綠陰

어리석은 여우

그리고 그 여우에게 목덜미가 물린 어린 양

Hanchiching by 한치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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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카 유리에.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적어도— 엔도 다이스케에겐 그렇다. 제 손으로 죽여버린 사람이니까. 다이스케가 아무리 글러 먹은 인간일지라 할지라도 연쇄살인범까지는 아니었다. 죄책감이 온전히 결여된 인간도 아니다. 그는 너무 유약한 나머지 스스로 추해지기로 다짐한 존재였으므로. 그러므로 그는 제 품에 안겨져 있는 유리에를 내려다 바라보았다.

작다. 채 160도 되지 못하는 자그마한 키의 소유자는, 190에 조금 못 미치는 남성의 품에 움푹 담겨 멍하게 눈을 뜨고있었다. 그 눈길의 끝은 자신의 거먼 눈동자에 올곧게 닿아있었다. 그러나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난 감상을 주어 물안개 같은 불쾌감을 주었다. 자신이 그렇게나 바랐던 순간인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유리에게 넋 나간 얼굴로 다이스케에게 사랑한다 말했다.

사랑한다 말했다.

유리에가.

——————————————다이스케에게.

타지카 유리에는 죽었다. 자신에게 이렇게 해맑은 아이 같은 웃음을 지어대며 사랑한다 말하는 건 자신이 아는 유리에게 할 짓이 아니다. 차라리 내 낯에 침을 뱉어댄다면 모를까. 살갗을 찢고, 물고문하고…. 그가 보는 앞에서 깔짝거려오는 이들의 손가락을 몇 으스러뜨리긴 헀으나. 그래도, 그래도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유리에.

다이스케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이 바라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더, 더 발버둥치고 악쓰고 거부하지는 못할망정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참 모순적인 풍경이었다. 고문에 가깝게 밀어붙이는 다이스케 탓에 유리에게 정신마저 무너지고 나면 가장 기뻐할 것 같은 자는 다이스케였는데, 기분 나빠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무너지지 않는 그 기개가 좋았다. 올곧은 그 심지가, 한계 끝에서도 바르게 나가는 -자신이 결코 가지지 못하는- 그러한 면모가 샘났고, 그래서 탐이 났다.

그러나 올바른 방식으로 취하는 방법은 그 어디에서도 배운 적 없으므로 다이스케는 짐승의 뒷덜미를 낚아채어 질질 끌고 가 철장에 가두는 방식으로 타지카 유리에를 손에 거머쥐고자 하였다.

-그렇게 해서 쥐었잖아 뭐가 문제야?

그러게, 뭐가 문제일까. 이런 걸 바라지 않았다. 실은, 그저 학교 안을 손 잡고 풋풋하게 거닐고 싶었고. 그러다 간질거리는 입맞춤을 하고 싶었고…. 네 꿈을 응원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그러면, 그래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버린다면 나 같은 걸 봐줄리가 없잖아. 더 잘난 이들 속에 파묻혀 날 기억하지도 못할 거잖아. 내 뒤틀려진 내면을 마주하고 도망가버릴 거잖아. 그렇게 해서 네가 떠나버린다면, 날 잊어버릴 거라면…. 비록 추하고 뒤틀린 방식으로라도 네 기억 속에 나를 연신 덧대어 새겨놓고 싶었다.

그게 비록 네게 미움받는 방식일지라도. 그러니, 이 바보같이 웃는 얼굴은 내가 바라던 게 아니야. 이번엔 이쪽에서 넋 놓은 낯을 해보였다. 차라리 연기였으면 했으나, 입가에 흐르는 타액이나 풀린 초점은 연기로조차 흉내 내기 어려운 것이리라. 약을 너무 주입했던 걸까? 아니면 전류를 흘려보낼 때 어딘가 잘못 건드려졌던 걸까. 네게 한 짓이 하도 많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아, 유리에. 돌아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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