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존나박사와 노란고양이 0.
프롤로그
주의: 1차 비엘.
무신론자이자 유전공학자인 나요한 박사는 미국에서 오래 공부한 만큼 당연히 미국 이름이 있지만 어째서인지 한국 내에서 만큼은 한국 이름인 ‘나요한’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가 딱히 애국심이 뛰어나거나, 한글을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요한’이라는 이름처럼 신앙심이 깊은 것도 아니었다. 언급했듯이, 그는 무신론자다. 이성과 합리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과학자로서 나요한 박사는 신이라는 존재를 혐오하다시피 했다.
그가 한국에서 나요한으로 불리기 원하는 이유는 순전히 그의 영어 이름이 John이기 때문이었다. 영어식대로 읽으면, ‘John Nah(존 나)’가 된다. 분명 욕은 아닌데, 빠르게 읽으면 어쩐지 기분이 나쁜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라면 더더욱.
하지만 다들 나요한 박사가 없는 자리에서는 모든 연구원들이 그를 존나 박사라고 불렀다. 이름값을 한답시고 성질이 존나 더럽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나요한 박사의 이력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물학자인 아버지 나철희(Steve Nah) 박사를 따라 열 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나요한은 월반을 거듭하여 17세에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한 후 스물 넷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일로 화제가 되었다. 그 후로 미국 명문대에 교수로 임용되어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이라고 모두 예상하였으나 세상일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나철희 박사가 아들의 미국 시민권 신청을 깜박한 일과, 나요한 박사가 영주권 심사를 받기 전 한국 학회에 참석하느라 잠깐 귀국한 일이 겹쳐져 결국 병무청의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고, 신체가 너무 건강한 바람에 얼떨결에 한국 육군 최전방에서 2년 간 군복무를 마치게 된다. 이로 인해 연구 커리어가 제대로 꼬일 뻔하지만 군복무 전 연구결과 덕분에 어찌어찌 미국 유명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어 스물아홉에 최연소 테뉴어(종신재직) 심사를 통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 나요한 박사는 미국에서 계속 연구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돌연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나요한 박사가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다들 유명 대학의 교수직에 억대 연봉을 제안받고 올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나요한 박사의 행보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다름 아닌 한국의 작은 행정도시의 ㅇㅇ농업기술연구원에 유전공학본부 연구위원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무도 나요한 박사가 미국의 명문대 교수 자리를 내던지고 한국의 작은 연구원으로 온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요한 박사는 도무지 친구나 지인이라고는 없는 몹쓸 성정의 소유자라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요한 박사는 자기 입으로 뭔가를 말할 위인도 아니었다.
나요한 박사는 싸가지는 없을지언정 일은 잘하는 사람이었다. 산골짜기에 처박혀있는 작은 농업기술연구원에서도 연구예산을 여기저기서 박박 끌어모아서는 어떻게든 연구 실적을 내고 논문을 투고하고 실험을 진행하고 설비를 들여왔다. 본디 몇 년째 씨없는 수박이나 딱딱하면서 부드러운 복숭아 따위를 연구하다가 맨날 연구원 텃밭을 동네 주민들에게 서리 당하던 작은 농업기술연구원은, 나요한 박사의 임용 이후 국내 최고의 유전공학 연구소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른의 나이에 연구소 본부장이 된 나요한 박사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새벽 5시 반에 기상하여 공복 조깅과 아침식사와 명상으로 구성된 미라클 모닝 루틴을 마친 후 정규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오전 8시에 출근 완료. 9시까지 행정 일을 마친 후 그쯤 출근한 연구원들을 달달 볶아가며 잔소리를 퍼부으며 사람 피를 말리다보면 점심 시간. 멀리 교외 맛집으로 한시간에서 두시간 가까이 점심 투어를 떠나는 동료 박사들과 다른 연구원들과 달리 매점에서 파는 샌드위치나 한 조각 사먹고는 점심시간을 쪼개어 본인의 연구 활동에 매진. 이후 다시 연구원들 조지기 및 연구소장과 환경부와 농림부 관계자들을 닦달하여 연구예산을 따오거나 인근 대학의 교수들을 갈궈서 협동연구를 진행하다보면 어느새 퇴근시간. 그 후엔 또 대충 끼니를 떼운 후 밤 아홉시까지 본인의 연구활동에 다시 매진. 이후 귀가하여 잠깐 맥주를 곁들인 휴식시간을 가진 후 10시 반 경 취침.
월화수목금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주말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남들을 갈굴 시간에 자기 논문을 더 쓰는 일이 추가될 뿐.남들은 젊은 나이에 인생의 즐거움을 하나도 모르는 나요한 박사를 딱하게 여겼으나, 정작 나요한 박사는 본인의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자신보다 연구도 못하는 멍청이들의 동정 따위는 필요없다고 여기면서.
나요한 박사는 규칙적인 일과와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계획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어 갈 때 최고의 쾌감을 느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논문을 읽고 실험을 해서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내는 일 뿐이었다. 나요한 박사는 맛있는 음식에도, 재밌는 드라마에도, 게임이나 운동, 기타 여가활동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는 그저 귀찮고 따분하거나 멍청한 짓거리일 뿐이었다.
그런 나요한의 인생에 대단히 수상한 고양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안녕하세요. 조아라에서 소소하게 연재 중인 1차 비엘 소설입니다. 글리프에도 동시 연재해요!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