니다. 가능하면 저 안쪽의 키도 가지고 나올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희망이만을 안고 나왔습니다. 살고 싶다, 살고 싶어요. 아직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주의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까요. 마지막 순간에 저는 좀비와 스치듯 부딪혔고, 그 좀비는 저를 공격했습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직 큰 소란은 아닙니다. 바로 희망이를 먼저 내보내고 좀비를 억지로 밀친 뒤 격리실의 문을 닫았습니다. 사람이 죽을 위기가 오면 평소에는 내지 못하는 힘을 낼 수 있다더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나도 곧 죽게 되겠지.

점차 몸에 힘이 빠집니다. 희망이를 안심시킵니다. 괜찮아, 희망아. 괜찮아…. 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어, 괜찮을 거야. 희망이에게 하는 말인지 저에게 하는 말인지는 저조차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희망아, 여기에 숨어있어야 해. 누군가가 구해주러 올 수도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응?”

저는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었습니다. 희망이는 잔뜩 울상이 되었습니다. 제 옷깃을 붙잡는 희망이의 손을 떼고 비틀거리며 식료품 창고를 나왔습니다. 이곳이라면… 적어도 한동안 굶어 죽지는 않겠죠. 그걸로 된 겁니다. 그걸로……. 그걸로 된 거겠죠?

식료품 창고의 문을 잠그고, 다시 걸어가서, 막사로 가서, 동료들과 함께.

이런 죽음이라도 괜찮을 지 모릅니다. 만약 죽는다면 생사를 함께한 동료들과 함께 죽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이걸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분명한 건, 생명이 끊어지는 것보다 이성만이 끊어지는 것이 훨씬 무서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동료들은 이미 대부분 이성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제 발소리가 들리자 짐승의 울음소리가 또 들려옵니다. 이제 곧 저에게서 나게 될 소리입니다. 동료들이 그랬듯이, 저 역시 스스로를 결박했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괜찮아야 합니다. 괜찮아야 하는데…….

무섭습니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인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

.

.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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