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mn] 글

Guard you, Guide me 4

underneath by 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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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도 아침은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 손으로 세탁해 밤새 널어둔 챌린저 복장이 나누의 가방 안에 곱게 개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순무네 아파트 단지를 향해가면 순무는 나누의 말대로 미리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좁고 냄새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면 바로 문이 벌컥 열려 깜짝 놀란다. 미리 나와있진 않았지만 현관에서 대기 중이었나보다.

인사를 나누고, 함께 엔진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길에 순무는 나누에게 캔커피를 내밀었다. 혹시나 낯선사람에게 받은 건 아닌지 확인받은 후, 순무가 산 거란 말에 감사를 표하고 그것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순무는 낄낄대며 웃었다.

"과잉보호같은데요. 제가 그런 걸 구분 못 하진 않아요."

"체육관 관장이시니까 구분 못 하는 거죠."

나누의 말에 순무는 잠깐 생각했다.

"하긴, 팬분들이 주는 걸 덥썩덥썩 받기는 해요."

"그거 봐요."

"안 받을 수 없잖아요."

어느 지방이든 체육관 관장이나 챔피언들은 경호하는 사람없이 자유롭게 쏘다닌다. 다들 포켓몬에 너무 의지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다들 한 번쯤은 생각도 못한 기습에 대해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나누는 순무의 낡은 아파트 방 안에 그의 팬들이 준 선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거실 벽에는 순무를 그린 그림이나 찍은 사진이 붙여져있고, 박스 안에는 팬레터들이 가득, 어쩌면 형형색색의 꽃다발이 걸려있을 수도 있다. 생각을 끝낸 나누는 순무에게 사람을 경계하는 것에 주의해야한다고 한 마디 했다. 그러나 경찰과 체육관 관장이기에 이런 부분은 서로 느끼는 바가 달랐다. 순무는 당장 그러긴 어렵겠지만 노력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스타디움에 들어서면 순무는 직원들과 인사를 했고 나누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메모를 마친 뒤 관장실 앞을 지키고 서있는다. 열한시가 넘어가자 노곤해진 나누는 가방을 뒤지고 순무가 주었던 캔커피를 꺼내 마셨다. 나누는 멍하니 문 앞을 지키다가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순무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이후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어제와 같이 경기장에서 몸을 풀고 싶다고 한다. 오랜만에 포켓몬들과 함께라는 말에 나누는 허락해주었다.

돌아와서, 즉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순무의 포켓몬들은 그를 닮은 건지 활기차게 경기장 안을 뛰어다녔다. 순무도 그들과 함께 달리고 뛰었다. 나누는 어제 빌려입은 옷을 제자리에 갖다두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져 순무를 따라 경기장에 자신의 포켓몬들을 내보냈다. 각자 처음보는데도 잘 어울리며 장난을 치고 까불대는 걸 보니 뛰노는 자식을 지켜보는 어버이의 마음이 된다. 순무는 깜까미에게 다가가려 하다가 깜까미가 먼저 휙 달아나는 걸 보고는 탄식했다. 나누는 멀리 떨어져서 그것을 보고 웃었다.

"제 깜까미는 호연에서 데려왔어요."

시원한 물병을 내미는 나누 쪽으로 다가온 순무에게 말하면 순무는 물을 마신 후 자기랑 고향이 같다며 가지런힌 이를 드러내고 미소지었다. 그리고 순무는 포켓몬들과 함께하게 된 경위를 풀어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호연에서 함께해온 가디-윈디와 식스테일-나인테일 그리고 코터스가 가장 각별하다고. 물론 다른 포켓몬들도 더없이 소중하다고 덧붙인다. 나누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피보호인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기에 너무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순무도 딱히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한동안 둘은 포켓몬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있었고, 한참 후에나 경기장을 떠날 수 있었다. 곧바로 돌아간 나누의 포켓몬들과 달리 순무의 포켓몬들은 돌아가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겨우 달래서 몬스터볼로 돌려보낸 후, 순무는 자기를 닮아 볼 안에 오래 갇혀있는 걸 싫어한다고 말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간만에 땀을 흘린 순무는 곧장 샤워장으로 향했고 나누는 샤워장 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순무가 나오자 둘은 관장실로 향했다. 그 전에 순무는 스태프실을 찾아가서 미안하지만 경기장을 한 번 청소한 다음에 퇴근하라는 말을 남겼다. 스타디움의 직원들은 군소리없이 바로 움직였다. 틈만 나면 포켓몬들과 뛰며 단련하는 순무의 성질을 알기에 바로바로 청소 도구를 챙긴다.

