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준

빵준 / 생일 케이크

준수 생일 기념 조각글

NEW GROUND by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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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4 포스타입에 업로드된 것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https://posty.pe/hvlr5m)

- 준수 생일을 기념해서 쓴.. 5400자 분량의 짤막한 조각글입니다. 이 포타의 첫 전체관람가 글이네요...^___^;; 

준수야 생일 축하한다.. 영중이랑 행복하렴... 

읽어주시는 분들도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성당에 다니는 준수네 부모님은 준수가 태어났을 때 이 아이는 예수님과 닮았겠구나, 생각하셨다고 한다.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겠는가. 제 자식이 위대한 누군가와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라는 마음. 기독교의 성인인 예수의 생일이 12월 25일이고 준수의 생일은 12월 24일이니까, 사실 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생각할 법 했다. 고작 하루 차이가 얼마나 다른 인물을 만들지는 미처 모르고 말이다. 

 영중은 자신이 정성 들여 고른 케이크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는 준수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준수네 부모님도 착각하셨는데 내가 착각하는 것 정도야 뭐⋯. 당연한 일 아닐까? 준수네 부모님이 준수의 인성에 대해 거대한 착각을 하셨던 것처럼 나도 애인에 대해 비슷한 착각을 한 거다. 준수가 애인에게 케이크를 받으면 조금이라도 기뻐할 거라는⋯ 그런 착각. 준수에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해서는 안됐는데⋯.

 영중은 다소 착잡한 마음으로 케이크를 내민 손에 힘을 줬다. 내밀어진 생일 케이크는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계속 영중의 손에 들린 채였다. 네 생일을 축하하고 싶어서 케이크를 사 왔다, 네 것이니 가져가라는 의미가 분명한 제스처를 보고도 준수는 어딘가 애매한 표정으로 그저 케이크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영중이 준수에게 웃으며 케이크를 내밀 때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면 깜짝 선물 따위는 준비하지 않았겠지. 대체 어느 누가 사귄 지 한 달도 안된 애인이 생일 케이크를 사 와서 선물하는데 저렇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고만 있냐고. 조금 시간이 지나도 준수가 케이크를 받아 들지 않자 영중은 준수의 손을 강제로 낚아채 케이크를 쥐여줬다. 그리고 다소 굳은 얼굴을 감추기 위해 살짝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건넸다.

“⋯생일 축하해.”

