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4박 7일 크루즈 여행기(2)

싱가포르는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다. 도시 어디를 가도 풀과 나무가 많고, 넓은 공원이 있고, 새도 아주 많다. 짐이 없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걸어서 항구까지 가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아, 물론 택시에 타서 차창 밖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했던 생각이다. 실제로는 날씨가 꽤 덥기 때문에(이 시기는 덜 덥고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라 한 것 같은데 어째서 어째서) 걸어다니려면 좀... 기운이 빠지긴 한다... 왜 알고 있느냐면 마지막 날에 정말로 해봤기 때문입니다. 마리나베이샌즈 항구에서 가든즈바이더베이까지 걷기...

어쨌든 그 이야기는 좀 나중에. 우리는 차로 35분쯤 달린 끝에 항구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대기선은 매우 한가했다(이때가 오전 9:27). 실제로는 이 뒤로 1시간쯤 지나서야 입장이 시작되었다.

일단 여행기에 좀 그 뭐냐... 정보 같은 게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미리 얘기 좀 하고 들어가자면...

- 입장은 사진 상의 저기서 한다. 아래층은 입항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매우 혼잡하니 항구 구경을 할 게 아니라면 굳이 내려갈 필요가 없다.

- 건물 바깥에서 요청하면 짐을 미리 부칠 수 있고, 돈이 따로 들지는 않는 듯하다. 캐리어를 가져가면 각자의 방까지 가져다 준다고 한다. 그때 쓰기 위한 태그도 메일로 받을 수 있다. 다만 많은 사람이 짐을 보내기 때문에 적시에 도착하지 않을 수 있다.

- 기내에 가지고 탈 수 있는 캐리어(대충 20인치까지)는 소지하고 수속을 밟을 수 있다. 그보다 큰 사이즈의 경우 무조건 짐으로 부쳐야 한다.

사실 크루즈에서는 가방을 올려 주고 내려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나는 태그를 가방에 달아 오지 않았고, 씻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므로(이틀 가까이 못 씻었기에) 그냥 가방을 가지고 타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이용해 보지는 못 했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는 한지 줄을 길게 서 있는 것은 보았다. 나중에 내릴 때도 엄청난 양의 가방이 늘어서 있었다. 음... 무거우니까... 편할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수속이 시작되면 여권을 확인하고, 메일로 온 종이를 확인하고, 뭐 앱을 보여주고(로얄 캐리비안 크루즈의 경우 별도 앱이 존재한다)... 그런 일들을 시키는 대로 좀 하다 보면 금방 수속이 된다. 그 뒤 승선은 사람을 좀 모아서 한 번에 하기 때문에 한쪽에서 좀 기다리다 보면 승무원이 와서 가라고 한다. 길을 따라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랐다가 내렸다가 걸었다가 말았다가 하다 보면 배에 오르게 된다. 승선하면 여권을 수거해 가고(이것으로 기항지에서 들르게 될 나라 - 내 경우엔 말레이시아와 태국 - 의 입국 수속은 크루즈 측에서 단체로 해 준다), 향후 배에서 내릴 때까지 우리의 신분증은 씨 패스sea pass가 대신하게 된다. 씨 패스는 선실 출입키도 되고, 크루즈 안에서 이용한 각종 시설들의 계산도 되고, 기항할 때 타고 내린 증명도 되고, 식사를 할 때도 확인하고, 아무튼 온 사방에서 다 보려고 하기 때문에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어쨌든 그렇게 여권을 뺏긴(...) 후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이게 배 안이다...

배에 오른 후 곧장 안전 교육이 있다. 내용은 의외로 별 건 없고, 비상시에 무슨 사이렌이 울리면 어디로 와야 한다는 내용이다. 아마 거기서 구명정을 띄워 우리를 대피시켜 주지 않을까... 물론 나는 별 일 없이 무사히 귀국했으므로 실제로 그쪽으로 갈 일은 없었고, 저 사이렌도 예시로만 들어 보았다. 그 예시가 하필이면 씻을 때 울리는 바람에 내가 물을 너무 써서 경고음 나오는 건가(...)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안전 교육을 다 들은 자들은 먼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다. 크루즈는 기본적으로 세 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유료 식당이 있긴 하다). 승선 완료 시간(즉, 이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배에 타야 할 시간)은 대개 오후지만, 일찍 탄 사람의 경우 점심부터 먹을 수 있다. 완전한 사육의 시작을 알리는... 끼니라고나 할까...

우리가 탔던 배(로얄 캐리비안 스펙트럼 호) 기준으로 무료 식당은 다음과 같았다.

