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C(MYK)

20240117

링클의 안 by 링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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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가리던 구름이 꾸물거리며 물러나자 고였던 빛이 울컥 쏟아져 내려온다. 가늘게 뜬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떨군다. 거대한 공간에 빛이 가득 차올라서, 꼭 숨을 참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걸음을 옮긴다. 지붕의 잔해가 밑창에 밟혀 바스락 하는 소리가 난다. 천장이 쏟아지는 빛을 가려 주던 시절에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은 뼈대뿐이다. 벽이 멀쩡한 쪽이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출렁거리는 빛을 가르며 천천히 걸음을 내디딘다. 지나간 자리마다 인간의 형상대로 검게 빛이 사라졌다가, 또 금세 밀려들어 검정을 앞으로 밀어낸다.

구름이 잠시 해를 가린다. 다시 흘러간다. 빛이 일렁이며 옅어졌다가 짙어지기를 반복한다.

파랑.

눈앞에 수천수만의 파랑이 펼쳐진다.

태양은 파랑을 사랑해서, 그 이외의 것들은 전부 빼앗은 채 희미한 파랑만을 지면에 남겨 두었다.

천천히 손을 뻗어 책등을 쓸어내린다. 읽을 수 없는 문자.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가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 적어 두었을 것이다. 자신이 알게 된 진실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여긴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에서 몸부림치는 이야기를 세상에 토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단지 수많은 파랑. 늘어선 책장에 나란히 꽂혀 늘어선, 살아남은 파랑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부서진 테이블들 위로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언젠가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이 앉았을 테다.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그 안의 담긴 것을 들이마셨을 테다. 그것은 분명 파랑이기도 했겠으나, 또한 빨강이며 노랑이고 보라이며 초록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뒤섞인 채 나란히 꽂힌 이곳에서 각자의 삶을 들고 나란히 앉았겠지.

이제는 나 혼자만이 버려진 도서관을 걷고 있다.

태양은 파랑을 사랑해서, 그 이외의 것들은 전부 죽여 버렸다. 버려진 파랑 또한 평생 파랑이겠지.

읽을 수 없는 파랑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어쩌면 나의 눈은 파란색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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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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