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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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연습량에 파묻혔던 나의 어린 시절, 함께 해주었던 이스루기 후타바에게 감사를ㅡ. 명가 당주의 후계자는 기억이 시작되는 나이부터 제 인생이 힘들었다는 걸 알았다. 인사를 제대로 못한다며 맞은 기억, 춤을 추다 부채를 떨어뜨려 쏟아지는 한숨을 받은 기억, 평가의 눈빛, 텅 비어있는 칭찬, 필사적으로 외워야만 했던 수많은 이름들. 그 모든
너와 함께 있으면서 행복한 날들이 많다지만 그렇다고 악몽을 꾸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즐거웠던 꿈속에서 너는, 아주 가끔 날 등지거나 세상을 떠났다. 그런 소식이 들려올 뿐이었다. 네가 나오지 않는 몽계夢界에 나 홀로 무의 세계에서 떠돌다 눈을 뜨면 옷이며 침대보가 축축했다. 오토바이에 타기도 전부터 몸을 기대오는 너에게 어제는 꽂아주지 않았던 빨대
징그러운 더위였다. 불어오는 바람조차 푹푹 쪘다. 사요는 늘 그렇듯이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하기 위해 채비를 끝마친 후였다. 어제의 더위를 기억하고서 기타 케이스의 끈을 단단히 거머쥔다.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문은 채 다 열리지 못했다. 고작 조금 바깥을 보았을 뿐인데도 틈 사이로 그를 잡아먹을 듯 거칠게 쳐들어오는 열기에 지레 겁먹은 것
언젠가의 연습날. 히나가 갑자기 쓰러졌었다고 한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지만 파스파레 멤버 전부가 불안한 마음에 사요에게 연락을 했다. 히나가 쓰러져 오늘은 일단 집으로 보냈노라고. 로젤리아의 연습은 곧바로 중지되었고 사요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히나는 사요를 기다렸다는 듯 아침과 같은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언니.
사요는 철컹이는 기차 안에서 맞닿아있는 손의 온기를 느낀다. 같이 가는 이 시간조차 아깝다며 조용하게 재잘대던 히나는 어느 순간 잠들어 있었다. 창가로 기울어진 히나의 고개 위로 쏟아지는 햇빛에 사요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블라인드를 내렸고 혹여 그가 깼을까 얼굴을 살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자는 중에도 히나 쪽에서 잡아온 손은 떨어지지 않는다. 사요는
너와는 질기고 질긴 악연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피를 나눴다는 이유로 널 떼어내지 못 한다는 것이 끝없이 비참하다. 너는 그 특유의 성격과 천재성으로 예전부터 나를 상처 입혔고, 네 주변을 괴롭혔다. 허나, 그건 네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발언이 다른 누군가에겐 심장에 강하게 내리꽂히는 화살이 된다는 걸 알지 못 하는, 무
변덕스런 날씨였다. 우산을 썼었고, 그 다음 날은 송골송골 솟아오르는 땀에 기분이 나빴고, 어제는 바람에 날아갈 뻔 했고, 오늘은 콧등에 작은 눈송이를 맞았다. 모카는 콧잔등에 앉아 시야 한 곳을 하얗게 가린 것을 고개를 내저어 털어냈다. 후드점퍼의 주머니에 깊게 쑤셔 박은 손을 빼지 않고 옷 째로 올려 흐트러진 후드를 정리한다. 흔들린 시야에 눈을 몇 번
해가 하늘 가운데 뜨자마자 한 차례 비를 쏟아낸 후의 밤은 여름이라고 하기엔 쌀쌀한 기온이었다. 드러난 맨팔에 닿는 바람도 차가워서 손바닥으로 팔을 쓸어내려 냉기를 연신 털어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등 뒤에 멘 기타가 평소보다도 더욱 묵직해지는 것만 같다. 타인의 속도보다도 조금 빠른 발걸음이 점점 늦춰지고 끝내는 일시적으로 멈추기까지 했다. 누군가, 무엇
“그 날 밤 말이야.” 소파의 중앙에서 대본을 읽고 있던 치사토가 돌연 운을 떼었다. 카오루는 한 뼘 정도 떨어져 앉아있었고 치사토는 고개는 그대로 둔 채 눈만을 굴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말의 뒤를 재촉하는 듯한 눈빛으로. 카오루는 이 뜻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소파 위 거리를 좁혀 치사토의 옆으로 가까이 붙는다. 그래, 다음 대사는. “그 날 밤?” “
기숙사에 호랑이가 들어왔다. 정확히는 기숙사 앞뜰에. 바구니를 든 쥰나가 빨래를 널기 위해 옆문으로 나왔을 때 호랑이는 늘어지게 누워 따뜻한 햇볕을 쬐며 꼬리를 살랑대고 있었다. 쥰나가 수건을 팡 털어냈다. 소리에 맞춰 꼬리가 바닥을 가볍게 쳤다. 쥰나는 또 수건을 꺼내 팡 털었다. 꼬리가 살랑거리고, 빨랫감 사이에 끼어있던 양말이 팡하는 소리와 함께 한
두개골 안에서 종이 울린다. 철 재질과는 다르게 높고 빠르게 반복되는 소리다. 알람을 끄려 눈을 뜨면 이미 핸드폰으로 향하는 다른 팔이 보인다. 아루루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있던 모양이다. “웬일로 일찍 일어났어?” 미소라가 낮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을 걸자 아루루는 방긋한 웃음을 지으며 미소라의 품 위로 쏟아지듯 몸을 덮쳐왔다. 여름 이불이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