- 윈재머 카페Windjammer cafe(14층) 뷔페식 식당. 아침, 점심, 저녁을 먹을 수 있다

- 정찬 식당(3, 4층) 애피타이저 - 메인 - 디저트의 3코스를 제공. 아침, 점심, 저녁을 먹을 수 있으며, 저녁식사 자리 예약 가능

- 카페 투세븐티cafe Two70(5층) 뷔페식 카페. 윈재머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메뉴 제공. 일부 음료는 유료

- 쏘렌토 피자(14층) 피자. 11시 반부터 새벽 2시(!)까지 피자를 구워낸다...

- 씨플렉스 도그 하우스(15층) 취향대로 핫도그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곳

어쩌다 보니 실제 이용은 윈재머, 정찬, 쏘렌토만 해 보게 되었다... 핫도그 한 번쯤은 먹어볼 것을...

참고로 운영 시간대는 유동적이다. 일찍 정박하는 경우 기항지에서 내리기 전에 아침을 먹고 내릴 수 있도록 좀 더 빨리 열고, 그렇지 않은 경우 좀 더 늦게 여는 식이다. 주로 식당 웨이터들로부터 해당 정보를 입수할 수 있으므로 저녁에는 정찬 식당이나 유료 식당에 가는 편이 좋다. 윈재머는 뷔페식이기 때문에 테이블 하나하나마다 시간을 투자해 줄 사람이 없고, 투세븐티도... 아마... 그럴 것 같으니...

어쨌든 우리의 기념비적인 첫 끼는 윈재머였다.

이렇게 텅텅 빈 이곳을 볼 일은 정말 승선 직후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오른쪽 기둥 너머로 보이는 것이 음식이 진열된 곳이고, 그 너머로는 이런 식의 앉을 곳이 또 있고, 안쪽으로 테이블이 또 있어서 실로 수백 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우리는 두 번 다시 한적한 윈재머를 보지 못 했다... 기회가 된다면 창가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며 식사를 하는 호사를 누리기를 추천한다(나는 운 좋게 네 번 모두 창가에 앉을 수 있었다). 너무 혼잡해서 도저히 자리가 없거나, 사람 많은 곳이 싫다면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방으로 가져가서 먹을 수도 있다. 다 먹은 접시는 선실 앞에 두면 승무원들이 정리해 간다. 다만 승선 첫날은 방에 바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우리의 경우 밥 먹으러 온 건 11시 30분경이었고, 선실에 입실 가능해진 건 13시 30분경이었다) 죽으나 사나 여기서 먹어야만 한다... 윈재머가 꽉 차면 정찬 식당으로 안내해 준다고 하는데 너무 일찍 간 탓에 경험하지는 못 했다.

더불어 좀 재미있었던 건... 이쯤 되면 사람들이... 슬슬... 약간 한국에서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한국인도 아닌데도(...) 짐이고 뭐고 대충 자리에 놓고 아무렇게나 음식을 집으러 가는데... 딱히 분실 사고를 목격하진 못 한 것 같다. 그래도 진짜 귀중품은 두고 다니지 않도록 개인적으로는 좀 주의했다.

뷔페 음식 사진은 따로 없다. 맛은 그냥 뭐 엄청나게 엄청날 정도는 아니고, 평범한 대형 뷔페 스타일이다. 회전율이 어마어마하기에 신선하긴 하다. 과일도 나름 다양하게 나온다. 친구는 망고를 기대했으나 망고는 어쩐지 일정 내내 나오지 않았다. 파인애플, 멜론, 화미과(멜론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어쩐지 입을 깔끔하게 해 주는 과일이었다), 자몽, 사과, 오렌지, 바나나 정도가 돌아가며 제공되었다. 한쪽에는 음료 코너도 있다. 세 가지 정도의 커피와(확실치는 않다. 나는 커피를 못 마시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았다) 물, 얼음, 주스 2종류가 무한리필로 제공된다. 이 여정 동안에는 후르츠 펀치(너무 달았다), 레몬에이드(좀 밍밍한 편), 오렌지 주스(맛있다), 사과 주스(베스트!)가 번갈아 가며 나왔다.

참고로 물은 선실마다 2병씩 제공되는데, 처음 제공된 것 이외에는 더 이상 추가로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물이 필요한 사람들은 윈재머나 투세븐티, 쏘렌토 등지의 음료 코너에서 물을 떠 가야 한다. 비치된 컵을 이용할 수도 있고, 텀블러를 준비해 왔다면 이때 쓸 수 있다. 내 경우엔 텀블러가 완전 밀폐가 되지 않는 타입이라 객실에서만 사용했고, 기항지 관광을 나갈 때 선실에 있던 생수병을 하나씩 가져갔다.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면 식사 중에 마시는 것만으로 충분할 듯하다. 어차피 세 끼 먹을 테니까...

