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 왕국의 공주는 아버지를 선

일처다부제 왕국의 공주는 아버지를 선택한다-1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가 하나 생겼다.

웹소설 by 도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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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결혼의 형태에는 나름의 결함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결혼에는 다른 것들보다 더 크고 복잡한 결함이 있기 마련이다.

보름 전 편지 한 장을 받은 네 명의 왕들은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편지는 장기 원정으로 자리를 비운 왕들의 부인으로부터의 온 것이었는데, 성을 폭풍이 오기 전 벌집처럼 술렁이게 만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가 하나 생겼다.

아니, 사실 생긴지는 꽤 되었다만.

언제였더라, 아주 오랫동안 전쟁에 나갔던 때가 있었지.

집을 떠나고 여덟 개월 지나니 산통이 오더구나.

다행히 중립국 사람들이 사는 작은 마을을 만났기에,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도무지 갓난쟁이를 데리고서는 여정을 마무리할 수 없었어.

때문에 아이를 마을에 맡겼단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는 길에 데려 가겠다고 전하며, 신하 한 명과 돈 한 보따리도 남겨두었지.

그런데 내 정신머리를 너희도 알지 않니.]

-이 대목에서 편지를 읽던 '큰 왕'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까먹었다.

완전히 까먹었다.

남겨두었던 신하가 내게 언제 올 거냐고 서신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글쎄, 놈이 돈을 들고 튄 게 아니겠니!

아이가 홍역에 심하게 걸려 죽을뻔 했었는데, 그걸 본인 책임으로 돌릴 것이 무서웠다나 뭐라나.

세상에,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그럴까. 참 안타깝구나. 나처럼 자애로운 지도자가 어디 있다고.

일단 그 녀석은 참수 해두었다.

사신을 시켜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도록 했으니, 내가 복궁할 때까지 잘 돌봐주렴.

자세한 이야기는 아이와 함께 새로 적어 보내마.

이만 총총.]

편지를 받은 궁 내는 아주 혼란스러웠다.

대체 무슨 일이람. 갑자기 이름도 모르는 새로운 객식구가 생기다니. 편지 내용은 이게 다야? 몇 장 빼먹으신 것은 아닐까. 아니, 폐하라면 이게 다겠지.

사람들은 다가올 새 가족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다. 정확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뭔가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는 분위기만은 가득했다.

***

사람들의 혼란과는 관계없이 시간은 흘렀으며, 약속된 날짜는 쏜살같이 다가왔다.

그렇게 오늘 아침, 어린 아이 한 명과 새로운 편지 한 장이 도착했다. 성의 주인을 쏙 빼닮은 아이였다.

지나치게 쏙 빼닮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얼굴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10년 하고 여덟 개월 전에, 누가 합궁했는지 기억하나?"

"하겠냐."

둥근 방을 채운 둥근 탁상. 탁상의 주위에는 커다란 의자가 빙 둘러져 늘어서 있다.

단 하나의 의자만이 조금 낮고 작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의자 한가운데 앉아있는 작은 아이에게는 꽤나 높아보였다.

커다란 의자는 대부분 비어있었으며, 두 왕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하나는 화려한 장신구를 한 남자, 다른 하나는 뼈대가 굵고 목소리 통이 큰 남자였다.

두 왕은 어색하게 거리를 두고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떼었다 하고 있었다.

"으음, 나인가. 뒷통수가 나를 닮았는데. 합궁 빈도는 내가 가장 높으니까, 확률적으로도 그렇지."

"그래라."

"눈매는 '바위왕'을 닮았고, 머리색은 '큰 왕'을 닮았네. 너랑은 별로 닮은 구석이 없어."

남자는 상대방의 이죽거림에 대꾸하지 않고, 큰 몸을 일으켜 세워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디 가?"

"어린애를 언제까지 저렇게 기다리게 하는 건가."

목소리 큰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는 성난 표정으로 상 끝에 앉아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는데, 표정과 달리 그 발걸음은 굉장히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조심해, 걔가 너보다 높은 분이 될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생각이 있는 건가."

남자는 상대의 말을 듣지 못한 척 하며 아이의 겨드랑이 밑에 손을 넣고 번쩍 들었다.

"팔걸이도 없는 높은 의자에 앉히면 위험하잖아!"

커다란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는 본래 목소리 큰 왕이 앉아있던 거대한 의자로 옮겨졌다.

자기 엉덩이가 네 짝은 들어갈 커다란 의자 쿠션에, 소녀는 푹 꺼지듯이 파묻혀 허리가 반쯤 접혀버렸다.

"훨씬 낫군. 네 의자는 내가 쓰마, 꼬마야. 나는 발이 바닥에 닿으니까 떨어져도 다치지 않아."

