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고기가 아니고 어디로 가든 말라죽지 않는다면

쥘 린드버그가 세실 브라이언트에게, 1학년 학생 기간

짧은 하루들, 오 세스티오여

우리가 긴 희망을 품지 못하게 하소서.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우리는,

주림을 모른다. (주려볼 필요가 없다.) 우리의 손으로 밥을 짓지 않아도 된다. (밥을 짓는 법을 모른다.) 돈을 벌 필요도 없다. (돈을 벌 길이 없다.) 집 안에서 안전하다. (우리의 것이 아닌 집 안에서.) 보호받는다. (보호를 요한다.) 스스로를 이름짓지 않아도 된다. (또한, 이름은 부여받는 것이다. 타인. 부모. 결정권자.) 나의 형태를 정의할 필요도 없다. (이것 역시.)

우리는 어리다. 아이의 슬픔은 과소평가되고 행복은 과대평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정말 행복하지 않나요. 집 바깥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창틀은 바람에 덜컹거리는데 벽난로 앞이 덥다고 투정부리는 건 배부른 짓이죠. 백지나 다름없는 저라도 제 역할은 알고 있어요. 주어진 보호와 행운에 감사할 것. 행복한데, 누가 봐도 부족한 것이 없고…… 나 역시 불만이 없는데. 자리를 벗어날 용기가 없고 동기는 더더욱 부족한 이 상황에 구태여 내 삶의 빠진 퍼즐 조각을 더듬어 찾는 건 기만이 아닐까.

결여가 결핍된 삶에 대한 시위. 내 삶을 장식할 마지막 요소로 거짓 슬픔을 찾아 헤매는.

세실 브라이언트, 당신은 브라이언트죠. 들어본 적 있어요. 제아무리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는 저라도 누님들을 따라 찾았던 마법 용품점은 기억해요. 아주 크고, 아주 반짝거렸어요. 가게의 주인은 틀림없이 부유할 거라고 하더군요. 당신도 부족한 게 없었죠? 어리고 풍족하고 조금은 운 좋은 편이라 슬픔의 뒤에는 언제나 자기 의심이 따라붙고…….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 치부하게 되던가요.

브라이언트의 첫째와 린드버그의 막내라. 꽤나 흡사한 삶의 형태였을 것 같지 않나요? (우리의 삶에 슬픔이 부족했던 건 맞잖아요. 우리는 연못 안에 몸을 담근 채로 말라죽는 건 어떤 기분일지 논하고 있어요. 삶을 의심하고 경계하고 질투하던 친구들은 이 대화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종종 궁금해.)

지금보다 어릴 때 무지개를 좇아 달려본 적이 있어요. 하늘에 드리운 색색의 고리가 숲으로 쏟아지는 게 보였고,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저는 한참을 뛰었어요. 하지만 무지개가 숲에 닿는 지점은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집으로 돌아가자 부모님이 물었어요. 내일도 무지개를 좇을 거냐고. 있잖아요, 이건 비밀인데. 저는 언제나 부모님께서 가장 마음에 들어할 답이 뭔지 알아맞힐 수 있어요.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일까…….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어차피 무지개는 잡을 수 없는 거잖아요, 이쯤 해봤으니 됐어요.” 그랬더니 기뻐하더라고요.

부모님께선 언제나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바라시니까, 환상의 꼬리를 좇아 달리는 걸 그토록 싫어하시나봐요.

쥘 딜루티 린드버그는 린드버그의 셋째로서 존재해요. 나는 내 누님들의 동생이에요. 내 어머니가 다정하게 어르던 품이자 아버지가 내민 엄숙한 교훈이기도 하죠.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총체예요. 아직 배냇짓 하던 시절에 입에 물려주던 이유식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한 것, 내가 읽은 책, 염려라곤 없이 안락한 침대 속에서 잠들던 밤, 내가 쓴 글과 내가 들은 소리. 내 우정, 내 기쁨, 나의 과거와 현재죠. 하지만 나의 삶이라는 길고 단조롭고 현재 진행형인 소설 속에서 허락되지 않는 게 딱 한 가지 있어요. 내 손으로 나를 정의하는 것.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브라이언트의 자식이 아닌 당신은 누군가요?

그 사람으로 살 용기가 있어요?

끼니와 옷과 사랑을 충실하게 제공받았으면서, 부모님을 실망시킬 권리를 주장할 셈인가요?

누군가는 단 한 번도 손에 쥐어보지 못하는 삶이에요. 만족하는지, 만족하지 않는지. 이 안락함이 과연 내가 원한 것인지 판단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요? 불안해해도 되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꿀과 우유 향기가 나는 이곳을 떠나서, 길이라곤 없는 황량한 사막으로 나아갈 거라면……. 우리가 물고기가 아니고, 어디로 가도 말라죽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당신의 손을 잡는다. 조심스러운 한편 떨리는 미소.)

무지개가 숲에 닿는 지점을 향해 뛰어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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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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