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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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엉성한 나무기둥 위에 새가 앉아 있었습니다. 흑요석 같은 두 눈과 반질반질한 검은색 깃털. 하얀 머리의 소년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새도 소년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년은 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새는 도망치지 않고 소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땠어? 소년은 믿겨지지 않아 새를 바라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새는 인간의
목적 없이 무연고자의 관 뒤를 따라다니며 흐느끼던 것이 생업이 되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우는 경우도 있지만 유족들, 혹은 그 밖의 사람들에게 수익을 받고 일한다. 체력 소모가 크지만 받는 돈은 터무니없이 적다. 가까이에서도 겨우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하지만, 어쩌다 크게 내는 목소리에는 쇳소리가 섞여 나온다. 늘 눈가가 불그스름하다. 모르는 사람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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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이 몇 번째지?" 처연하게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던 온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질문을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네가 그러니까, 아니 내가 이상한 꿈을 꾼 게 몇 번째냐고? 아 응 그건, 맞아. 나 방금도 그랬어. 자꾸 정신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야. 알아?" 방어적으로 팔짱을 끼고 한참이나 말이 없던 륜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는 낮고 편안한 소파 위에 늘어져 한없이 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는 얼핏 들으면 하나의 언어 같다. 맨바닥에 자판을 그리며 -두드리고 정적 두드리고 쉼없이 두드리고 정적-일련의 과정을 반복한다. 꽤나 공들여서 소리가 이어진다. 툭툭 두드리고. 다시 툭. 영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그의 손가락이 멎자 키보
아아, 나의 유년. 따스한 어둠. 곰팡내. 소음. 온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것은 온이 아니다, 그 뒤의 거대한 개념일 뿐이지. 온은 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었다. 고통과 친구와 집착과 단절. 신은 모든 것을 기억하겠지. 위대하신 그분. 찬양하라. 중요하지 않다. 숨을 들이켠다. 기억난다. 불편하게 나누어진 끝방. 달빛이
창조주와 그를 창조한 것 23.04.?? 너 가끔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네가 모든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란 거. 내가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 생각하고 있어. 완전히 새로운 건 창조할 수 없지. 나는 그 모든 것에 하나의 관점을 덧붙이는 거야. 새로운 시각. 바꿔 쓴 시각. 훔친 시각. 봐. 넌 내가 네 안에 있다고 생각하잖아. 어쩌면 나는, 우리는 네가
결국에는, 자신을 평생 보호해줄것만 같았던 이곳을 깨뜨리고 나가야 한다. 새는 처음부터 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은 새를 보호한다. 하지만 점점 자라는 새에게 알은 달리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부화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의 의미는 없어지는가?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겠다. 그렇다면 나는 뭐가 되지? 어쨌거나 새는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
이 녀석 이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뭉스러움 뭉 뭉 안개같고 풍성함. 아마 얘 이름이 뭉크인 이유도 당시 가장 아끼던 이름이었어서. (이름 뭉크인것들만 서너명은 넘을거다) 옛날 자캐인데 요즘 갑자기 좋아짐그리고 쓸때마다 오글거려서 고통스러움 https://youtu.be/O1YNi6YalNg?si=_cI_Pj6ANxur6csW 음악 뭉크같음 가사는 세상같
나는 보잘것없는 어린애였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 모호함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였지만 동시에 내 인생에서 늘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모호함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그걸 몰라서 사람들이 모호함을 '모호함'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난 태생부터 모호함의 결정체였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미래가 있기는
너 가끔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네가 모든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란 거. 내가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 생각하고 있어. 완전히 새로운 건 창조할 수 없지. 나는 그 모든 것에 하나의 관점을 덧붙이는 거야. 새로운 시각. 바꿔 쓴 시각. 훔친 시각. 봐. 넌 내가 네 안에 있다고 생각하잖아. 어쩌면 나는, 우리는 네가 꾸다 만 백일몽 사이로 고개만 내밀었다 떠
목 뒤 어딘가쯤에서 끊임없이 무언가가 꾸역꾸역 밀고 올라왔다. 반쯤 떨어져 나간 머리가 보였다.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왜? 왜 그들이 나에게 이런 짓을? 분노와 당혹스러움이 차올랐지만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길게 늘어진 손가락이 몇 번이고 바닥을 움키려 했다.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무른 조직은 움직이는 대로 이리저리 찢겼다. 온몸이
세상에 현신한 선이라도 되는 양 보편적인 선을 고수하는 사람. 정말로 선이라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 개념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우리네 사이에 숨어든 거라면, 겉껍데기를 잘못 고른 게 분명하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흐리멍덩한 눈에 음침한 분위기는 순결한 선의 이미지와는 영 이질감이 드니. 처음부터 그가 선을 추구하는 것을 뒤틀린 속내의 표출로 삼았던 것은
지인 A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a에게 시간이 좀 더 많았을 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a와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나중 가서는 둘 다 까먹긴 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이상할 만큼 잘 어울렸다.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데에는 필수적이라는 어떠한 주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시답잖은 우정 말고도 신경 쓸 곳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
얀과 멜랑은 몇 주인가 같이 지낸 적이 있었음 그러니까 조금 많이 옛날에 그리 옛날은 아니지만서도 첫 시작이 어땠을까 멜랑 귀가했는데 얀이 문앞에 냅다 존재했으면 좋겠음 (문앞에놔주세요) 멜랑당황 (이런거시킨적없는데요) 싸우기 전에 말이라도 걸어볼까 싶었음 기대는 없지만 그냥 좀 궁금했을걸 도시에서 보냈나 싶기도 하고 얀은 이쪽 쳐다보지도 않고 걍 비스듬하
들어. 하나, 둘, 셋. 기합에 가까운 말들과 함께 한창 무언가가 운반되고 있었다. 경직된 분위기가 어딘가 부조화스러웠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건물부터가 이상했다. 집채만한 트럭이 쉽게 드나들 정도로 높은 층고에 커다란 출입구. 그에 창문 하나 없는 거대한 요새 같은 시설의 구조. 다닥다닥한 보안 장치ㅡ금속 배관. 하얀 방호복과 하얀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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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우리는 헤어지는 거야 하얀 소년이 풀밭에 앉아 있다. 간지러운 햇살이 하얀 머리칼 위에서 산산이 부서지며 빛을 발한다. 소년의 빛나는 머리카락과 눈부신 피부. 대조적으로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는 두 눈. 봄날의 그림자는 소년의 눈 안에서만 존재한다. 소년이 작은 꽃을 들고서 하얀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낸다. 하얀 흉터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