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2015. 5. 3 / 겁쟁이 페달 - 킨조 신고 드림
“잘못 했어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에 킨조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지난 밤 그녀는 12시가 지나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었다. 때문에 아침부터 자신의 눈치를 보며 잘못을 시인하고 있었다.
“친구들이랑은 재미있었나?”
“…네.”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은 그녀는 힐끔 킨조를 쳐다보고선 다시 푹 고개를 숙였다. 어제 친구들을 만나고 저녁 먹고 온다고 했기에 킨조는 잘 다녀오라며 그녀를 배웅했다.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은 그녀가 없으면 조용하기만 했다. 쌓아두었던 책도 읽고, 운동도 다녀오고 하다 보니 제법 시간이 흘러 있었다.
“늦는 군.”
거실 소파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킨조는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했지만,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칠칠맞은 그녀가 또 예비용 배터리를 가지고 나가는 것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킨조도 아는 그녀의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자 근처 사는 다른 친구가 태워다줄테니 곧 들어갈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아….”
근처 사는 친구가 남자라는 이야기와, 전에 그녀에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듣지 않았어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킨조는 아예 현관을 나서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밤의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괜찮아?”
“응응, 나 완전 괜찮아! 태워다줘서 고마워.”
그녀의 목소리에 킨조는 성큼성큼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하면서 꽤나 많이 마신 모양인지 그녀는 킨조를 보자마자 뛰어오다가 철푸덕 길바닥에 넘어졌다. 깜짝 놀라 킨조도 같이 온 남자도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신고!”
“…남자친구 되세요?”
“네, 킨조 신고입니다. 데려다줘서 고맙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한 킨조는 시선으로 그를 내쫓았다. 남자는 냉큼 인사를 하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쳐다보던 킨조는 짧은 한 숨과 함께 그녀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 가슴에 뺨을 부비는 그녀를 보니 꽤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모르는 남자 차를 얻어 탄 건가?”
“아는 사람이야! 오랜만에 보긴 했지만.”
“함부로 타면 안 된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만, 집에 빨리 도착한다고 했는걸.”
웅얼웅얼 보고 싶었다는 말에 킨조는 화낼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도 따끔하게 한 소리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술에 취해서 기억을 할지도 모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들어가지.”
“마자, 신고! 나 이거 샀어!”
가방을 뒤적이더니 립스틱을 짠! 하고 꺼내 보인 그녀는 색 예쁘지! 하고선 킨조에게 자랑을 해왔던 터라 킨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녀를 부축했다. 말을 듣고 나니 평소에 바르는 립스틱이랑은 다른 색이였다.
“그래, 예쁘다.”
“히히, 이거 바르면 뽀뽀해주기.”
“일단 집에부터….”
“싫어! 뽀뽀! 뽀뽀 해줘!”
빼애애애애액 거리는 땡깡에 킨조는 알겠다고 대답하고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르고 달래가며 씻고 잠옷까지 갈아입힌 킨조는 침대에서 곤히 잠든 그녀를 보고선 그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냉큼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며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다.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혹시 모르니 핸드폰은 항상 켜두도록.”
“네….”
“그리고 내가 없을 때엔 술은…, 조금만 마셔라.”
구구절절 전부 옳은 말인 터라 그녀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까지 걸어 약속한 후에야 화가 다 풀렸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활짝 웃으며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녀의 모습에 킨조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편이 더 그녀다웠다.
“그래.”
“맞아, 나 립스틱 샀어!”
“예쁘더군.”
“헐, 내가 자랑했어?”
깜짝 놀란 표정의 그녀를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하자 그녀의 귓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냉큼 킨조의 품을 빠져나온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자 방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외쳤다.
“립스틱 다 쓰면 새 거 사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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