그렇게 별다른 소동없이 오후가 지나고, 오늘도 늦지 않은 시간에 둘은 스타디움을 나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둘 사이를 채우고 있던 딱딱한 분위기가 사그라드는 것만 같다. 순무는 아침부터 계속 붙어있는데다 또래라서 나누를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슬슬 자주 웃어주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친근감을 느낄 것이라는 본부의 판단은 옳았지만, 나누는 어디까지나 임무라는 생각을 깔아두고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다.

순무를 데려다준 뒤 호텔로 돌아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나누는 포켓몬들을 꺼냈다. 욕실로 데려가서 팔을 걷고 쭈그리고 앉아 하나씩 차례로 씻겨준다. 호텔은 포켓몬과 함께 머무르는 공간이기 때문에 욕실도 넓어서 차례대로 느긋하게 씻겨줄 수 있었다. 문득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무의 포켓몬들이 떠올랐다. 기본적으로 체온이 높아 순무네 욕실이 수증기로 가득할 거라는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밤이 지나고, 정확하게 기상시간에 깨어난 나누는 출근 준비를 했다. 아파트 단지를 향해 걸어가면 오늘은 순무가 서있었다. 미리 나오지 말랬잖아요, 라고 한 마디 하려다가 순무가 한 손에 종이봉투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인사를 하고나서 그게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순무는 나누에게 묵직한 그것을 내밀었다. 받아서 벌려보면 나무열매로 만든 잼이 든 유리병, 커피가루, 통조림같은 식료품들이 들어있다.

"수사관님이 잘 챙겨드셨으면 해서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쑥스러운 느낌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누는 일단 주는 것이니 그것을 잘 받았다.

"어제 하신 말씀 기억하세요?"

"어떤 거요?"

"과잉보호같다는 말."

나누의 말에 순무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는데 이정돈 아무것도 아니죠."

순무의 말에 나누는 자기가 정말 그러고 있는 건지 생각해보며 순무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뭐, 일단은 함께 붙어다니면서 안전하게 지켜주긴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순무가 멈춰 서서 나누를 빤히 쳐다보는 것을 알았다. 두세걸음 앞서간 나누는 순무가 이상한 낌새라도 느꼈나 해서 고개를 돌리고 묻는다.

"왜 그러세요?"

"수사관님… 등이 약간 굽으셨네요."

난 또 뭐라고, 실없는 소리였다. 나누는 직업병이라는 웃긴 말로 넘기려 했으나 순무는 진지하게 나누를 걱정한다. 아직 젊다고 방치하면 안 된다며 교정하는 자세를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순무의 잔소리는 입구를 지키고 선 스태프에게 인사를 할 때도, 로비를 지나 관장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이어졌다. 마침내 순무는 관장실 안으로 들어갔고 나누는 받은 종이봉투와 가방을 땅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 못살게 구는 성격이구만……."

그것은 반대로 지나치게 정이 많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나누는 순무의 이력을 떠올리며 동향사람-게다가 또래-이 옆에 있는 것이 그렇게 편한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 단순히 참견을 좋아하고 다정한 성격일 수도 있지. 피보호인에게 사적인 감정은 가지면 안 되지만 사적인 감상정도는 가질 수 있기에 그렇게 결론짓는다.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한 순무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자 나누는 기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안주머니에서 펜과 수첩을 꺼냈다.

'순무 관장은 다정하고 열정적인 성격.'

한 줄만 쓰고 다시 안주머니에 펜과 수첩을 넣었다. 그러면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순무가 주었던 종이봉투. 나누는 쭈그려 앉아 종이봉투의 내용물을 자세히 살핀다. 그리고 그 상태로 다시 펜과 수첩을 꺼내어 펼쳤다.

'주변사람을 잘 챙기며 세심함.'

흠잡을 것 없는 완벽한 인성이군. 나누는 이런 훌륭한 인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큰 손해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이정도로 남을 위하는 사람이 잘 없단 말이지.

