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도 종달새는 운다
[발더스게이트3][타브카를라크][카를라크타브]
발더스 게이트를 구하면 뭐해요. 저도 제 전용 노래 하나만 새로 만들어주면 안되나요? 악마 자식한테는 줬으면서…. 아무튼 알겠어요. 노래로는 못 하겠다고 하니까, 덜 재밌겠지만 글 형식으로 어떻게 해보려 할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 제가 명색이 바드인데 그냥 가사만 대강 좀 생각해낼 시간 주면 기깔나게 곡 하나 뽑겠다니깐요. 안 되나요? 알았어요. 역시 돈이 많아야 된다니까, 내가 귀족이었으면 진짜, 바드로 하이 홀을 발 디딜 틈도 없이 꽉꽉 채워서 나에 대한 찬양곡을 부르게 할 텐데. 대신 제 이야기니까 제 맘대로 말할래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것 중에 하나가, 애들하고 골목에서 놀고 있었어요. 아마 한 다섯살? 네살? 그랬을 때 같아요. 네살이다, 와, 네살이었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외부 도시 빈민들 소굴에서 무슨 거창한 장난감이 있었겠어요. 그냥 돌로 풀잎 으깨고, 나뭇가지로 칼싸움 하고, 자갈이나 벽돌같은거 쌓고, 작은 꽃을 부서진 벽돌 위에 놓은 다음에 이건 오늘 저녁이야 이러는 소박한 놀이였어요. 그런데 제가 언니한테서 물려받은 팔찌가 있었거든요. 별것도 아니에요. 지금 보면 정말 낡고 허름하다고 생각할 팔찌인데, 노끈 같은 것에 칠이 다 벗겨지는 나무 구슬 몇 개 꿴 거였어요. 그런데 어떤 애가 그게 욕심이 났나봐요. 지금 와서는 걔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종족인지, 심지어는 여자애였는지 남자애였는지도 기억 안나는데, 목소리만은 기억나요. “그거 나 주라. 나도 잠깐만 해볼래.”
저도 근데 집에 무슨 장난감이 있었겠어요, 뭐가 있었겠어요. 저한테도 엄청 소중한 거였거든요. “싫어, 이거 우리 언니 거였단 말야.”
그러고 계속 노는데 갑자기 그 애가 제 팔찌를 잡아당겼어요. 그래서 싸웠죠. 팔찌는 끊어졌고, 저도 울고 걔도 울고, 아주 난장판이었는데, 그 때쯤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가서 그냥 그렇게 끝났어요. 그날 밤에 언니가 새로운 끈을 어디서 가져와서 다시 꿰 줬는데 알잖아요, 애들 그런거에 엄청 속상해하는 거, 화난것도 화난거고, 언니한테도 미안하고. 그래서 다음 날에 사과하라고 해야지, 하고 하루 종일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걔가 다른 애들이랑 속삭대고 있었거든요, 가까이 가니까 뭐라고 했냐면요, “꺼져, 악마새끼. 니 근처에 가면 더러운 피 때문에 유황 냄새 나.” “으, 냄새!” “더러운 피래요!” 막 이랬어요.
저는 애들이 갑자기 왜 저한테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엉엉 울면서 집에 들어왔어요. 엄마는 식당에서 점원으로 일하셨거든요, 아빠는 부둣가에서 짐을 날랐고요, 그래서 아빠가 일이 없거나 일찍 끝난 날은 집에 있을때가 더 많았어요. 아빠가 저를 보더니, 꽉 안으면서 “우리 공주님, 무슨 일이야?” 라고 묻는 거예요. 저는 울면서 그랬어요.
“아빠, 애들이 나더러 더러운 피를 가졌대요.”
아빠가 표정이 갑자기 싹 굳는 거예요.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 다그치는데 아빠가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 봐서 너무 무서워서 더 울었어요. 그랬더니 아빠가 절 안으면서, 뭐라고 하셨더라, 어,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예쁜 공주님. 아빠가 화내서 무서웠지? 미안해. 괜찮아, 뚝! 엄마 오면 말해줄게. 하지만 리타, 너는 하나도 더럽지 않아. 너는 언제나 엄마 아빠의 소중한 딸이란다.” 뭐 이런 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티플링이라고 욕먹은건 4살때부터 계속 있어왔던 거죠.
