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2016년 이전 / 원피스 - 상디 드림
흐릿한 잔상만 남은 꿈이었지만, 그래도 깨어나서까지 불쾌한 기분이 들어서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오늘은 무서운 꿈을 꿨다고 그녀 보호자의 방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혼자 있자니 괜히 더 무서워져서 전신에 한기가 돌았다. 밀짚모자 해적단에서 지내면서 처음으로 꾼 악몽에 기분이 점점 더 바닥을 쳤다.
“…으으, 너무 싫다.”
힐끔 시계를 보니 일어날 시간도 아니고, 누군가 일어나 있을 시간도 아니었기에 누군가를 부를 수도 없어서 몸을 웅크려 오한을 이겨 내보려고 했지만, 더 추워질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 눈앞에 아른거리는 잔상에 겉옷을 걸쳐 방을 빠져나왔다.
“추워….”
차가운 밤바다의 칼 같은 바람이 얇은 천을 뚫고 살을 파고들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갈까, 하던 찰나 주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누군가 있으면 그래도 온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주방의 문을 열었다.
“상디…?”
“아, 물이라도 드릴까요?”
상디는 잠옷 차림의 그녀에 방에도 마실 물을 가져다 놨던 것 같은데, 하고 짧게 생각하고선 그녀를 의자로 안내하고 미지근한 물을 컵에 담아 그녀에게 건넸다. 컵을 받아 든 그녀는 한 모금 물을 마시고선 컵을 내려놓았기에 상디는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냥, 좀….”
“네.”
차근차근 말해보라는 그의 시선에 그녀가 머뭇거리자, 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아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에 깜짝 놀라 양손으로 그녀의 손을 쥐자 그의 손에 그녀의 손이 완전히 감싸졌다.
“무서운 꿈을 꿨어요.”
“꿈을 꿈일 뿐이에요,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요.”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좀 무서웠어요. 그게 꿈이라는 것도 알고, 그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무서워서 좀 그랬나 봐요.”
꿈이라고는 하나 그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에 그는 가슴이 찌르듯이 아파졌다. 그녀 자신도 그런 자신이 웃기게 느껴지는지 괜찮다고는 말하지만, 차갑게 식은 손에 상디는 전혀 그 말이 진짜 괜찮다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현실은 여기니깐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네….”
“그리고 만약에 또 안 좋은 꿈을 꾸면 이번엔 제가 나타나서 꼭 구해줄게요.”
상디의 말에 그녀가 살짝 웃어 보이자 그제야 손에 피가 돌기 시작하는 모양인지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손에 미지근할 정도로 체온이 돌아오고 나서야 상디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놓았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나면 다시 가서 푹 주무실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뭘요.”
우유에 설탕을 넣어 끓이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한 모금 마시자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져서 몸속까지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손안에 쥔 머그잔도 따뜻하긴 했지만 계속 잡아주었던 상디의 손이 더 따뜻하게 느껴져서 그녀가 손을 뻗어서 조심스럽게 상디의 손을 잡았다.
“무서운 꿈을 꿔서 누구한테 말하면 좋을지 몰랐었는데, 상디가 있어 줘서 다행이에요.”
“저야말로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에요.”
“다시 가서 잠들더라도 꿈에 상디가 나와서 다 도와줄 것 같아요.”
“이렇게 아리따운 공주님을 지킬 수 있는 기사의 역할이라면 저도 대환영입니다.”
살짝 손등에 입을 맞추며 하는 말에 그녀가 배시시 웃자 상디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무서운 꿈이라는 것이 그녀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무서울 수도 있을 법한 내용인 데다가,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방까지 모셔다드릴게요.”
“혼자서도 갈 수 있는데….”
“제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깐 허락해주세요.”
몸이 녹을 정도로 우유를 마시고 나서 상디는 그녀를 방까지 데려다주고선 그녀의 방문 앞에 기댔다.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가 결국 불을 붙이지 못하고, 한 참 뒤에 방문을 열어 그녀가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다음 날, 덕분에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오는 그녀의 모습에 상디는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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