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 나의 신이시여

초반 풋풋한 느낌 보고 싶어서

* 고려 후기지만 고증 거의 없음, 역사날조는 있음.

* 시기는 一. 푸른 불꽃 신과 죽어가던 인간

청아한 소리가 허공에 울리면, 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옥팔찌가 손목에서 짤랑거리며 내는 우아한 신호였다. 푸르른 하늘에서 그보다 더 새파란 불꽃이 날고 있다. 빛깔 고운 비취보다 고상하고, 드높은 하늘보다 기품 있다.

하늘에서 신이 내려온다.

불꽃에는 무게가 없기에, 한 발로 하는 착지가 가뿐하다.

그가 제사상에 걸터앉아 고기부터 한 점 가져간다. 고기를 씹자마자 본인이 가져온 술을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얼굴에 싱글벙글 미소가 어리는 것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호가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번 황산에서 왜구들을 크게 쓸어버리긴 했으나, 그걸로 끝이라곤 할 수 없다. 아직 남은 벌레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며 발악하는 중이었다.

수장을 잃은 어중이떠중이들이라고 무시했다가 이번엔 피를 봤다. 호가 수도로 돌아가 공을 세운 보상을 받고 조정의 무인들과 인맥을 만드는 동안 동료 병사들은 아주 박살이 났다.

금의환향을 오래 즐기지도 못하고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다. 지난번 활약한 것처럼 이번에도 무언가 해내야만 했다. 각오한 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모두 패색이 짙은 전장의 분위기를 단번에 뒤집은 호의 무력을 칭찬했다. 당당히 나서 이성계 장군이 적장의 목을 벨 틈을 벌어줄 용맹을 칭송했다. 진심 어린 찬사를 건네는 이도 있었고, 앞으로 출세할 젊은 무인에게 입바른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호는 모든 답을 겸손으로 갈음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고,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어린 무인의 겸손은 효와 충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기껍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말은 절대 일부러 자신을 낮춘 말이 아니었으며 그저 진심이었다.

정말로 운이 좋았을 뿐이다.

“크으! 맛 좋다.”

황산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너, 이거 차리려고 돈 좀 썼겠는데?”

그의 신이었다.

신이 내려준 기이한 능력이 아니었더라면 다시 전장에 뛰어들지 못했을 터였다. 위협적인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적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지도 못했겠지. 굳은 적들을 물어뜯으며 날뛰는 일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그러나 사람들은 같은 일을 호에게 기대할 테고, 신의 은혜가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닙니다.”

호가 꼿꼿하게 서 대답했다. 제사상에서 뛰어내린 청연이 호에게 성큼성큼 걸어온다. 바른 자세로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 떨렸다. 거대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벌써 몇 번째 신의 강림을 접하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않는다. 강렬한 열기에 정신이 흐릿해진다.

“소를 다 잡아놓고? 끽해야 돼지일 줄 알았더니.”

“권위에 맞는 대접을 해드릴 뿐입니다.”

청연이 웃었다.

“그런데 몸은 못 바치고?”

뜨거운 손가락이 가슴팍을 찌른다. 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바르게 잡고 있던 뒷짐 진 손은 엉망으로 흩어져 등 뒤에서 바르르 떨리고 있을 뿐이다.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흔쾌히 내뱉어야만 하는 대답이 목구멍에 눌어붙어 있다. 말해야 하는데 그만 대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뺨이 뜨거워진다. 체온이 오른다. 열기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하하!”

쾌활한 웃음소리.

듣기 좋은 음성이 이성을 깨운다. 신이 퍽 재밌다는 표정으로 호를 바라보았다.

“농이다. 이럴 때마다 매번 숫총각처럼 구니 자꾸 건드려 보고 싶은 건 아느냐?”

“죄송, 합니다.”

“용서하마.”

호는 안심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니 나도 보답해야겠지.”

“그럼…….”

청연의 몸이 사뿐히 떠오른다. 가볍게 날아오른 불꽃이 호에게 가까워진다. 푸른 불꽃으로 이루어진 것이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손이 호의 양 뺨을 감싼다. 거대한 존재감에 비해 훨씬 자그마한 손이다.

“이번에도 네 뒤에는 내가 있을 것이니.”

데일 것처럼 뜨거운 입술이 이마에 내려앉았다. 동시에 부드러운 감촉과는 전혀 다른 열렬한 기운이 몸 안을 휘저었다. 호의 숨이 가빠진다.

“마음껏 날뛰고 와라.”

가늘어진 시야로 아름답게 웃는 신의 모습이 보였다.

“내게 승리를 가져 와.”

예, 나의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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