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인피니토] 연성 모음

당신을 위하여

1차 엔딩 / 디란x르엔

곡식창고 by 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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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제 지원은 내일 모레 쯤에야 도착한대요."

푸른 머리칼을 지닌 여자가 털썩,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그의 옆에는 다리를 감싸안은 채 앉은 어느 남자가 있었다.

"버틸만 하니 괜찮아요. 시간이 꽤 흘렀는데 가끔 손 떨리는 거 말고는 증상도 없고."

"제가 뒤로 물러나라고 했었잖아요."

"아이가 다칠 뻔했는 걸요."

"하여간 디란씨는 너무 섬세하고 배려깊은 게 탓이에요. 남 보느라고 본인 몸을 챙길 생각을 못하고… 그나마 다행이죠. 약한 독이니."

"아하하… 그러게요."

남자, 디란이 조금 웃으며 말했다. 아까 오전에 일을 수행하던 중 습격에 대항하다 중독된 그였다. 본래라면 제 몸 하나는 거뜬히 지킬 수 있으나 구조한 어린아이가 다칠까 신경을 쓰다 결국 저를 향한 공격을 보지 못하고 당하고 만 것이었다. 르엔은 못 말린다는 듯 웃더니 제 옆 남자의 손을 꼭 잡았다. 디란은 몸을 움찔하더니 르엔을 바라보았다. 맞잡은 손에서 주홍색 빛이 일렁였다.

"이렇게 하면 한결 편할 거에요. 해독제랑 원리가 비슷하거든요."

"네?"

"그러니까, 독이란 거, 일종의 마력이 응축된 거거든요. 그거랑 반대되는 성질의 마력을 흘려보내줘서 쫓아내는 거에요. 제 마력도 반대되는 성질이라."

"아하, 마력 전달을 할 줄 아시는 군요?"

"미약하지만요."

"…멋있어요. 그 쪽 계열 마법을 참 좋아하거든요. 자신의 마력을 전달을 한다는 거, 사람 하나를 살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어릴 때 형이 그런 마법을 쓸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어요. 전 노력해도 도저히 익힐 수가 없었기도 했고…"

"멋있기는요. 완벽한 게 아니라서 자의적으로 양 조절도 불가능하고 양이 적으면 고통을 줄일 수만 있지 치료는 안 되는 걸요."

르엔이 디란에게 살짝 기대며 팔짱을 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마력이 피어오른다.

"전 디란씨 고유 능력도 참 멋있던데. 그건 배운다고 익힐 수도 없잖아요."

"그, 그런가요…? 르엔씨 마법도 장점이 참 많은 걸요. 치료를 핑계로 이렇게 붙어있을 수 있는 부과 효과도 있고."

르엔이 디란의 말에 얼굴을 붉힌다. 디란도 저가 뱉어놓고 민망했는지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는 황급히 다음 말을 이어갔다.

"아, 아무튼 해독제 오기 전까지 늦추는 거지 회복은 안 된다는 거죠."

"뭐,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마력이 흘러들어가는 게 소량이니까 그런 거고 한 번에 많이 전달할 수 있으면 돼요.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는 곳일수록 효과가 커지니까… 시도는 안 해봤지만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해독제 기다릴 필요도 없고."

"가령 날개라던가."

"날개도 있지만 좀 부족하죠. 그보다 예민한 곳은 아무래도.."

르엔은 디란의 품에 파고들더니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디란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여 그를 한참이나 멍하니 보다가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왼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아. 아, 안 돼요."

"무슨 생각을 하셨길래?"

"그냥 해독제 기다릴게요. 우리, 만나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상하다, 전 뭐라고 말 안 했는데."

르엔이 디란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웃었다. 디란은 서둘러 르엔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그를 막아섰다.

"아무튼 안 돼요, 안 돼."

"그럼 오늘부터 만날래요?"

"그냥 해독제 기다린다니까요!"

디란이 르엔의 이마를 짚고 천천히 밀어냈다. 르엔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다. 이 곳은 그들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국가의 변두리. 전 세계적으로 전쟁이 일고 있는 지금, 그들은 민간인을 구조하기 위해 결성된 비영리 단체의 일원으로써 일하고 있었다. 전범은 원조 단체건 무장 단체건 상관없이 적대하였기에 위험 부담이 컸으나, 모두가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죽음을 각오한 채 일을 이어가고 있었다.

