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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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담배 연기가 뱉어내는 숨 따라 허공에 흩어진다. 타들어 간 담뱃재는 불어오는 바람에 힘없이 떨어져 옷자락에 붙는다.

“에이 씨.”

정은창은 쥐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고 옷을 털어냈다. 불씨가 붙진 않았지만, 셔츠에 희미한 담뱃재 얼룩이 졌다. 뒤늦게 손끝으로 문질러도 아까보다 더 번지기만 한다.

“쯧….”

되는 일이 없으면 이런 것도 안된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한숨을 푹 삼키곤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 담배를 허공에 털어냈다. 훨씬 짧아진 담배꽁초는 누가 봐도 재떨이처럼 보이는 깡통 안으로 던졌다. 오, 골인. 멀지 않은 거리지만 정확하게 그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가 괜히 민망해져 손을 풀었다. 이제 빈손이 된 양손을 괜히 허공에 몇 번 털곤 주머니에 쑤셔 넣어 걸음을 옮긴다.

겨울이 지나갈 무렵의 계절은 온도가 간지럽다. 두꺼운 겉옷은 치솟는 낮 기온에 걸거쳤고, 갑자기 뚝 떨어지는 밤 기온엔 적당했다. 옷을 여러 벌 갖춰놓은 편이 아닌 그로서는 참 곤란한 계절이었다. 작은 아이의 옷을 새로 맞춰주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 자신이 쓰고 입는 것엔 뒷전이었던 사내아이가 커봤자 얼마나 자기 자신을 챙길 줄 알겠나. 그런 것들을 배우기도 전에 세상과도 같았던 부모라는 이름의 이들이 저버렸으니. 여러 번 맞이하는 간절기지만 매번 남들 입는 것을 따라 하며 옷 구색을 대충 맞춰 입는다.

그런 계절이 온 것이다.

봄이.

어둠이 내려앉은 밤길 속에서도 희미하게 불이 들어오는 가로등이 이제 막 피어오른 꽃들을 그에게도 보여준다. 막 봉우리를 벌려낸 하얀 꽃잎이 가로등 불빛에 불그스름한 빛을 띤다. 완전히 개화하기 전, 너무나도 작은 꽃잎들. 언제나 봄을 가져오는 벚꽃잎이 이어지는 골목길 뜨문뜨문 여길 보라며 피어있었다.

- 오빠, 벚꽃이야!

희미하게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것 같은 그 아이의 목소리는 이렇게 가끔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정은창은 눈높이에서 멀지 않은 그 꽃잎을 바라본다.

- 나, 꽃잎 잡아줘!

어딜 가서 누구에게 들었나, 꽃잎을 잡아서 책갈피로 만들어 달라며 바닥을 구르며 떼를 쓰기도 했던 작은 아이. 봄에 태어나서 그런가, 웃는 낯은 늘 여린 꽃처럼 수줍고, 봄을 닮아 따스했던 여리고 여린 아이를 벚꽃잎을 보며 떠올린다. 은서야, 정은서. 나의 봄이었던 작은 아이야.

바람이 분다. 여린 벚잎이 하나, 둘 흩날린다.

나의 봄, 은서야. 네가 없는 계절은 언제나 겨울과도 같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도 정은창의 삶에 더는 봄이 찾아오질 못하니, 겨울이 끝날 기미도 보이질 않는다. 춥다. 겨울은 춥다.

“…주책이지.”

흩날리던 벚꽃잎을 하나 잡았다. 손바닥을 펼쳐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그 벚꽃잎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 오빠.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 나 너무 아파, 추워.

봄을 닮은 너도 추운가 보다. 기껏 잡은 벚꽃잎 놓칠 새라 정은창은 다시 손을 주먹 쥐곤 반대 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물곤, 그 끝에 불을 붙인다. 아까와 같은 연기가 가늘게 올라가는데 갑자기 그게 왜 향처럼 보였을까.

정은창은 의미 없이 걸음을 옮겼다.

집이 없고, 돌아갈 곳이 없는 사내는 골목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았다. 걸음은 걷고 걸어 강 앞에 멈춰섰다. 울산에 흐르는 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넓었지만, 뭐 어떤가. 꽉 쥐고 있던 손바닥을 다시 펼쳤다. 그새 조금 쪼그라진 것 같은 꽃잎을 괜히 문질러 펴보다 강 위로 내려놓는다. 가라앉지 않고 떠 있는 꽃잎을 바라보며 향 대신 담배를 피어 올린다. 물결 따라 점점 더 멀어지는 그 손톱만 한 꽃잎에 그는 편지를 써 내려간다.

은서야, 오빠는 할 수 있어.

꼭, 해낼게.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네 복수를 반드시 끝내고, 만나러 갈게.

오빠가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줘.

미안해, 사랑해.

정은창은 그렇게 써 내려간 편지를 멀어지는 꽃잎 위로 실어 보낸다.

나의 작은 봄이었던 은서야. ……주책맞은 궁상이다. 꽃잎도, 담배의 불씨도 꺼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어냈다. 밤이 지나 새벽이 넘어가는 무렵, 이제 들어가야 했다. 아침이면 또다시 깡패들 사이에 섞여 내키지 않는 주먹질과 이야길 섞겠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경찰과 깡패들의 줄다리기 중간에 서서 그 줄이 한쪽으로 넘어갈 기회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겠지. 김성식이 고꾸라질 그 날만 기다리며, 칼을 또 갈고, 또 갈겠지. 정은창이라는 놈의 삶이란 그렇다. 제대로 정해진 것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자신의 목숨마저도 직접 끝낼 수 없었던 놈이니 뭔들 그럴까. 하하. 머저리 같은 놈. 정은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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