 목소리 끝이 조금 떨리진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그 말을 끝으로, 영중은 준수의 손에 케이크가 제대로 쥐어진 것만 확인하고 뒤돌았다. 따사로운 겨울의 햇빛 아래 영중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자신이 한 고생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었다. 단지 준수가 조금 놀라고, 티는 많이 내지 않더라도 기뻐하는 기색이라도 비추기를 바랐을 뿐이다. 준수의 쑥스러워하는 표정이나 놀라는 표정을 볼 수 있다면 영중이 오늘 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오늘 영중은 준수의 생일을 기념한답시고 아침부터 일어나 유명한 베이커리에 줄을 섰다. 하필이면 준수의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탓에 오픈 시간 전부터 케이크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름대로 몰리는 인파에 대비한답시고 오픈 시간 즈음 맞춰 왔는데도 벌써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참, 사람들이 부지런하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바지런한 운동선수도 혀를 찰 정도니 말 다했다. 연말이자 기념일을 위한 사람들의 집념은 무서울 정도여서, 영중은 자신의 바로 앞에서 사려던 케이크가 품절되는 꼴을 지켜봐야만 했다. 자신 앞에서 케이크가 품절되었다는 말에 거의 눈물이 나올 뻔했는데, 정말 다행히도 두어시간 기다리면 다시 케이크가 나온다고 했다. 영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추위에 벌벌 떨며 케이크를 기다렸다. 장인이 한다는 베이커리는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서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지도 않았고, 테이블*이니 캐*테이블이니 하는 예약 시스템도 당연히 쓰지 않아서 영중은 그저 가게 앞에서 벌벌 떨며 꼬박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맑았지만 영하 10도의 추위가 몰아치는 한파여서 영중의 뺨과 귀는 붉은 색으로 꽁꽁 얼었다. 영중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목도리에 얼굴을 푹 묻은 채 동동거리면서 추위를 견뎠다. 아니, 그보다도 준수가 이 케이크를 받고 보일 반응을 상상하면서 견뎠다. 그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케이크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영중은 답지 않게 상상력이 풍부해졌다. 그 시간 동안만은 어쩌면 근방에서 가장 다양한 상상을 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케이크를 손에 넣었을 때는 어땠던가. 영중은 꽁꽁 언 제 몸도 잊고 이걸 받을 준수를 생각하며 환히 웃었다. 추운 날에 한 고생보다도 준수의 고맙다는 말이 가져다 줄 행복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고생하며 사 온 케이크였다. 준수가 받고 기뻐하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평소 하지도 않을 짓을 해가며 산, 그런 케이크였다. 준수는 답지 않게 달콤한 것들을 좋아하니까, 저번에 보니까 생크림 케이크를 정말 잘 먹던 게 생각이 나서, 같이 생일을 축하해주고 케이크를 나눠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사귀고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니까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케이크에는 그런 들뜬 마음과 기대감, 준수를 생각하는 제 마음이 녹아든 거였다. ⋯준수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케이크를 건네고 뒤돌아서자, 기분이 낮게 가라앉았다. 영중은 울컥하며 올라오는 감정들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코를 훌쩍였다. 준수의 생일을 맞이해 아침부터 설레며 준비한 모든 것들이 진흙탕에 쳐박힌 것 같았다. 추위에 떨면서도 준수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이런 저런 상상과 기대를 가졌던 자신이⋯ 너무나도 바보 같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사실 평소였다면 영중도 말 한마디 없이 뒤돌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준수야, 너는 애인이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사 왔는데도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만 있어?’ 라던가, ‘와 우리 준수는 고맙다는 말도 할 줄 모르나 봐⋯.’ 같은 말들로 제 심기를 드러내면서 준수를 콕콕 찔렀으면 찔렀지. 그러나 그렇게 깐죽거리는 것도 다 멘탈이 멀쩡해야 가능한 것이다. 준수의 떨떠름한 반응이 생각보다 영중에게 상처를 입힌 탓에, 영중은 그저 고요히 뒤돌아 걷는 것을 택했다.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쪽팔렸다. 영중은 자신이 준수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단 사실이 부끄러웠고, 그 기대가 완전히 박살나자 수치스러웠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쪽팔렸다. 영중은 괜히 코를 훌쩍이며 성큼성큼 걸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이 괜한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견디기 힘들었다. 그냥, 혼자 농구공을 튀기며 생각을 밀어내고 싶었다. 저벅, 저벅, 영중이 준수에게서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지는 순간에도 쨍한 겨울의 해는 환히 떠 있었다. 그렇게 성큼성큼 멀어지는 영중의 뒤에서 빠른 발소리가 났다. 그리고 누군가가 영중의 왼 손목을 순식간에 잡아채 영중의 몸을 돌렸다. 영중의 눅눅한 눈동자에 익숙한 사람이 선명하게 비쳤다. 준수였다.

 준수는 영중을 잡아채놓고는 조금 머뭇거렸다. 영중은 그런 준수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빤히 쳐다봤다. 준수는 영중을 흘끗 쳐다본 뒤, 영중의 손목을 잡은 채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뒤편, 누가 잘 찾지 않는 막다른 골목길이었다. 거기까지 영중을 끌고 온 준수는 휘휘 주변을 둘러보더니 영중을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준수에게 가볍게 밀쳐진 순간 영중의 발이 꼬이면서 커다란 몸이 조금 휘청였다가 이내 똑바로 섰다. 영중이 미간을 찌푸리며 준수에게 뭐 하는 거냐고 따지려는 순간, 말캉한 것이 입술에 닿았다. 믿을 수 없는 감촉에 영중의 눈이 크게 뜨였다.