디란은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이 마무리되면 만나요. 그 땐 제가 진짜 호강시켜 줄테니까. 지금 만나는 건 너무 무책임한 도둑놈 같잖아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어, 그거 사망 플래그 아녜요?"

"무슨 끔찍한 말을 하는 거에요!!"

르엔은 쿡쿡 웃더니 디란의 품에서 빠져나와 어깨에 폭 기댄다. 주홍색 빛이 온 몸에 감돈다. 디란은 숨 쉬는 것이 더 편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다가 제게 기댄 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뭐, 그가 뱉은 것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 언제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바로 전쟁터니까. 이곳 임시 본부 역시 언제 피격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디란은 고개를 툭 떨구며 말했다.

"그럴 일 절대 없어요. 제가 무슨 일 있어도 저 자신도, 르엔씨도 지킬 거니까요."

자신이 지키지 못한 이들이 스쳐지나간다. 칼로, 소응, 키랄…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 문득 디란은 자신이 또다시 사랑하는 이가 생겨도 되는 걸까, 또 잃을까 두려워졌다. 칼로가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이런 감정이었을까, 디란은 그제야 제 형제가 저를 멀리한 이유를 조금 알 거 같았다. 아니, 사실은 모르겠다. 르엔은 생각에 빠지곤 침울해진 디란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참 나, 누가 누굴 지킨다는 거에요? 내가 훨씬 강한데."

"말이 그렇다는 거죠."

디란이 억지로 웃어보인다. 르엔은 그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잔뜩 헝클어트려 놓았다. 그렇게 또 타지에서의 밤이 지나갔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요."

"싫어요."

디란이 앞서 걸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다들 중상을 입었잖아요. 그렇다고 혼자 가는 건 위험하고. 2인 이상이 원칙이잖아요?”

“디란씨도 중상자잖아요!”

“이 정도는 중상도 아니에요. 어제 멀쩡한 거 확인 하셨으면서 왜 그리 걱정이 많아요. 뭐, 혹시라도 기절해버리면 르엔씨가 구해주세요.”

“그렇게 가볍게 말하지 말라고요.”

르엔이 뾰루퉁해진 채 웅얼거렸다. 둘은 지금 폐허가 된 어느 시골 마을로 향하는 중이었다. 한 차례의 폭격이 있었고 구조 활동이 진행된 뒤였으나 혹시 모를 남은 생존자가 있을지 몰라 확인을 위해 가는 것이었다. 현재 임시 본부에 남아있는 이들 중 가장 상태가 멀쩡한 게 둘이었다. 르엔은 디란도 휴식을 취할 것을 부탁했으나 디란은 듣지 않고 멋대로 따라 나섰다. 르엔은 한숨을 푹 쉬더니 디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진짜 전 몰라요.”

디란이 그를 내려다보며 씩 웃는다. 마침내 둘은 형체가 더 이상 남지 않은 마을에 다다랐다. 폭격이 지나간 지 벌써 사흘이 되었으나 아직도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전쟁이 너무 오래 계속되어 온 탓에 둘은 이 광경도 익숙할 지경이었다. 디란은 이것이 익숙해지는 것 역시 두려웠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르엔의 손을 잡고는 세게 쥐었다. 르엔은 그를 잠시 올려다보더니 손을 놓고 그나마 멀쩡한 집으로 뛰쳐들어갔다.

“일단 이쪽에 생존자는 없어요. 다른 구역으로 가보죠.”

르엔이 외쳤다. 디란은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다리가 굳어진 것처럼 제자리에 박혀 움직일 생각을 안 하더니 온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젠장.”

디란이 나지막히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이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온 몸에 전해졌다. 신경을 송곳 여럿이 헤집어 놓는 듯한 기분이다. 아침까진 잠잠하더니. 갑작스레 중독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무슨 경우냔 말이야. 디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외마디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고통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디란씨 괜찮아요?”

“네. 일 마저 보세요. 금방 갈게요.”