"큰 의자 빈 거 많은데 거기 앉아."

"큰 의자들은 주인이 있잖아. 주인의 허락 없이 물건을 쓰면 안된다!"

두 젊은 왕은 의미 없는 논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어린 아이는 -매우 당연하게도- 불편한 얼굴을 하며 허벅지를 끌어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순간, 두 남자의 의미 없는 다툼은 잠시 멈췄다.

방의 중앙을 가르는 커다란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낮은 경첩 소리를 내며, 아주 천천히.

이 방의 문은 가마를 탄 사람도 내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된 매우 높은 녀석이었다. 문 한 편에는 석류 나무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가장 큰 조각은 실제 정원에서 기르고 있는 스무 살 먹은 석류나무와 똑같은 크기로 조각 되었을 정도였다.

그런 문을 평범한 크기로 보이게 할 정도로, 새로이 들어온 남자는 매우 키가 크고 등이 빳빳했다.

"업무가 있어 늦었다."

"그러게, 늦었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키 큰 왕은 제 손바닥만한 아동 의자에 간신히 걸쳐앉은 남자를 보며 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앉아있지는 않았다. 완전히 앉으면 의자 다리가 부서질 것이 무서운지, '천둥왕'은 앉는 자세만 취한 채 허벅지와 무릎의 힘으로 서있었다.

"광대야, 저게 지금 뭐하는 거지."

"묻지 마세요."

"그래..."

'큰 왕'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춘 듯이 한숨을 내쉬고 제 자리에 앉았다. 중앙 바로 옆에 놓여진, 두 번째로 큰 의자였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늙은 시종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폐하로부터의 서신이 준비되었습니다."

"음."

"읽겠습니다."

자리를 비운 주인의 서신을, 노인은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세 왕들은 서로의 불안한 눈길을 못 본 채 하며 방 안의 긴장감을 애써 무시했다. 저 얇은 편지지 속에 모두가 기다려오던 발표가, 그들 중 한 명을 권력의 정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시가 담겨 있었다.

편지는 짧았다. 시종이 대필했을 법한 의례적인 인삿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고대하던 본론이 시작되었다.

[...이 편지와 함께 내 딸이 도착했겠구나. 이름이 뭐더라. 대충 아이라고 부르렴. 아이니까. 올해 열 살이던가, 열 여덟이던가, 서른 살이던가... 대충 그 정도 먹었을 거다.]

"서른 살은 당연히 아니지..."

"음, 훌륭한 추리다. 그 해에는 분명 장기 원정이 없었으니까."

늙은 시종은 두 젊은 왕을 잠시 쏘아보다가 다시금 글을 읽어 내렸다.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궁금하겠구나.]

높은 천장을 타고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아이는...]

방실거리고 있던 광대왕조차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만이 방긋 올라가 있는 채였는데, 그는 십사 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다리미에 머리를 얻어맞았던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입꼬리를 늘어뜨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름 최고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봐야 할 터였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엉거주춤 서있는 천둥왕도, 실수로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입을 앙 다물고 집중했다.

유일하게 표정이 변하지 않은 것은 큰 왕. 그러나 눈썰미 좋은 몇몇 시종들은 그의 새끼 손가락이 조급하게 탁 탁 부딪히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누구 앤지 까먹었다. 미안. 그렇지만 아마 넷 중 하나가 아빠인 건 맞으니까 걱정은 말고.]

"또야!"

누군가가 상을 쾅 내려치며 외쳤다.

늙은 시종은 반사적으로 천둥왕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목소리 큰 남자는 다물린 입으로 깜짝 놀라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큰 왕이었다.

"...결례를 범했다."

"계속 읽겠습니다."

큰 왕은 민망한 듯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시종은 안경을 고쳐 올리고 다시금 천천히 글을 읊었다.

[...뭐, 돌아갈 때 쯤이면 생각나지 않을까.

생각 안 나면 그냥 애가 친한 녀석을 아빠 시켜주면 되겠지, 뭘.

그 때까지 잘 부탁하마.

이만 총총.]

"..."

"..."

"...그게 다인가?"

나이든 신하는 거기 뭔가 있기라도 할 듯, 한 장 짜리 편지의 뒤를 팔랑팔랑 뒤집어 보았다. 그러나 얇은 종이 한 장을 뒤집어 살핀다고 없는 글이 튀어나올 일은 없었다.

"그게 다입니다."

"부인 언제 온데?"

"언급은 따로 없었습니다. 아마 최소 한 해는 걸리겠지요."

늙은 시종은 담담히 말했다. 세 왕은 잠시 침묵하며 어린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어느 새인가 커다란 의자 바닥에 몸을 파묻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오늘부로 왕궁 역사 상 가장 조용한 전쟁의 막이 올랐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싸움의 심판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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