점심시간이 되고, 순무와 마주보며 식당에 앉아 메뉴판을 둘러보던 나누는 문득 튀긴 요리를 주문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순무는 술 마실 때말곤 튀긴 걸 먹지 않는다는 나누를 배려한 것 같다. 나누는 붉은색의 눈동자만 슬쩍 올려 순무를 쳐다보고는, 한 번 눈을 깜빡임과 동시에 다시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식사는 카레라이스로 정하고 메뉴판을 닫았다. 순무는 나누에게 뭘로 정했냐고 물었다. 카레라이스라고 대답하면 순무는 자기도 그냥 똑같은 것을 주문하겠다고 했다.

"가라르에서까지 카레라이스를 먹을 줄은 몰랐네요."

그렇게 말하면 순무는 싱긋 웃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먹던 거라 그렇긴 해요."

카레는 전 지방적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요리이지만, 타지방의 식문화엔 딱히 관심이 없는 나누에게는 가라르에서 먹는 카레라이스라는 조합이 신선했다. 이윽고 나온 것을 떠먹으며 순무는 돌아가면 아침에 말한대로 나누의 자세를 교정해주겠다고 말해왔다. 나누는 버릇대로 한쪽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 이상한 곳에서 아집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쁜 일은 아니기에 그를 따르기로 했다.

어쩐지 앞으로도 오후 일과는 둘의 특훈시간이 될 것만 같으나(원인 제공은 호신술을 가르친 나누였다) 보이지 않는 관장실 대신에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탈의실에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경기장으로 나가면 순무는 의자를 하나 가져와 나누에게 앉으라며 손짓했다. 우선은 어깨 근육을 풀어주겠다며 어깨를 주물거리는데 손아귀 힘이 워낙 세서 나누는 아파죽겠다는 소리를 냈다.

"…수사관님 정말로 경찰관 맞아요?"

게다가 코드넘버는 000? 장난스레 의심하면 나누는 이래도 체력시험을 아주 잘 통과했다고 대답한다. 그 땐 몇년 전이라 지금보다 더 젊을 때였다만.

"자, 이제 일어보세요."

나누는 욱씬거리는 어깨를 주무르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순무는 나누의 뒤에 서서 어깨에 힘을 주고 펴보라고 했고 나누는 어깨와 등에 힘을 주고 자세를 똑바로 했다. 순무는 나누의 손목을 잡고 팔을 뒤로 쭉 뻗게 한다. 저절로 등에 시원한 통증이 달린다. 근육이 한껏 풀리는 느낌을 받으며 같은 동작을 여러번 반복하고, 반대쪽 팔도 똑같이 뒤로 뻗으며 반복했다.

"여기가 아니라 헬스장에 계셔야겠는데요."

나누가 농담을 하면 순무는 하하 웃었다.

"뭐든 기초가 중요한 법이죠. 건강이 우선이에요."

그렇게 덧붙이며 나누의 등을 곧게 펴게 한다. 손바닥을 등에 바짝붙이고는 좀 더 펴보라고 말한다.

"그나저나, 수사관님은 왜 악타입이 주력이에요?"

순무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누는 자신의 포켓몬들을 보고 묻는 것이라 생각한다.

"관장님의 고향이 더운 호연지방이라 불꽃타입 전문인 것처럼 저도 같아요. 성도가 워낙 음침하잖아요."

"아, 성도 출신이셨군요."

그렇게 말한 순무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성도지방에 그런 느낌은 없었는데, 라고 말한다.

"농담이에요. 악타입 전문이면서 경찰인 것도 웃기지만, 성향과 지향은 다른 거니까요. 저는 성격이 더러워도… 어릴 때부터 정의를 위해 싸우고 싶었어요."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말에 낯간지러워지자 사실 저도 저를 잘 몰라요, 그렇게 덧붙이고는 말을 끝냈다.

"제가 본 수사관님은 전혀 그렇지 않던데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사관님은 뭐랄까, 다정하시고 세심하신 분같아요. 호신용품도 챙겨주시고 호신술도 가르쳐주시고……. 악타입이니 뭐니 신경쓰지 말고 하시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셔도 돼요."