 준수가 눈을 감은 채 영중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댔다. 눈을 지나치게 꽉 감은 탓에 인상을 찌푸린 것처럼 보일 지경인 준수 때문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으나 영중은 꾹 눌러 참았다. 이런 쪽에서는 영 숙맥인 줄로만 알았던 준수가 의외로 대범했다. 준수의 혀가 서툴게 영중의 입 안을 침범했다. 서툰 움직임이었지만 망설임 없는 행위가 너무나도 준수다워서 영중의 마음이 간질거렸다. 영중은 조용히 입을 열어 준수와 혀를 얽었다. 준수의 생일날 첫 키스라니. 생각지도 못한 낭만적인 상황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얼마간의 서툰 입맞춤이 끝나고 준수가 몸을 물렸다. 영중은 키스를 하는 순간부터 여태까지 준수에게서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반대로 준수는 키스 후 눈을 뜨고는⋯. 영중이 아니라 다른 곳을 봤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듯, 준수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사선으로 내리깔았던 눈을 들어 올려 영중과 시선을 맞췄다. 둘의 시선이 맞닿은 채로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준수가 망설이며 말을 꺼냈다.

“⋯고맙, 다고.”

“⋯⋯.”

 짧은 감사의 말을 꺼낸 뒤 준수는 민망하다는 듯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준수의 귀 끝은 조금 붉어진 채였다.

“⋯그렇게 가 버리면 어떡하냐?”

 너 만난다고 오늘 집에도 늦게 들어간다고 했는데⋯. 뒤이어 이어진 준수의 말에 영중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니까, 이 말은⋯. 지금 준수가 생일을 나랑 같이 보내겠다는 건가? 영중이 알기로, 준수는 생일을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구와 보낸 적이 없었다. 준수의 생일을 살갑게 축하해 줄 만한 친구가 딱히 없었기도 하고, 준수도 생일이랍시고 누구를 만나러 다닌다거나 어딜 특별히 놀러 가는 스타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끔 가까이에 살던 영중이 소꿉친구라는 명목으로 종종 초대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장소는 준수의 집이었다. 그래서 영중에게도 준수의 생일은 준수의 가족끼리 오붓하게 축하하는 날이었다. 가끔 초대될 수는 있어도 딱 거기까지이지, 자신이 준수의 생일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지금 준수는 자신에게 그날을 주겠다는 거였다. 둘이서만 함께 이날을 보내자고.

 이전까지의 복잡한 생각들이 모조리 휘발됐다. 영중은 들뜨는 기분을 느끼며 활짝 웃었다. 눈 밑의 애교살이 도톰하게 접히면서 영중의 행복한 기분을 드러냈다. 준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죽상이더니⋯. 영중이 준수가 작게 웃는 걸 보더니 성큼 다가와 쪽, 소리가 나도록 준수의 콧잔등에 뽀뽀했다. 그리고는 준수의 한쪽 손을 끌어와 잡았다. 평소라면 징그럽게 뭐하냐며 당장 뿌리쳤을 준수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주고 있었다. 그게 좋아서 영중은 또 하하, 소리 내 웃었다. 눈이 쌓여 고요한 거리를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준수야, 내가 알아봐 둔 곳 있는데⋯. 저녁에 거기 갈래?

 뭐, 어딘데.

 그냥, 준수 어울리지 않게 양식도 잘 먹으니까⋯. 혹시나 해서 괜찮은 곳 알아봐놨지.

 하⋯. 케이크 주고는 존나 냉정하게 뒤돌아서다니.

 아니, 그건⋯. 근데 진짜 아까는 왜 그런 거야? 진짜 똥이라도 씹은 줄 알았잖아. 준수 뭐 케이크에 안 좋은 추억이라도 있어? 어떻게 선물 받고도 표정이 그럴 수가 있어? 나 진짜 상처받았잖아.

 아⋯. 미안. 근데 너 거기 케이크 어떻게 알고 사 온 건데?

 어, 뭐야. 준수도 아는 집이야? 찾아봤는데 여기 케이크가 엄청 맛있고 유명하대서⋯.

 ⋯거기 근데 줄 엄청 서지 않냐?

 응? 어떻게 알았어? 아침부터 가서 줄 섰는데 눈앞에서 솔드아웃 돼가지고⋯. 다시 케이크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사 왔어.

 ⋯고생했다. 먹고 싶었는데.

 ⋯어?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고. 줄 엄청 길다길래 포기했는데 니가 딱 사 왔길래 놀랐어, 아까는. 많이 기다렸냐? 오늘 추웠는데.

 ⋯⋯.

 왜 말이⋯.

 ⋯보지 마.

 ⋯얼굴 존나 빨개.

 아⋯. 웃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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