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걷히기 전에

프롤로그 1-카일

오두막 by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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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이웃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에서 우체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는 이 작디작은 자신의 고향이 마음에 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쬐는 햇빛은 그의 옅은 갈색 머리를 무성히 자란 갈대같이 보이게 해주었으며 그의 녹색 눈동자가 더욱 생기 넘치도록 만들었다.

소년의 하루는 이른 아침 누군가가 통에 넣어 놓은 서너 개 정도의 소포를 자전거 바구니에 양껏 담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부친 소포의 겉면에 우편물의 가치와 상응하는 양의 돈을 따로 붙여 놓았다. 포장지에 풀잎의 끈끈한 점액을 발라 그 위에 동전을 반쯤 붙이는 사람도 있었고, 지폐를 접어 봉투 안에 넣은 뒤 그 봉투를 포장지에 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지폐만 붙이면 떼어낼 때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들의 각기 다른 포장 방식을 좋아했다. 지폐가 담겨있던 조그만 봉투들은 따로 잘 펴서 모아두기도 했다. 사실 대개는 그저 정해진 값을 치르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에겐 그것들이 자신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성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평소같이 우편물을 다 전달하고 아침과 점심에 먹을 빵까지 산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타리 위에서 한 새를 보게 된다.

새는 푸른 깃털로 뒤덮인 날개를 몸통에 붙인 채 호박과 같은 노란 눈빛으로 고고히 소년을 쳐다보았다. 새의 머리 위에는 서너 개의 깃이 옅은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소년을 그를 꿰뚫어 볼 듯한 새에게서 시선을 돌려 그 밑의 커다란 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알에는 구불거리는 파도를 닮은 푸른 무늬가 연속적으로 있었는데 바라보면 볼수록 사람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듯했다. 소년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짧게 흔들곤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자 새의 다리에 묶인 종이 한 장이 보였다. 소년은 조심히 팔을 뻗어 종이를 풀어내었다. 돌돌 말린 종이를 펼치자 정갈한 글씨체의 짧은 쪽지가 보였다.

 

마을의 어린 우체부에게

이 알을 숲의 마법사에게 가져다주길 바랍니다. 부디 조심히 다뤄주세요.

추신_쪽지는 버리지 마시고 마법사에게 알과 함께 주시면 됩니다.

 

숲의 마법사라···. 마을의 어른들에게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약 8년 전, 마을 밖 어딘가로부터 온갖 새들이 날아오더니 마을 깊숙한 곳에 있는 숲으로 향했다. 그리곤 떼를 지어 숲속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다시 숲을 빠져나와 제각기 흩어졌다. 숲은 그전까지 누가 됐든 제 안에 들어오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소동은 조용하기 그지없는 마을에 얼마 없는 커다란 이야깃거리였지만, 그뿐이었다. 마법사는 숲에 자리를 잡은 후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었고 숲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어른들은 카일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숲의 위험성에 대해 당부했다. 숲에 들어간 사람 중 살아 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특히 너 같은 어린아이는 숲의 입구에만 발을 들여놓아도 금방 끌려가 버릴 것이라고. 카일은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결코 숲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그들을 안심시켰지만, 사실 그는 떠도는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에게 숲은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일 뿐,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기회를 봐서 몰래 들어가 볼 생각도 가끔 하곤 했다. 그런데 마침 지금, 넘치는 모험심을 충족시켜줄 절호의 기회가 제 발로 들어온 것이다. 카일은 항상 궁금했다. 저 숲 안에는, 그리고 그것을 넘어 이 마을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른들은 그가 어리다는 이유로 당최 마을 밖에 내보내 주질 않았다. 그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다짐하며 손안의 쪽지를 꼭 쥐었다. 굳센 눈빛과 함께 고개를 위로 쳐들자 새는 그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카일은 잠시 의아해하면서도 곧 알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꽤 크다. 잠시 양팔로 들 수는 있겠지만 팔이 아파 오래는 못할 터였다.

‘이걸 어떻게 옮긴다···.’

“아!” 그는 뭔가 생각난 듯 눈을 빛내며 집 바로 옆에 붙어있는 조그만 잡동사니 더미로 향했다. 몇 번의 소음이 사그라들자 먼지로 뒤덮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뭉친 먼지를 수차례 털어내니 제법 낡긴 했지만 아직은 쓸 만해 보이는 수레가 나왔다.

“흠.” 소년은 검지와 엄지로 턱을 문지르다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리고 집 문을 박차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우당탕 소리와 함께 노란 담요를 품 안에 안은 채 걸어 나왔다.

빈 곳이 없도록 담요를 수레에 펼쳐 두르고 알을 그 위에 얹어놓자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가 갖춰졌다.

“좋아!” 카일은 힘차게 외쳤다. 집 뒤편을 돌아보자 녹음으로 우거진 숲이 희미하게 일렁였다. 쪽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수레 손잡이를 잡았다. 이제 저곳으로 향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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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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