나누는 등을 꾹꾹 누르는 순무의 묵직한 손 힘을 느끼며 방금 그가 한 말들 속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아, 순무에 대해 수첩에 적은 내용과 같았다. 서로 느낀 것이 비슷하다니 둘의 관계가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대상에게 사적인 감정을 가지면 안 된다고 또 하나의 나누가 속삭인다.

조금은 친해져도 되지 않을까. 필요 이상의 관계가 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테러범들이 잡히면 나누는 수사임무로 복귀하게 될 테고 그러면 순무와는 좋은 인연으로 남는 것이다.

선만 지키면 나쁠 건 없잖아. 또 다른 나누는 그렇게 생각했다.

순무의 지도 하에 나누는 굽은 등을 교정받았다. 단단하게 뭉쳤던 근육들이 풀리자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다. 순무는 어떻냐고 물었고 나누는 괜찮아졌다고 대답했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관장실을 향해 순무와 함께 걸었다. 순무는 밝은 얼굴로 차를 타줄 테니 잠깐만 들어와있으라고 권했다. 그래도 되나, 망설이던 나누는 거절할 수 없어서 순무를 따라 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살짝 닫고 소파에 앉으면 순무는 전기포트에 생수를 들이붓고 전원을 켰다.

"저번에, 고향마을에서 아는 분이 티백 세트를 보내줬거든요. 향이 아주 좋아요. 몸의 피로를 푸는 데에도 좋구요."

"네에."

순무는 매끄러운 동작으로 컵 두잔에 티백을 넣고 다 끓여진 물을 부었다. 구석에 놓인 작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들이붓는다. 받아든 차는 구수한 향이 났고, 순무가 온도를 잘 맞춘 덕분에 뜨겁지 않게 마실 수 있었다. 첫맛은 구수하나 목구멍을 타고 피어오르는 향은 허브처럼 향긋해서 신기했다.

"괜찮죠? 밤에 잠도 잘 온대요."

피곤하실 것 같아서요, 라고 끝맺은 말에 나누는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순무는 괜히 자기때문에 고생하신다며 한숨을 쉬었다.

"제가 할 일이 이건데요, 뭘."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분위기에는 어색함이 감돈다. 문득, 나누는 탁자에 놓인 서류에서 순무의 서명을 보았다. 서명이란 본래 빠르게 휘갈겨서 형태가 날림이지만 순무의 서명은 독특했다. 마치 미리 그어놓은 선을 따라 천천히 그리듯, 정갈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것이 웃기게 느껴졌다.

"서명에는 재능이 없으시네요."

"네? 아아… 글씨를 또박또박 천천히 쓰는 편이에요."

평소에는 느긋하게 흐르는 성격이지만 배틀할 때, 포켓몬들과 뛰놀 때는 열정적인 사람. 그것이 순무의 매력이겠구나. 나누는 순무가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려운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차를 한 입 더 마셨다. 그리고서 이거 하나만큼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어서 맞은편에 앉아있는 순무를 불렀다.

"저, 관장님."

"네."

"아침에 주신 것 말인데요… 일단 주신 거니 감사히 받겠지만 다음부터는 안 그러셔도 괜찮아요."

다정한 그에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지만, 그렇게 말하면 순무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굳었다가 살짝 눈썹이 찡그려진다. 그는 미안하다고 사과해왔다. 덩달아 당황한 나누도 오른손을 흔들며 사과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순무를 말렸다.

"본래라면, 저는 이렇게 앉아있는 것도 불가능해요. 피보호인… 관장님을 뒤에서 지켜보고 주변을 감시하는 게 원칙이라서요."

누군가가 보았다면 징계까지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경호인은 피보호인의 일상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되는 것이다. 피보호인도 마찬가지로 경호인을 하인마냥 부려먹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피해다니거나 하는 것은 금물이다. 순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입술을 달싹였다.

"더 불편해지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는 거니까 크게 신경쓰진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때마침 책상에 놓인 전화가 울렸고 나누는 컵을 든 채 순무가 전화를 받는 동안 일어서서 관장실을 나갔다. 발치에 닿이는 종이봉투와 손에 들린 컵은 많은 말을 담고 있었다.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는데 이정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본 수사관님은 전혀 그렇지 않던데요. 악타입이니 뭐니 신경쓰지 말고 하시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셔도 돼요. 나누는 벽에 등을 기대고 차를 마시면서 과연 이것이 옳은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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