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슬레] 알 수 없는 사랑
트친의 삼행시로 탄생한 연성입니다.
발단.
산타파이브의 <내 트리를 꾸며줘!> 이벤트 페이지에 생성한 제 트리에
트친 한 분(대파님)이 제 닉네임으로 삼행시를 지어주셨는데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리트윗 통해 탐라에서 보신 분들도 소수 계실 거로 생각해요,,
여튼 이대로 트리 장식으로만 남겨두기 너무 아까워서 글로 남겨야겠다는 다짐으로 탄생한 글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대파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현대 AU 이며, 둘 다 20대 중반(슬레타가 1~2살 연상)이라는 설정입니다.
간접적인 성행위 묘사가 잠깐 등장하므로(상세X, 약 15세 이용가), 이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보기 힘드신 분들은 읽기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자유여행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래에 있을 베네리트 그룹의 경영승계를 위한 본격적인 후계 교육을 받기에 앞서, 총수인 아버지에게 허락받은 3년의 자유 기간에서 남은 시간은 오늘부터 딱 6개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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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룹의 차기 총수 후계자의 운명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빽빽한 일정으로 그에 걸맞은 온갖 교육 및 지도를 받아온 미오리네에겐 꿈속에서나 벌어질 만한 일이었기에 처음 자유시간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고 승인받은 직후엔 현실이 믿기지 않아 계획도 없이 일주일을 집 주변에서만 허비했다.
이럴 게 아니라며 정신을 다잡고, 이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세계 각 곳의 여행지와 문화유적,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작물인 토마토의 원산지 및 그와 관련된 역사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관광지 등의 장소에 대한 정보를 틈틈이 정리해둔 외장하드를 꺼내어 철저한 여행계획을 짰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3년여의 자유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이 나날을 고대하며 이를 갈아온 영특한 미오리네는 스스로 보기에 훌륭한 2년 6개월여의 계획을 완성했고 그렇게 세계 곳곳을 다니며 멋지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대로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잠적해 영영 자유인으로 사는 삶을 꿈꿔볼 정도로.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자신을 향한 친척들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기에 때가 되면 무거운 짐을 지러 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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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월의 알찬 해외여행 기간을 보내고 남은 6개월 동안은 유유자적하게 국내 여행을 하기로 한 미오리네는 대학 졸업 선물로 받았던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며 이번에도 동행하겠다는 경호원들에게 하루에 세 번, 자신이 안전하다는 연락을 주기로 약속하고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비로소 진짜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금쪽같은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베네리트 그룹 총수부부는 언론을 통한 자녀의 노출을 철저히 막았고 덕분에 나이와 성별 정도만 외부에 공개되어 있다. 비록 눈에 띄는 외모를 갖고 있긴 했지만, 흰 머리칼이나 분홍빛을 띠는 회색 눈동자를 가진 건 렘블랑가문이 유일하지도 않았고 ‘신분제가 존재하던 시절에 특정 국가에서 영향력 있었던 두 귀족 가문’의 몇몇 후손들이 물려받은 특징으로 세계 곳곳에 그런 외모를 갖는 이들이 때때로 있었다. 미오리네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은 자본주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조상 중에 특정 국가의 귀족 출신이 있다’ 정도의 정보 값에 지나지 않았고, 그렇기에 혼자 여행을 다니더라도 미오리네 렘블랑을 알아보는 이들은 없을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베네리트 그룹을 이끌 차기 후계자였기에 경호원들은 비밀리에 근거리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사복 차림으로 대기하기로 하였고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미오리네의 사생활에 대해선 범죄와 연루되지 않는 이상 함구하기로 하였다. 한창 젊고 혈기 왕성할 나이니, 비밀애인을 한두 명 둘 법도 하지 않은가.
경호원들의 그런 예상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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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죄, 죄송해요! 어디 다치진 않으셨어요?!”
“하...”
국내 여행이 시작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한 지역의 카페가 늘어선 명소를 거닐던 미오리네는 바쁘게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걸어가던 행인과 부딪혔고, 덕분에 아끼는 하늘색의 반소매 블라우스($2400 상당) 가슴께가 흠뻑 젖어버렸다. 아이스커피였던 탓에 무척 차가운 것은 덤. 잔뜩 구겨진 미간으로 무어라 한소리를 하려다 고개를 들어 올려 상대의 ‘죄지은 강아지’ 같은 표정의 얼굴을 보고 더욱 기가 막혔다.