그런데 사실 저는 운이 엄청 좋은 편이에요. 저는 피부색도 ‘인간’ 피부색이고, 눈도 흰자위가 있잖아요. 뿔이랑 꼬리만 빼면 비교적 ‘사람처럼’ 보이니까 사람들이 그래도 비교적 잘 해주는 측에 들어요. 일자리 구하기도 좀 더 쉽고요. 아는 티플링 중에 정말 피부가 밤하늘 같은 언니가 있거든요, 머리카락도 까맣고, 눈도 흰자위 없이 보라색이고. 사람들이 어렸을 때 그 언니를 뭐라고 불렀는지 아세요? 샤의 티플링이라고 했어요. 눈 마주치면 재수없다고 하고, 돌이나 상한 토마토 같은 거 던질 때도 있었고요. 지금은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네요. 저희 집만 해도 저랑 막내랑 셋째 오빠, 그러니까 제 바로 위의 오빠만 좀 ‘사람처럼’ 생겼고 나머지는 피부색이 다르거나 흰자가 없거나 둘 다거나 그래요. 제 생각에 피부색보다 흰자위가 있는지 아닌지에 사람들이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긴 해요. 아, 저희 집은 첫째 오빠, 첫째 언니, 둘째 언니, 둘째 오빠, 셋째 오빠, 저, 넷째 여동생, 막내 여동생 이렇게 있어요. 제가 애기였을 때 다른 도시에서 발더스 게이트로 이사왔다는데 저는 기억 못하고 사실 셋째 오빠랑 둘째 오빠도 예전에 어디서 살았는지 잘 기억 못해요.
아무튼 이 얘기를 왜 했냐면요! 저는 그나마 차별을 덜 받은 편인데도 악마새끼, 지옥 어쩌고, 더러운 피 이런 말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래서 악마, 캄비온, 아베르누스라면 정말 지긋지긋하고 싫었어요. 제 조상님 중 어떤 멍청이가 악마하고 뭔가 했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런 차별을 받고 있단 거잖아요. 저는 지금 아베르누스에 있는데, 좀 웃기긴 하네요.
사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러니까 네더브레인을 파괴하는 그 순간까지도, 저는 아베르누스에 제가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다몬이 지금까지 어떻게든 해냈으니까 이거 다 끝나고 가면 또 무슨 생각을 해냈겠지! 이러고 있었거든요. 저는 모험하는 내내 이거 다 끝나면 뭘 해서 돈을 벌고 살아갈까 이게 제일 큰 걱정이었단 말이에요. 그렇잖아요, 제가 여행하면서 무슨 일확천금을 발견한 것도 아니고, 다들 구원자니 뭐니 하겠지만 기껏해야 동상 세워주는 게 끝이겠지 구원자 연금 이런 건 듣도보도 못했거든요. 도시가 다 파괴되었는데 저 따위에게 쓸 돈이 있겠어요? 몇십년 지나서 제가 어디 외부도시 골목에 넝마나 걸치고 콜록거리며 한 푼 줍쇼 나으리 이러고 구걸하는데 사람들이 저 사람이 예전에 발더스 게이트를 구했대, 뭐? 말도 안 돼 저런 거지가? 이러는 말 하면서 지나가는 걸 상상해보세요. 끔찍하죠?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언젠간 다 늙고 약해지잖아요. 그러니까 젊어서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돈을 모아야 한다고요. 그래서 올챙이도 안 먹었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의 공연은 바로! 이러면서 사람들을 쫙 모아야 하는데 이빨이 빠져있고 얼굴에 보랏빛 핏줄이 선명하게 서 있으면 퍽이나 잘도 모이겠어요, 맞죠? 그래서 아, 이거 끝나면 그래, 많이 성장했으니까, 노래로 어떻게 잘 비벼보는 게 실패하면 어디 괜찮게 사는 집에서 문지기로라도 일해볼까 싶었어요.