짐이 되는 것은 싫었다.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 판단한 디란은 숨을 규칙적으로 내뱉었다. 답을 하고 30초 쯤 지났을까. 고통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가 무릎을 털고 일어나려는 순간 빛이 번쩍하여 눈 앞이 아득해졌다. 무어라 소리치던 르엔의 목소리와 풀을 헤치는 바람 소리, 벌레 소리,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득한 빛이 사그라들고 디란이 가장 먼저 본 것은 푸른색과 연갈색의 깃털이 흩날리는 모습이었다. 그 다음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는 형상화 된 마력. 그리고 무어라 말을 하며 저 앞에 서 있는 르엔.

“르엔씨?”

그 모든 장면은 기껏해야 10초 만에 벌어진 것이었다. 디란은 다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람 탓에 귀가 따가웠다. 그리고 디란은 저기 앞에 르엔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쿨럭거리며 기침을 해댔다. 르엔은 부들거리며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 했으나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르엔씨?”

“정말 전부 죽이려고 마음 먹었나 봐요. 본부는 단순히 발견을 못 했던 건가…”

르엔이 제 날개를 꽉 쥐며 중얼거렸다. 디란은 후다닥 달려가 르엔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르엔씨.”

“아직까지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지는 몰랐네요. 오히려 폭격 직후에는 확인도 안 하더니. 아, 그 때는 방어 인력이 많아서 일부러 자원을 아낀 걸까요. 아니면 폭탄이 바닥에 깔려 있었던 걸지도. 너무 급해서 제대로 확인 못 했네요. 디란씨 근처에서 갑자기 폭발물이 튀어나온 것만 봤지…”

“르엔씨? 르엔..”

“괜찮아요. 갑작스러운 습격 때문에 급하게 마법을 펼쳐서 충격을 좀 많이 받았고… 그래서 마력 소모가 지나치게 많았을 뿐이에요. 조금만 누워있으면 금방 회복될 거에요.”

거짓. 거짓이다. 지금의 르엔에게는 생명 유지조차 버거운 마력밖에 남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몸의 일부가 부서진 것인지 마력이 한데 모이지 못하고 몸 밖으로 자꾸만 흩어져 나갔다. 너무 큰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탓이다. 게다가 저 혼자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두 명 분의 방어막이었으니, 그 충격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르엔은 직감했다. 이대로면 5분도 채 되지 않아 숨이 끊어질 것이라고.

“잠시만요. 르엔씨, 제가 지원 요청을 할게요. 우리가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으니, 10분이면 여기에 도착할 거에요. 아, 제, 제 마력이라도 흡수하시겠어요?”

“제가 주는 것만 할 수 있다니까요. 바보. 뭘 들은 거에요?”

“아아, 조금만, 조금만 버텨줘요. 잠시만요…”

디란은 달달 떨며 오른손은 제게 엎어져 있는 르엔의 등을 쓰다듬으며 왼손은 귓가에 가져다 댔다. 치익하는 신호음과 함께 통신이 연결되었다.

“디란입니다. 르엔씨가 큰 부상을 입어서 빠르게 지원ㅇ….”

이명이 들리며 통신이 끊어졌다. 디란은 제 볼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끈적한 액체가 그의 볼을 타고 흐른 탓이다. 디란은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검지와 중지가 붉게 물들어 있다. 독으로 인한 부작용인지, 아니면 아까의 폭발로 상처를 입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통이 클 것이 뻔하였지만 디란은 딱히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눈 앞에 저가 사랑하는 이가 힘들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그에게 더 큰 고통을 선사해주고 있는 탓이었다. 디란은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르엔씨. 위치는 확인이 되었을 거에요.”

“...피.”

“아,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르엔씨, 너무 큰 충격을 받았잖아요. 혼자 폭발을 막아내면 어떡해요. 준비되지 않은 채 펼치는 마법은 위험한데…”

“디란씨는 아까 죽을 뻔했거든요? 참 나, 제가 구해줬는데 감사 인사는 커녕 잔소리나 하고 있는 거에요?”

“르엔씨, 르엔씨는.”

“누워있으면 금방 괜찮아진다니까요. 회복 좀 하게 말 그만 시켜요.”

“르엔...”