저 이상하게 생긴 너구리 눈썹은 대체 뭐지? 사람 눈썹이 저렇게 생기기도 해? 세계여행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썹. 세상이 참 넓긴 하네?
“으힉! 오, 옷이! 흠뻑 젖어버려서 죄송해욧!!”
“어떡할 거야!?”
“아, 벼, 변상을...”
“하, 얼마짜린 줄 알고... 됐어요.”
“죄, 죄송해요... 차가우시죠? 제 손수건으로라도 닦으세요...”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랗고 빨간 캐릭터가 패턴으로 들어간 분홍색 손수건을 건네는 붉은 곱슬머리 여자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어 일단 받아 드는 미오리네였다. 취향도 눈썹만큼이나 독특한 듯 했다.
가슴께를 손수건을 대고 꾹꾹 누르자 블라우스에 채 흡수되지 않은 커피가 묻어나온다. 속옷도 흠뻑 젖은 것 같아 얼른 호텔로 들어가 샤워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싶은 마음에, 다시 고개를 들고 무어라 말하려 했는데 상대와 시선이 마주쳤다. 미오리네의 가슴께를 흘끗 바라보다 그가 고개를 들자 퍼뜩 시선을 맞춘 것이 분명했다. 또다시 인상이 구겨졌다.
“뭘 본 거에요?”
“아, 그게 아니라! 너무 많이 젖으셔서!”
손사래를 치지만 피하는 시선이나 붉어진 볼이나 ‘가슴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비언어적 메시지임이 확실했다.
“당신, 성범죄자로 신고당하고 싶어요?”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저, 정말 그러려던 게 아니라, 너, 너무 젖으셔서 좀 가려야 할 것 같아서요...”
말을 조금씩 더듬으면서도 본인이 겉에 입고 있던 작업복 같아 보이는 점퍼를 벗어서 미오리네에게 둘러주는 여자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고 별 대꾸 없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보다 몸집이 더 커서 그런지 점퍼의 품이 낙낙하다. 살짝 달큰한 비누 향이 나는 것도 같고. 옷을 벗어준 여자는 검은색 민소매 차림이 되었다. 점퍼에 가려졌던 몸집이 드러나자 귀여운 인상과는 별개로 탄탄한 어깨와 팔근육이 드러났다. 꾸준히 근력 운동을 하거나 힘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이 자명했다. 가슴도 조금 큰 것 같고.
“고마워요. 이건 나한테 주는 거예요?”
“네? 아니요! 회사 작업복이라... 오늘은 입고 가시고 나중에 돌려주세요! 저는 회사에 여분이 있어서”
“업무 중이었어요?”
“아, 오늘 외근이 있어서 마치고 복귀하기 전에 커피 사러 들른 거예요.”
“그렇군요... 얼른 복귀 하셔야겠네요.”
“그렇죠... 아! 이건 제 명함이에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공구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 건네준 명함은 모서리가 눌려 살짝 구겨져 있었지만, 적혀있는 정보를 알아보기엔 충분했다. ㈜바나디스의 현장관리팀 대리 슬레타 사마야.
“사마야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냥 편하게 슬레타라고 불러주셔요, 직장에서도 친구들도 다 그렇게 부르니까요!”
배시시 웃는 여자는 사교성도 꽤 좋은 것 같았다. 다만 살짝 어눌한 발음과 성씨로 보아 해외 이주노동자인 듯 보였다. ㈜바나디스는 근래에 베네리트 그룹으로 인수된 신재생에너지 업종의 계열사로 바이오매스에너지 분야가 주력인 사업체였다. CEO는 인수 전후 모두 카르도 나보 박사로 관련 분야 논문을 여럿 발표한 연구자 출신이었고 마찬가지로 연구자이기도 한 자신의 어머니와 공동 개발한 특허 기술도 있어 예전에 사교모임에서 만나 뵌 적이 있는 분이었다. 외국계 기업이었기에 직원들의 국적이 다양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 슬레타 씨?”
“네! 헤헤... 아,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아, 이름,... 그, 미, 미레나에요.”
“미레나 씨? 성은요?”
“그것까지 알려드릴 필욘 없는 것 같은데요.”
“실례였다면 죄송해요! 아, 그런데 제가 2시까진 들어가 봐야 해서요, 연락처로 연락해 주세요!”
“저기...”
“아, 못 태워다 드려서 죄송해요!”
“나도 차 있거든요?!”