그런데 카를라크가, 자기는 이제 끝이라는 거예요. 온몸에 불이 나면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어쩌겠어요. 연인이 죽게 놔둬요? 그래서 같이 아베르누스로 갔어요.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정말 절망스러웠어요. 카를라크도 저도 푸른 하늘과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 바람에 실려오는 짠내, 아침에 일어나면 애들이 조개찜하고 소라 사라고 흥정하는 소리, 뿌옇게 온 세상을 휘감은 듯한 바다 안개를 사랑하거든요.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진심으로 울고 싶었어요. 그리고 바드가 아베르누스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조용히 있어도 어떻게든 우리 냄새인지 뭔지를 맡고 달려드는 각양각색의 온갖 악마가 즐비한 데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켜요. 애인이 눈앞에서 타죽는 것보단 당연히 낫지만, 더 나은 선택이었어도 불만족스러운 선택일 수는 있는 거잖아요. 카를라크도 윌도 멋지게 싸우는데 저는 사실 싸움보다는 연주가 좀 더 좋거든요. 그래서 내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어서 좀 우울했어요.
하지만요,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어느 날 어쩌다 희망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어요. 정말로 어쩌다가요. 매일같이 싸워대느라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어디서 본 거 같은 집이 있어서 가봤더니 희망의 집이었어요. 와, 진짜로 멋지게 바꿔놨더라고요. 덕분에 피로도 좀 풀고 다친 데도 제대로 고치고요. 맛있는 것도 먹고, 호프랑 오랜만에 대화도 나눴어요. 코릴라하고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중이더라고요. 그리고 처음으로 침대다운 침대에서 자는데, 한밤중에 카를라크가 막 뒤척였어요.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 꽉 안고 자장가를 불렀어요. 엄마가 어릴 때 불러주던 노래였는데, 카를라크의 표정이 편안해지더니 다시 쿨쿨 자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내가 여기서는 음악을 들은 적이 없구나, 음악이 우리에게 발더스 게이트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연결고리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요, 저는 정말 엄청난 힘을 가진 거예요. 희망을 주고, 우리가 잠시 떠나온 집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우리의 발더스 게이트를 그릴 수 있게 하는게 바로 음악인데 저는 바드잖아요. 그렇죠? 희망의 집에 자주 들릴 수는 없어요. 거기가 우리 거점같이 되면 온갖 악마들이 몰려올 테니깐요. 그래서 비정기적으로 왔다갔다 하는데, 엘프송 여관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하거나, 달아오른 인어 주점에서나 불릴 노래를 부르거나, 애들이 줄넘기하면서 부르는 노래 같은 걸 부르면 다들 너무 좋아해요. 가끔은, 아니 사실은 자주 울기도 하고요, 각자 자기 추억을 이야기하거나 장난도 치고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정말로 잠시 발더스 게이트에 돌아온 느낌이라 너무 기뻐요. 저번에는 분필로 땅따먹기 판을 그려서 놀기도 했어요. 다 큰 어른들끼리요! 저랑 카를라크가 한 팀을 먹고 윌하고 호프가 다른 팀을 먹었어요. 우리는 연인이니까 갈라놓으면 서로 봐줄 거라고 공정해야 한다고 윌이 그러더라고요. 되게 재밌었어요. 이런 순간이 있으니 아베르누스가 훨씬 견딜만한 것 같아요.
그러니깐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요, 아베르누스에서 바드가 무슨 소용일까 싶었지만, 사실 제가 제일 중요한 역할이었다는 거예요. 달려드는 악마를 반으로 가르고 하늘을 나는 임프를 셀 수 없이 쏘아 떨어트리는 것만큼이나, 웃음과 노래와 희망을 잃지 않는 게 아베르누스에서는 정말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었어요. 소중한 임무를 맡게 되어서 너무 기뻐요.
요전에 캄비온의 품에서 자리엘의 비밀 대장간으로 가는 길을 찾게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발더스 게이트로 돌아갈 날도 그리 머지 않아 보여요. 그러면 훨씬 더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들을 수 있게 되겠죠. 지옥에서 여러가지를 모아놨으니 그것도 팔면 좀 돈도 될거고요. 앞으로 제 미래는 돈과 희망이 넘쳐나게 될 거예요. 그럼 이제 가볼게요. 안녕!
이하 타브 얼굴과 기타 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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