다시 한 번 디란의 몸에 신경을 찢어내는 듯한 고통이 전해진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르엔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디란의 팔을 붙잡았다. 주홍색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디란은 숨 쉬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다시 정신을 차린 뒤에 상황을 목격하고는 르엔의 손을 내쳐버렸다.

“뭐하는 거에요 지금? 마력이 완전히 바닥나서 겨우겨우 숨을 쉬고 있으면서 뭐하는 거냐고요.”

“디란씨 제 판단이 잘못됐어요. 어제 증상만 보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디란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르엔이 다시 그에게 손을 가져다 대려 했으나 디란은 거칠게 손을 내쳤다.

“하지마요. 자기 회복부터 하란 말이에요.”

“해독제가 도착하려면 하루 더 있어야 하는데.”

독에도 잠복기가 있었나. 어제는 약간의 손떨림에서 멈췄건만, 지금은 아니다. 르엔의 눈에는 독이 온 몸에 빠른 속도로 퍼져가는 게 보였다. 르엔은 두려움에 몸이 오싹해졌다. 내가 죽어버리면 그는 누가 살리지? 나말고는 미약하게나마 치유가 가능한 이가 없어. 디란이 제 몸을 떨며 말했다.

“떨어져요.”

“디란씨, 진정해요. 어차피 이 정도로 사람 안 죽어요. 지금 저보다 급한 게 당신이에요.”

새빨간 거짓말. 르엔은 몇 분 뒤면 이곳을 떠날 운명이다. 어차피 그럴 운명이라면. 사랑하는 그가 확실히 살 수 있게 몸을 바치는 게 옳은 처사 아닌가. 르엔은 그리 판단하였다.

“해독제 기다리면 그만이에요.”

“안 돼요. 이대로면 그 때까지 못 버텨요. 빨리 이리 와요.”

“금방 일어날 수 있다면서요. 르엔씨가 회복한 뒤에 도와주시면 되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겠어요. 빨리요.”

"저는 괜찮…"

"저 못 믿어요? 제가 디란씨보다 훨씬 강한 거 알잖아요.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마력 조금 준다고 큰일 안 나요. 저 그 정도로 다친 거 아니에요."

르엔은 계속하여 디란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에 거짓을 더했다. 르엔의 표정이 너무나 다급해 보였기에, 디란은 마지못해 그에게로 몸을 숙였다. 르엔은 부들거리며 겨우 일어서 앉았다. 그 뒤 르엔은 디란의 뺨을 움켜 잡았다. 주홍색 빛이 일렁인다. 르엔은 자신의 마력이 훅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죽음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죽음의 공포에 몸이 떨렸으나 일을 마쳐야 했다. 다른 생명을 살린 의미있는 죽음이 될 것이다.

"르엔씨 손이 떨리잖아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르엔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디란의 얼굴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디란은 당황하여 르엔의 손목을 덥썩 잡더니 그를 밀어내려 하였다. 르엔은 뺨에서 손을 떼 상대의 목을 감싸안고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힘을 주었다. 10초도 채 안 되었을 때, 여자의 팔에 힘이 풀렸다.

"르엔씨?"

"저 멋있었어요?"

르엔이 헤, 하고 웃더니 앞으로 넘어졌다. 디란은 중독된 이후 계속되던 제 몸 구석에 이물질이 들어찬 듯한 느낌이 싹 사라진 걸 깨달았다. 그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제 무릎에서 잠에 빠진 여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정말이지 곱게도 잠들어 있었다.

"르엔씨."

디란이 르엔의 뺨을 쓰다듬는다. 그의 손에 물들어있던 피가 묻어난다. 디란은 제 귀에서 계속하여 액체가 흐르고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몸을 숙여 르엔을 품 가득히 껴안았다. 그렇게 지원이 오기 전까지 그는 잠에 든 이를 안은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일지>

xxxx년 9월 26일

사망 1, 부상 1

지난 구조 활동 이후 추가 생존자 확인 차 두 인원을 파견.

1차 구조 때 제거하지 못 한 폭발물로 인해 팀원 한 명이 사망.

작일 일지에 보고한 인원의 응급처치가 늦어져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왼쪽 귀의 신경 대부분이 파괴됨. 청력에 이상이 생길 것으로 예상. 사망 인원이 사망 이전에 행한 치유로 해당 부상자의 해독은 완료.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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