“아, 그럼 다행이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빠르고 정중히 인사한 붉은 머리칼의 여자는 바로 앞 카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영업용 승합차를 몰고 사라졌다. 미오리네의 손엔 그가 두고 간 어린애들이나 좋아할 법한 캐릭터 손수건이 들린 채였다. 고급 원단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착장과 그 여자가 걸쳐준 점퍼와 손수건의 위화감이 상당했기에 미오리네도 얼른 자가용에 탑승하고 호텔로 향했다.
커피로 찐득하고 찝찝했던 몸을 씻어내고 호텔의 세탁 서비스를 신청해 커피에 흠뻑 젖은 블라우스와 손수건을 맡긴 뒤, 홈웨어로 갈아입은 후 소파에 앉아 건네받았던 명함을 들여다보며 미오리네는 저도 모르게 오늘 만난 여자를 떠올렸다. 붉고 풍성한 곱슬머리에 맑고 깊은 청록색 눈동자, 저보다 훨씬 짙고 건강해 보이는 피부색, 바보 같이 생긴 너구리 눈썹과는 대비되는 튼튼한 몸까지. 손톱도 짧게 관리되고 있는 것을 보아 깔끔한 성격으로 유추되고, 가슴 또한 딱 보기 좋을 정도로 커서 자신 같은 여자들은 한 번쯤 탐내 볼 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덩치와는 대비되는 아이 같은 취향의 손수건.
그렇지만 그와의 잠자리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침을 꼴깍 삼키는 자기 행동에 제가 화들짝 놀랐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 날 이런 생각이 든 건 미오리네 렘블랑 25세 인생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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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그 카페거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난 여자는 주말이라 그런지 휴일인 듯했다. 후드가 달린 낙낙한 맨투맨 티셔츠와 청바지에 운동화, 어디에서나 볼법한 평범한 차림새였지만 작업복을 입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귀엽고 편안해 보였다. 저보다 큰 체구의 사람을 보고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니... 미오리네는 그때의 부딪힘에 의한 충격으로 자기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 건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주문한 음료를 테이블로 가져오다 그런 표정을 발견한 슬레타라는 이름의 여자는 입을 열었다.
“미레나 씨, 고민거리 있으세요? 표정이 심각해 보이시네요.”
“아? 별거 아니에요, 가져와 줘서 고마워요.”
제 몫의 블렌디드 홍차가 담긴 잔을 들어 잠시 향을 맡은 뒤, 홀짝- 조금 들이켰다. 솔직히 평소 즐겨 마시는 것에 비해 확연히 낮은 품질의 홍차였지만 바리스타의 실력이 좋은지 향은 그럭저럭 음미할 만했다. 구겨졌던 미간이 펴지고, 맞은편의 상대를 바라봤다. 흘끔 제 눈치를 보며 카페모카를 마시는 모습이 영락없이 눈치 보는 강아지 꼴이라 그만 푸훗- 하고 웃음이 나왔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무리 그래도 상대를 눈앞에 두고 웃는 건 예의가 아니지,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반성하며 비스듬했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점퍼까지 세탁해 주셨네요. 감사해요.”
“별것도 아닌걸요.”
“세제 뭐 쓰세요? 손수건도 그렇고 점퍼에도 좋은 향기가 나네요~”
“글쎄요? 세탁 서비스 맡긴 거라, 잘 모르겠네요.”
“아, 세탁서비스...”
“빨래를 직접 하진 않는 편이라서요.”
“아, 그러시구나....”
“세탁기 정도는 사용할 줄 아니까 그런 묘한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요?”
“그, 무슨 단였더라?... 형편! 경제 형편이 좋으신가 봐요!”
“음, 좋은 환경에서 자랐죠. 조금 갑갑하긴 하지만.”
“그렇구나... 저는 부자는 아니어도 행복한 가족에서 자랐어요. 다정한 부모님이랑 나이 차 있는 믿음직한 언니도 있구요!.”
“막내군요? 저는 외동이에요.”
“오!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 나쁜 의미는 아니죠?”
“그럼요! 처음 봤을 때부터 당당하셔서 좋아 보였어요!”
“흠... 뭐, 그래요. 혹시 이 근처 살아요?”
“아뇨, 차로 20분 정도 가야 해요. 이 근방에 우리 회사랑 기술 협약 맺은 협력사가 있는데, 기술 지원이랑 기기 점검 때문에 업무차 종종 들르는 곳이에요.”
“멋지네요. 번듯한 직장도 있고 전문성도 갖췄고요.”
“헤헤, 그런가요?”