한편 위에 열거한 것 이외의 음료들(탄산음료, 술 등등...)은 돈을 내고 사야 한다. 배에 최초 승선할 때 12병까지 반입이 가능하나, 기항지에서 구매한 경우 들어오다 압수당한다(...)고 한다. 우리는 콜라를 한 병 반입했고 다행히 압수당하지 않았는데, 봐준 것인지 콜라 정도는 괜찮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것인지는 개인의 자유. 내 경우엔 없다고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식사를 하던 도중 유료 식당에서 일한다는 어떤 웨이터가 영업을 뛰러 왔다. '스테이크 먹고 싶지 않니? 사천 음식은? 스시도 있어' 뭐 대충 그런 얘기인 것... 같았다... 영어였고... 잘 못 알아들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벌써 K양(내 친구 중 유일한 토익 만점자)이 그리워졌으나... 그는 멀리 한국에 있었고 나는 알아서 잘 해내야만 했다. 우리는 원더랜드에 가고 싶다고 했고, 그는 스테이크를 몇 차례 더 이야기하며(원더랜드에는 스테이크가 없다나 뭐라나) 다른 식당은 필요 없느냐고 재차 권했다. 우리한테 영업에 성공하면 뭔가 받는 게 있으려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원더랜드만 가기로 했다. 하지만 유료 식당에 가볼 생각이라면 승선 전에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게 더 싸니까...

밥을 다 먹었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기다리고 있었고, 하지만 여전히 선실에 들어갈 시간이 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수영장을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겸사겸사 공짜 아이스크림도 좀 먹고... 계속 먹기만 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다...

사진은 수영장 옆에 있던 미끄럼틀이다. 한 번쯤 탈 수 있나 시도라도 해 볼 걸 그랬나... 하지만 규모가 작았고 정말 어린이용 같아서 사실은 접근도 해 보지 않았다. 저날은 날이 좀 흐렸고, 다들 승선하느라 정신도 없었고, 수영복을 갈아입을 만한 곳도 없었으므로(짐을 가지고 탄 뒤에 공용 화장실에서 갈아입지 않고서야) 수영장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자 점점 늘어났고, 가끔은 민망해서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자들이 지나다니기도 했다...(이런 곳에 T팬티형 수영복을 입고 오다니? 그러고 계단을 올라가다니? 아니? 아니???)

캐리어를 질질 끌고 다니며 수영장 구경을 한 후 우리는 한쪽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경고문(WET FLOOR DON'T RUNNING EVEN FOR ICECREAM) 옆을 지나서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갔다. 경고문이 참 귀엽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사이즈는 더 귀엽다... 홍대 근처에서 팔던 30센티 아이스크림 같은 맛이었다. 비록 3센티쯤의 높이긴 하지만.

그 즈음에 안내방송이 나왔다. 원래 2시에 열려던 선실을 일찍 열었다는 소식이었다. 드디어 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우리는 즉각 선실로 향했다.

크루즈에는 보통 4가지 유형의 방이 있다. 내측, 오션뷰, 발코니, 스위트룸. 이 방은 발코니(열 수 있는 문이 있고, 그 문을 통해 발코니에 나갈 수 있는 방)이다. 규모가 썩 크진 않으나 이만하면 둘이 지낼 만 하다. 사실 이 방은 4인까지 사용할 수 있는데(사진 상의 파란 소파는 침대로 바꿀 수 있다) 화장실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둘 이상이 쓰려면 좀 불편할 것 같기는 하다.

발코니에 나가 보면 대략 이런 느낌이다.

한편 로얄 캐리비안 앱을 통해 몇 가지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다. 담요를 달라거나, 아이스 버킷을 달라거나, 기타 등등. 그런데 여기에 중대한 옵션이 하나 숨어 있었다. 바로 침대를 합치거나 나누는 서비스! 나와 친구는 한 침대를 쓸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므로 침대 나누기 서비스를 요청했다. 나중에 우리 방 담당 승무원이 와서 이런저런 것들을 설명했다. 가령 청소는 하루에 두 번 해 주는데 사람이 없을 때만 한다고 한다. 침대 나누기 및 합치기 서비스 역시 이때 같이 이루어질 거라고 했다. 청소를 원치 않을 경우 DO NOT DISTURB 스티커를 밖에 붙여 두라고도 했다.

이날은 우리가 저녁을 먹으러 간 사이 요청한 서비스가 이루어졌다.

침대가! 분리되었다!

아 그리고 이 침대랑 베개... 그냥 평범하게 딱딱한 매트리스에 평범한 솜베개 같은데... 이상할 정도로 편했다. 거의 머리 대고 5분이면 잠들 정도로... 무슨 매트리스냐고 물어볼 걸 그랬나... 이제 와서는 뒤늦고도 때늦은 후회...

어쨌든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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