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하낭
총 13개의 포스트
이 바닥에선 먹고 살려면 앞에 누가 있던 눈빛 하나만으로도 상대방을 움츠리게 만드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고들 했다. 그러나 M에겐 누군가를 겁주는 재능이 없었다. 쉽게 말해 덩칫값을 못 한다고 볼 수 있겠다. 189cm의 거구는 이 바닥에서 정말 유리한 신체 조건이었으나, M의 앳된 얼굴과 발그레한 볼은 이런 축복을 가볍게 상쇄시켜 버렸다. 하지만 R과 M이
1. 눈을 감아야만 선명하게 보이는 과거의 기억이 있다. 그래서 L은 눈을 감아야만 하는 밤이 두려웠다. 특히 달빛이 흐린 오늘 같은 날이면 더더욱. 빛이 미약할수록 L의 눈가에서 맴도는 후회들은 더더욱 선명해지곤 했다. 2. 부끄럽지만 그즈음의 L이 가장 많이 가졌던 감정은, 아무래도 우월감일 것이다. 그는 항상 즐거웠다. 많은 것들이 제 아래 있었으
1. 아, 이거 꿈이구나. L은 생각했다. 사실 근거는 항상 그랬듯이 날카로운 L의 직감,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L은 제 직감을 지나치게 믿었다. 누군가는 자만이라 하더라도 L의 직감은 그를 항상 옳은 길로 이끌어주었으니까. 사실 직감대로 행동한 뒤, 어떻게든 해내는 것에 더 가까웠지만 L은 거기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직감으로 이곳이 꿈속 세계라
“N 씨.” 간드러지지만, 나직하게 자신을 부르는 고용주의 목소리에 N은 다시 현실에 집중했다. 고개를 돌아보니, ‘고용주‘ M은 자신을 보며 꽤 수상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사실, 조용하지만 어째서인지 ‘후후’라는 효과음이 붙을 것 같은 미소를 입에 걸고 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M은 평소와 같았다. 그의 단정한 옷매무새는 옷 관리에 식견
1. M은 오늘 경찰서까지 가 놓고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사실 ‘도망쳐 나왔다‘가 더 알맞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자신과 S, 둘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 불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서를 빠져나온 뒤 결국 발이 향한 곳은, 둘만의 공간인 반지하 방이었다. 문을 열자 방 안에 갇혀 있던 눅눅하고 습한 공기가 뛰어나와 M의 목덜미를 끌
1. 인어가 울 수 있던가? 문득 떠오른 의문에 그리타는 자신의 기억을 헤집었다. 두꺼운 층으로 형성된 행복한 기억을 손으로 파헤치다 보면, 물때가 덕지덕지 묻어 안이 잘 보이지 않는 통유리로 된 어항이 드러난다. 어느 순간부터, 그때의 자신을 떠올릴 때 어항 안의 인어가 아닌, 어항 밖의 관찰자가 되었다. 기억이 흐려졌다고 표현하긴 어려웠다. 아예 심비관
[크레이블] 아육대 썰 1. 유니 사실상 이 썰을 풀게 된 계기. 진짜 경기 나왔다 하면 아육대가 막 띄워줄 것 같음ㅋㅋ 자막으로 ‘아육대 레전드 등장’, ‘아육대가 태릉에서 뺏은 인재’ 이런 느낌으로... 뭔가 열심히 노력해서 잘한다기보단 진짜 선천적으로 태어나길 운동신경이 뛰어날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춤추다 온 애니까 이게 맞을 듯. 거기다 우주
사거리에 있는 그 치과 말입니까? 네, 잘 알고 있죠. 치과는 항상 그곳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떻냐고요? 음, 글쎄요…. 아뇨, 실력에 문제가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문제가 있었으면 제가 몇 년 동안 애용하고 있겠습니까. 내부도 깔끔하고, 고객 대응도 정말 친절합니다. 네?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요? 잠시만요…. …진짜 당신이니까 믿고 말하는 겁니다. 혹
그 자식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 아주 강하게,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물론 손이야 존나 아프겠지. 그래도 내 속은 진짜 개 씹 존나 후련할 것이다. -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는 조금 빠르게 연락이 왔다. 걔한테 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으면서 당연히 연락이 올 거라고 오만한 예상을 한 나나, 정말로 연락을 보낸 그 새끼나 참 웃겼다. 정말 은퇴하시나요.
박병찬은 오늘 난생처음 극장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뭐, 뽀로로나 둘리 이런 느낌의 애니메이션 말고, 진짜 마니악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부류의 애니메이션. 처음부터 '아, 이 영화를 봐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외출을 한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휴일에 할 짓이 없어서 동네를 어슬렁거렸는데 마침 영화관이 눈에 띄었고, 또 마침 어딘가에서 설문 조
"찬이가 조퇴?" 웬일이래 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잔뜩 묻어났다. 담임은 고민할 때마다 안경테를 매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그 고민의 심각도와 손가락의 속도는 항상 비례했고, 오늘따라 손가락이 참 바삐도 움직였다. 거짓말에 서툴렀던 찬은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대지 못해 우물쭈물한 데다, 이미 같은 반 학생 한 명이 직전에 조퇴한 뒤였다. 때문에 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