대화할수록 미오리네는 상대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졌다. 주변에 친구들이나 지인도 여럿 있고 본인의 사회적 위치가 있는 만큼 각양각색의 이해관계에 놓인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루고 있었지만, 이 붉은 머리칼의 여자 같은 사람은 없던 터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일까 어림짐작했지만, 이것이 빗나갈 거란 예상은 하지 못했다.
“시간 괜찮으시면, 저녁은 제가 살게요. 당신이랑 더 얘기해 보고 싶어서요.”
“네? 저랑요?”
슬레타 사마야는 조금 어리숙한 면이 있긴 했어도 어엿한 사회인이었고 저녁 식사를 제안하는 미레나(미오리네)의 의도가 단순한 호의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정 있으시면 다음에 시간 될 때 봐도 되고요.”
“아, 아뇨, 일정 없어요, 어디로 갈까요?”
“슬레타 씨가 괜찮은 곳으로. 저는 여행 온 외지인이라 이 도시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아하, 그럼, 제가 사는 곳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거든요. 그리로 가요!”
“좋아요. 그렇게 하죠.”
“저기, 차 가져오셨나요?”
“네, 웬만하면 직접 운전하는 게 편해서요.”
“아, 그럼, 오늘 신세를 져도 괜찮을까요? 저 자가용이 없어서요”
“그럼 그래요, 운전은 직장에서만 하나요?”
“원래 그랬는데, 언니가 차를 새로 장만하게 되어서, 원래 쓰던 건 제가 받기로 했어요! 다음 주 주말쯤?”
“그렇군요.”
타인의 사생활 같은 것에 일절 관심 없는 미오리네였지만 슬레타가 재잘재잘 떠들며 늘어놓는 이야기는 어쩐지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살짝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자신이 살아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그에 대한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 흥미로웠다.
마침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기에, 곧 두 사람은 자리를 정리하고 주차장으로 가 미오리네의 차에 올라탔다. 가끔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으로만 봤던 고가의 승용차를 타게 된 슬레타는 차의 외관을 보고 놀랐고, 승차감과 내부 디자인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미오리네는 그런 그의 호들갑을 보고 아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귀엽다고 느꼈지만, 솔직하지 못했기에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바로 슬레타가 이야기했던 식당을 향했고, 미오리네의 예상과 다르게 도착한 식당의 외관이나 내부는 소박했지만, 서민들의 기준에선 나름대로 무게감 있고 정갈한 분위기였고 식탁과 의자도 소재에 신경을 쓴 듯, 저렴한 것들은 아니었다. 손수건을 보고 슬레타의 취향을 지레짐작했던 미오리네는 속으로 사과했다. 좋은 식재료를 쓰는 듯, 메뉴들의 가격대도 마냥 저렴하지 않아서 나쁘지 않은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 만족한 듯 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슬레타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식당의 주말 저녁 코스 메뉴를 주문한 둘은 식사 내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걸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슬레타의 가족은 그가 고등학생일 무렵, 아버지가 이 나라의 본사로 발령을 받아 홀로 떨어지게 되자, ㈜바나디스의 관리직이었던 그의 어머니도 해외발령을 신청하고 승인받아 1년여 만에 다시 이 나라에 모여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첨단소재 분야의 ㈜옥스어스 임원으로 실무직에 있을 때, 신소재 개발과 관련해 ㈜바나디스와 종종 협업하다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옥스어스는 바나디스사 보다 몇 년 먼저 베네리트 그룹 계열사에 인수된 기업체였다.
슬레타는 이 나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와 언니가 몸담은 ㈜바나디스에 취직하였으며, 이 도시의 지부로 발령받아 수도에 있는 각 본사 소속인 가족들과는 떨어져 홀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성실함을 인정받았는지, 내년쯤엔 본사 발령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가족과 지척에서 지낼 수 있게 되어 좋겠다고 넌지시 물어보자 해맑은 웃음을 배시시 흘리는 모습이 마치 소녀 같았다.
물론 미오리네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만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거짓말을 보태 중소기업 CEO의 자녀이며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국내를 여행하고 있다는 얘기와 부모님은 비슷한 기업가 자제이지만 연애결혼이었다는 사실도 섞어서.
세계 여행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는 슬레타에게 동아시아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자연스레 술도 마시게 되었다.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와인 맛은 미오리네에겐 싸구려 같이 느껴졌지만, 그와 함께하니 달콤하게만 느껴져서 그만 과음했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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